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에서만 보던 이병규 선배님을 직접 뵈었어요. 롤모델이자 팬이었는데 마주치니까 엄청 떨리더라고요.”
지난해 11월 외야수 심재윤(20)은 LG 유니폼을 입고 처음으로 프로를 경험했다. 당시 LG는 진주 연암공업대학교에서 마무리 캠프를 열었는데, 마무리 캠프 명단에 이름을 올린 심재윤도 정신없이 흙먼지를 마시고 있었다.
심재윤은 “힘들고 정신이 없다. 그래도 코치님과 선배님들이 잘 가르쳐 주신다”며 “(김)무관 코치님에게 기술적으로 많이 배우고 있다. 폼도 수정하고 있는데 훈련은 힘들어도 재미있다. 선배님들을 보니 확실히 프로는 힘과 배트스피드가 다르다. 롤모델인 이병규 선배님 같은 중장거리형 타자가 되고 싶다. 프로 투수들은 공이 빠르고 변화구도 좋은 만큼 다리를 조금만 들려고 한다”고 부지런히 자신의 과제를 이야기했었다.

심재윤은 2012년 8월 신인 드래프트 4라운드에서 LG에 지명됐다. 고교최강팀 천안북일고의 4번 타자이자 당해 청소년 대표팀 클린업트리오로 맹활약, 외야진 개편 프로젝트를 시작한 LG의 미래로 낙점됐다. 2013시즌 1군 콜업은 없었지만, 퓨처스리그서 타율 2할9푼을 기록하며 뚜렷한 성장세를 보였다.
마무리 캠프서 가장 기억에 남은 순간을 두고 “선배님들이 격려차 마무리 캠프에 와서 저녁을 사주셨다. 이병규·박용택 선배님과 같은 테이블에 앉았는데 신기하고 믿기지 않는 순간이었다. 병규 선배님께서 프로 무대와 몸 관리법에 대해 이야기하시는데 밥을 어떻게 먹었는지 기억도 안난다”며 “사실 엄청 떨었다. 직접 만나서 영광스러웠고 꼭 스프링캠프 명단에 들어서 병규 선배님과 함께 훈련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심재윤이 앞으로 이병규와 함께 훈련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심재윤은 22일에 열린 2차 드래프트에서 NC에 지명, 뜻하지 않게 프로 입단 1년 만에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2014년 스프링캠프를 바라보며 일본 고치 마무리 캠프에 임하던 심재윤에게 그야말로 날벼락이 떨어진 것이다.
격년제로 열리는 2차 드래프트는 2011년 11월 22일 신생팀의 원활한 선수 수급과 각 구단의 전력 평준화를 위해 시작됐다. 신생 구단에 힘을 보태고 좀처럼 올라서지 못하는 2군 선수들에게 새로운 환경과 기회를 제공하지는 취지였다.
당초 9개 구단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상위 40명 외에 선수들에게 큰 기대를 걸기 힘들다. 각 팀들이 얼마나 많은 선수들을 지명할지 솔직히 미지수다”고 말했으나, 무려 27명의 선수들이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NC 이재학, 롯데 김성배 등 리그 최정상급 투수가 2차 드래프트에서 배출됐다. 지명 과정 만큼이나 결과도 관계자들의 예상과는 정반대였다.
그래서 그런지 제2회 2차 드래프트는 분위기부터 1회와 사뭇 달랐다. 각 구단은 상대 구단의 2군 선수들을 면밀히 체크했고, 수차례 시뮬레이션을 돌리며 2차 드래프트 성공신화를 계획했다. 결국 2013년 2차 드래프트에선 34명의 선수들이 이적했다. 이들 중 누군가는 제2의 이재학이나 김성배가 될 것이다.
문제는 34명의 선수 중 3년차 이내의 선수가 8명에 달한다는 것이다. 앞서 말한 심재윤을 비롯해 정혁진(두산-LG) 이정담(롯데-SK) 김대유(넥센-SK) 이윤학(LG-KT) 이준형(삼성-KT) 김영환(삼성-KT) 신용승(삼성-KT) 등 팀이 계획적으로 육성하고 있는 이들이 사정없이 팔려나갔다. 물론 일차적인 원인은 이들이 40인 명단에 제외됐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1군 엔트리가 26명인 점을 감안하면, 정예 멤버를 지키고 묶을 수 있는 2군 선수는 14명밖에 안 된다. 단순히 계산 해봐도 2군 엔트리의 절반가량은 보호할 수 없다. 결국 제대로 실력을 발휘하지도 못한, 여전히 성장 과정에 있는 신예들이 뜻하지 않게 팀을 옮기게 됐다.
체계적인 시스템을 바탕으로 슈퍼스타를 키워내는 팀이 좋은 팀이다. 올해 정상을 다툰 삼성과 두산은 90년대부터 2군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고, 매년 새로운 선수들을 1군 무대에 올리며 꾸준히 상위권에 자리 중이다. 이제는 많은 팀들이 육성의 중요성을 체감, 수백억원을 들여 2군 시스템을 재편하고 있다.
하지만 2차 드래프트가 이런 식으로 돌아가면, 투자를 바탕으로한 각 팀의 청사진이 훼손될 수밖에 없다. 고교졸업 신인이 1군 선수가 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늘어만 가는 지금 추세에서, 갑작스러운 이적은 신예들의 성장에 악영향을 끼친다. 전력평준화를 모토로 내건 2차 드래프트가 10개 구단 신예들을 단순히 사고 파는 매물로 전락시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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