신곡 발표→1위→순위 하락.
하루 이틀만에 이같은 과정이 모두 이뤄지던 최근 음원 단명 현상이 '이적'이라는 반가운 예외 케이스를 만났다. 지난 15일 발표된 이적의 신곡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은 10위권 밖으로 진입해 뒤늦게 입소문으로 슬금슬금 상승세를 타더니 3일만인 지난 18일 음원차트 1위를 올킬해냈다.
발매와 동시에 올킬을 기록하고 하루 이틀만에 순위가 뚝 떨어지곤 하던 최근 신곡들과 확연히 다른 양상. 속도전을 방불케 하는 음원차트에서 하루만에 1위를 찍지 못하면 대중에게 알려질 기회조차 없다고 푸념을 늘어놓던 가요계선 매우 반가운 현상이다. 한 가요관계자는 이같이 말했다.

"사실 첫 진입 순위가 전부라고 보는 게 맞았다. 보통 사람들이 10위권 노래만 듣기 때문에 10위권 밖에서 시작해 탄력을 받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올해에는 크레용팝의 '빠빠빠'만 성공했던 거다. 그건 일종의 현상이었으니까 예외로 두는 게 맞다. 그래서 첫 진입 성적을 위해 자극적인 티저 만들기에 혈안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코믹한 춤도, '예능빨'도 없는 이적이 그걸 해냈다. 그것도 사람들이 싫어한다고 여겨지던, 우울한 노래로."
이같은 현상이 가능했던 건 누가 뭐래도 노래의 작품성 덕분. 하루에도 두세곡 이상의 신곡이 쏟아지지만, 한 곡에 대한 호평이 이렇게까지 넘실대는 건 드물다.
앨범 발매 전부터 선후배 뮤지션들이 "이적 생애 최고의 작품"이라고 극찬했다는 소문이 돌았고, 지난 13일 음악감상회 후에는 참석 기자들의 SNS 등에 호평이 봇물을 이뤘고, 15일 음반 발매 이후에는 온라인 게시판에 우호적인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여기까지는 기존 '명가수'들과 그리 다르지 않다고 볼 수도 있지만 이후부터는 달랐다. 반응이 오프라인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적 노래 좋다더라"는 말이 실제 사람들에게서 들리기 시작한 것. 음원사이트 유료 고객이 400만명에 불과한 작은 시장에서 작품성 만으로 시장 밖에서 화제를 모은 건 버스커버스커 이후 거의 처음이다.
작품성이 얼마나 달랐던 걸까. 그 누구도 (감히) 타이틀곡에서 시도하지 못했던 우울감의 극치가 오히려 신선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단순히 가을이라 발라드가 된다기엔, 비슷한 시기에 쏟아진 발라드곡이 매우 많고 MBC '무한도전'으로 인한 인지도 효과라고 보기엔 이 곡의 진입순위는 그리 높지 않았다.
물론 뒷심에는 '무한도전' 효과가 없진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적이라는 사람이 그리 낯설지 않은 상태에서, 호평 봇물에 대한 호기심이 '뒤늦게 들어보기'를 유도해낸 것. 전문가들의 호평과 달리 그리 만족스럽지 못한 성적을 낸 한 대형가수의 관계자는 이같이 말했다.
"노래 자체도 훌륭하지만, 노래에 대한 호평만으로 순위 상승이 일어나는 건 거의 기적에 가까운 게 현실이다. 이적의 경우에는 뒤늦게나마 '이적의 신곡이 좋다고?'라며 호기심을 갖게 된 일반 '시청자'들의 힘도 컸던 것 같다. '예능빨'이라고 볼 정도로 '웃긴 사람'으로 크게 터지진 않았어도 인지도, 관심 환기 측면에서 도움 받을 정도는 됐던 게, 기존 다른 '묻힌 명곡'들과 가장 큰 차이점이 아닐까 싶다."
이적이 약간의 '자학성' 멘트로 언급했던 자신의 약점들이 오히려 시너지를 내 이번 '느릿느릿' 1위를 만들어낸 셈이다. 그는 음악감상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음원차트에 있는 곡을 듣다가, '거짓말거짓말거짓말'을 들으면 확 튈 거다.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게 이거니까 이거를 하는 거다. 사실 데뷔 때부터 내 음악이 그리 트렌디한 음악이 아니었다."
"예능의 수확은 없지 않았나.(웃음) 엠넷 '방송의 적'은 존박이 잘 됐다. 예능으론 존박한테 안된다. 나도 예능 이미지로 너무 굳혀지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3개월이면 다 잊혀지는 것 같다. 예능에서도 나는 메인으로 빛을 발한 적은 없다."
너무 웃긴 사람이 되진 않으면서 인지도는 챙겼고, 최근 음악과 '약간'이 아니라 아예 '확' 달라서 오히려 신선했던 것이다.

이적 측은 꽤 바빠졌다. 곧 있을 콘서트에도 탄력을 받았다. 요즘 '감사합니다'를 연발하고 있는 이적의 한 관계자는 이번 1위에 대해 이같이 풀이했다.
"다소 획일화 된 음악스타일에 식상한 대중이 새로운 화법의 음악 소통을 기대했다는 방증이다. 시간을 견디는 음악으로 정평이 나 있던 이적의 신보가 생경한 작품성과 동시에 대중성을 확보해 호평을 받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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