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윤표의 휘뚜루 마뚜루]씨름협회, 승부조작 사태 와중에 골프대회라니
OSEN 홍윤표 기자
발행 2013.11.20 12: 38

‘11월 20, 21일 개최 예정인 씨름인 골프대회가 사정상 급하게 취소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치시고자 하시는 분께서는 금일 17시까지 협회에 신청하시기 바랍니다. 4명 한조, 1박2일 13만 원,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대한씨름협회-’
이 글은 대한씨름협회가 20일 협회 누리집에 긴급 공지한 안내문이다. 씨름협회가 11월 20, 21일 이틀간 경북 문경의 한 골프장에서 씨름인 골프대회를 열 예정이었으나 승부조작 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대회를 그대로 밀어붙이기에는 부담스러워 취소키로 했다는 얘기다. 그런데 안내문을 보면 ‘개인적으로 치려면 협회에 신청을 하라’고 공지를 해놓은 대목이 눈에 들어온다.
대회를 취소한다는 안내문에 정작 골프를 종용하는 인상을 주는 문구가 들어 있는 것이다. 그와 관련, 씨름협회의 한 관계자는 이미 부킹(예약)을 해놓았기 때문에 골프장에 손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골프를 쳐야한다는 설명이다.

씨름협회는 당초 서산에서 열렸던 ‘2013 천하장사 씨름대축제’를 앞두고 7, 8일 이틀간 씨름인 골프대회를 계획했으나 연말 총결산 씨름대회를 바로 앞두고 골프를 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주위의 지적에 따라 대회 이후로 연기했다.
물론 씨름인들이라고 골프를 치지 말란 법도 없고, 씨름인 간의 친목을 꾀하는 골프대회가 필요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하필이면 ‘승부조작’ 사태가 불거져 지탄을 받고 있는 와중에 이런 골프대회를 연다는 것(비록 개인적으로 한정짓긴 했지만) 자체가 바람직한 처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여전히 씨름협회가 사태를 너무 안이하게 인식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의 소리를 듣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현재 씨름선수들의 승부조작 사건을 수사 중인 전주지검은 돈을 건네고 금강급 타이틀을 따냈던 안태민(26. 장수군청. 구속) 씨와 결승전에서 경기를 치렀던 장정일(36. 울산동구청. 구속) 씨외에도 8강전과 4강전 상대 선수도 불러 금품수수 여부를 추궁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우에 따라서는 승부조작의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들의 지도자들도 소환하는 등 씨름계 전반으로 승부조작의 수사가 확대될 지도 모르는 형국이다. 
사실 씨름판의 승부조작은 뿌리 깊고 특히 상금이 내걸린 체급별 장사대회나 천하장사대회는 선수 간 승부 짬짜미의 개연성이 큰 대회이다. 그런데도 씨름협회는 상벌규정 등에 구체적인 예방책이나 벌칙규정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
현재 대한씨름협회 법제, 상벌규정(2013년 2월 27일 제정)  ‘제 4장 징계조항 제14조(징계종류) 5항’에  따르면 ‘경기 중 승부조작 및 양보경기가 인정되면 별도 설치 구성된 심의위원회에서 그 사항을 다루어 징계위원회에 회부한다.’고 해 놓은 것이 고작이다.
사건이 터지자 뒤늦게 박승한 대한씨름협회장이 19일에 기자회견을 열고 대국민 사과와 아울러 ‘씨름발전에 저해되는 행위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서약서를 선수들에게 받는 것 따위의 ‘승부조작 예방책’을 내놓았으나 그저 원론적인 언급에 그쳤을 뿐이다.
씨름의 승부조작은 구조적인 측면이 강하다. 상금이 걸려 있는 대회의 경우 같은 팀 소속 선수끼리 경기를 치를 때 지도자의 종용이나 선수간 은밀한 뒷거래로 이른바 ‘양보씨름’을 한다는 게 공공연한 비밀처럼 돼 있다. 협회 관계자들이 이번 사건처럼 수상쩍은 경기를 적발해낸다고 해도 실제로 ‘물증이 없어’ 대놓고 징계를 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이를테면, 우승을 여러 번 한 선수가 첫 우승을 바라보는 선수와 서로 짜고 장사자리를 내주는 대신 우승 상금은 져준 선수가 챙기는 식의 ‘양보씨름’이 알게 모르게 이뤄져 왔다는 게 정통한 씨름인들의 증언이다. 말이 좋아 ‘양보씨름’이지 돈을 주고받는 엄연한 승부조작이다. 
씨름종목이 스포츠토토에 들어가기 어려운 것이 바로 그런 관습적인 양보 때문인 것이다. 
몇 년 전 승부조작으로 큰 홍역을 치렀던 일본 스모의 경우 15일간 한 대회를 치르는 동안 15판의 돌려붙기(리그전)에서 같은 도장 소속의 선수끼리는 절대로 경기를 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승부조작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대책이다. 그러나 우리 씨름의 경우 그런 최소한의 장치조차 전혀 없어 승부조작의 길이 활짝 열려 있는 셈이다. 
/OSEN 선임기자
19일 기자회견에서 사과문을 발표하고 있는 박승한 대한씨름협회장(제공=대한씨름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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