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각오’ 이선규, 거미손 부활한다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3.11.20 07: 05

입고 있던 유니폼이 바뀌었다. 결혼을 하면서 이제는 가장이 됐다. 주위가 많이 달라졌다. 하지만 가장 달라진 것은 몸 안에 있다. 바로 초심을 되찾기로 한 마음가짐이다. 올 시즌 삼성화재 유니폼을 입은 이선규(32)가 달라짐과 함께 명예회복과 우승이라는 두 토끼를 쫓는다.
이선규는 19일 대전충무체육관에서 열린 우리카드와의 경기에서 11점을 올리며 팀 승리에 공헌했다. 절대적인 득점이 많은 것은 아니었지만 분명 경기의 흐름을 주도하는 몫을 톡톡히 해냈다. 공격에서는 외국인 선수 레오에게 쏠린 점유율을 중앙에서 유효적절하게 가져왔고 결정적인 블로킹으로 상대에 넘어가려는 분위기를 붙잡았다. 경기 후 신치용 삼성화재 감독이 “이선규 고희진이라는 두 베테랑 덕분에 이겼다”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을 정도였다.
개인적으로도 의미가 큰 경기였다. 이선규는 이날 2개의 블로킹을 추가하며 프로통산 650 블로킹 성공 고지를 밟았다. 프로를 누빈 수많은 센터 중 가장 먼저 이 고지를 밟은 선수로 이름을 남겼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데뷔 이후 최고의 센터로 이름을 날린 이선규였다. 네 번이나 블로킹왕에 올랐다. 이상적인 신체조건과 완벽한 타이밍으로 상대 공격수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던 그다. 공·수 양면에서 가장 완벽한 센터로 불리며 후배들이 뛰어넘어야 할 하나의 기준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올 시즌 전에는 아픔이 있었다. 현대캐피탈은 삼성화재로부터 리베로 여오현을 영입했다. 보상선수 명단에 이선규의 이름은 없었다. 문성민 등을 보호해야 했던 현대캐피탈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이선규의 속이 편했을 리는 없다. 지난 시즌에는 세트당 평균 블로킹이 0.52개로 전체 9위에 그치기도 했다. “전성기가 지났다”라는 말이 그의 주위를 맴돌았다. 이리저리 자존심이 상했다.
그랬던 이선규가 다시 뛰고 있다. 삼성화재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것을 오히려 전환점으로 삼았다. 명예회복을 위해 비시즌 중 훈련에 매진했다. 몸이 가벼워지자 예전의 모습이 되살아나고 있다. 전반적인 기록만 보면 도드라지지 않을지 몰라도 팀 내 공헌도는 어느 선수 못지않다. 칭찬에 인색한 신치용 감독이지만 이선규에 대해서는 “완전히 자기 자리를 찼다. 현대캐피탈에서 했던 것보다는 범실도 줄고 움직임도 민첩해줬다. 도움이 많이 된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데 주저함이 없다.
그런 이선규는 우승을 목표로 하고 있다. 삼성화재의 벽에 가로 막혀 6년 연속 우승을 하지 못했던 이선규는 “나에게는 우승을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다. 팀을 옮기면서 다시 열심히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것 같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결혼도 했고 옮긴 팀에도 보답해야 한다. 고참이지만 신인 같은 자세로 연습에 임했고 지금도 그러고 있다”고 이를 악물었다. 거미손이 다시 끈끈해질 준비를 마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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