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열한시'(김현석 감독)는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의 영화다. '뭐지?'라고 깊게 생각할 필요도 없이 데자뷰처럼 떠오르는 하나, 지난 2011년 개봉한 '7광구'다.
지난 20일 서울 왕십리 CGV에서 첫 선을 보인 '열한시'는 한국영화계에서 보기 드문 '타임슬립'을 소재로 한 SF스릴러로 도전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시라노 연애조작단'으로 연출력을 인정받은 김현석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정재영, 김옥빈 등이 출연해 관심을 모았다. 다음 날 오전 11시로의 시간 이동에 성공한 연구원들이 그곳에서 가져온 24시간 동안의 CCTV 속에서 죽음을 목격하고 그것을 막기 위해 시간을 추적하게 된다.
김 감독은 이런 과감한 도전을 한 것에 대해 "찍으면서 왜 그 동안 (이런 영화를)안 찍었는지 알았다. 설정이 시간 이동이기도 해서 아예 블록버스터로 가지 않는 한 제대로 구현하기 힘든 것 같다"라고 전하며 이번 작품이 쉽지 않은 도전이었음을 암시했다.

감독의 말처럼 영화는 얼핏 SF 대작의 외형을 입었음에도 전적으로 드라마에 의존해 있다. 차라리 이를 코믹하게 풀었다면 재기발랄한 B급 영화가 탄생했을 지도 모른다. 문제는 SF와 드라마, 어느 쪽도 시원스레 만족스럽지 않다는 것이다.
시사 후 많은 이들이 '7광구'가 떠오른다는 반응을 보였다. 실제로 '열한시' 속 주인공들이 시간 이동 프로젝트를 행하는 해저 공간은 '7광구'에서 망망대해에 고립된 석유탐사선과 비슷하고, 그 닫힌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는 '7광구'의 변형이라고 과언이 아닐 정도다.
다섯 명 남짓한 등장 인물들은 서로에 대한 사랑과 불신, 배신과 음모를 품은 채 돌이킬 수 없는 재난을 초래하게 된다. 김옥빈이 미래 여행을 위한 옷을 입었을 때, 저절로 '7광구'에서 작업복을 입고 고군분투하는 해저 장비 매니저 하지원이 연상된다. 이렇듯 어쩡쩡한 장르 분위기와 인물 구성 뿐 아니라 뭔가 입에 딱 맞지 않는 듯한 배우들의 대사는 두 영화를 보이지 않는 끈으로 묶는다. 장소와 배경만 달라졌지, 1, 2탄이라고 해도 믿길 정도다.
여기에 더해 '7광구'에는 괴물이 있었다면 '열한시'에는 CCTV가 있다. 이들은 주인공들을 괴롭히는, 드러나 있는 '문제'다. 결국 이는 사람들의 내적 갈등을 폭발시키면서도 극의 긴장감을 조이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나, '열한시' 같은 경우는 '그래서?'라는 의문까지 던져준다.
실제로 이런 종류의 영화가 얼마나 실제 과학에 근접해있냐는 중요치 않다. 감독이 기자간담회에서 한 말대로 어차피 물리학은 가설과 가설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이미 SF 장르에서는 '그래비티'까지 나왔다. 사실감에 있어서는 당분간 이 영화를 따라가기 힘들어보인다. 중요한 것은 블랙홀이든 웜홀이든 시간 여행이든, 얼만큼 진짜 같은 세계를 만들어주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볼 만한 세계를 만들어주냐이다. 15세 관람가. 28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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