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꽃할배' 기적을 만든 '여의도연구소'의 정체
OSEN 윤가이 기자
발행 2013.11.23 09: 41

KBS 출신 PD 이명한, 나영석, 신원호.. 그리고 이들과 오랜 세월 호흡을 맞춘 이우정 작가까지, 이들이 빚어낸 방송가의 기적(?)이 연일 화제를 낳고 있다.
차례로 CJ E&M으로 이적한 이명한, 신원호, 나영석 PD는 함께 골몰해 신선한 리얼 버라이어티와 복고 드라마를 선보였다. 이명한(최근 CJ E&M 제작기획총괄 국장으로 승진했다) 국장의 진두지휘아래 신 PD가 지난해 여름 '응답하라 1997'로 드라마 연출에 첫 도전했고 올해 여름엔 나 PD가 노년 배우들의 배낭여행을 담은 프로젝트 '꽃보다 할배'로 케이블 채널 신고식을 했다. 결과는 모두 대성공. 케이블 채널 사상 유례없는 시청률 성적뿐이 아니다. '응답하라 1997'은 예능 PD도 웰메이드 드라마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웠고 '꽃보다 할배'는 KBS '1박2일'의 국민적 인기를 재현하는 저력을 입증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응답하라 1997'은 지난해 특히 유행했던 복고 코드를 전면에 내세워 재미와 이슈를 동시에 잡았고 서인국 정은지 호야 이시언 신소율 등 수많은 진주들을 배출해낸 의미가 있다. '꽃보다 할배' 역시 마찬가지로 은퇴가 가까운 노년의 배우들을 연기의 틀 밖으로 끄집어내 연기자 아닌 사람으로서의 매력을 일깨웠고 이 시대 수많은 중년들에게 서방의 배낭여행에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주입했다. 작품 자체의 재미로 보나 의미로 보나 더 나아가 사회적인 반향으로서도 이 두 콘텐츠는 케이블 채널의 한계를 딛고 그간의 숱한 지상파 웰메이드 예능 혹은 드라마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물론 이러한 성공과 성과 뒤에는 이명한 나영석 신원호 PD와 동지 이우정 작가란 거대한 존재가 자리한다.

이들의 산통은 계속되고 있다. 전작의 어마어마한 성공이 부담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새로운 터전(채널적인)에서의 작업은 여전히 군데군데가 낯선 도전이지만 또 속편이 나왔다. 인기리에 방영 중인 '응답하라 1994'는 방송 절반 만에 전작의 시청률을 이미 뛰어넘는 저력을 과시중이다. '꽃보다 할배'에 이은 배낭여행 프로젝트 2탄 '꽃보다 누나'는 촬영을 마치고 12월 첫 방송을 위해 편집 등 후반 작업이 한창이다. 이명한 신원호 나영석 PD가 연출과 편집에 열을 올리는 동안 이우정 작가는 그야말로 멀티 플레이어처럼 드라마 대본을 쓰면서 여행 기획을 짰고 드라마 촬영장을 오가다가도 크로아티아까지 직접 날아가 꽃누나들의 여행을 살폈다.
이 모든 도전과 대박이 가능하기까지, 무엇보다 주효했던 것은 이들의 환상적인 팀플레이다. KBS는 물론 예능가에서는 범접할 수 없는 이른바 '이명한 라인'의 전성기다. 오늘 날의 이러한 성공은 십여 년전 시작된 사모임 '여의도 연구소'에서 작고 엉뚱하게 시작됐다. 여의도 연구소란 이명한 나영석 이우정, 이 세 사람의 지극히 사적인 모임이다. 2001년 나PD가 KBS 공채로 입사한 후 선배인 이명한 PD, 동갑내기 친구인 이우정 작가를 만나 '어떻게 하면 웃길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 위해 발족한(?) 모임이다. 오로지 세 사람이 매일 뭉쳐 여의도 KBS 인근 모처에서 구상을 하고 회의를 하고 논쟁을 벌였다. 의미 없는 수다가 주를 이루기도 하고 어느 날은 초보 PD와 작가들의 넋두리 판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서로에 대한 우정과 신뢰가 바탕이 된 이 여의도 연구소는 오랜 시간 정기적인 만남을 이어가며 태동하고 있었다.
그렇게 '해피선데이'의 '1박2일'과 '남자의 자격'이 탄생했다. 나PD와 입사 동기인 신원호 PD는 조연출 시절 이우정 작가 등과 인연을 맺으며 자연스럽게 여의도 연구소에 스며들었다. 네 사람은 이직 이전 KBS '1박2일'과 '남자의 자격'을 쌍끌이 성공시키며 완벽한 하모니를 자랑했다. 이우정 작가가 '1박2일'과 '남자의 자격'을 왔다 갔다 하며 멀티 활약했고 이명한 PD가 팀장이 되어 궂은비를 온몸으로 맞으며 '해피선데이'를 총괄했다. 나 PD와 신 PD는 각각 메인 연출을 맡아 지금으로선 다시없을 것만 같은 '해피선데이'의 황금기를 이끌어냈다.
이토록 찰떡궁합들이 또 있을까. 네 사람은 서로를 실제 가족들보다도 더 오래 보고 잘 아는 사이라 말한다. 실제로 네 사람이 함께 살 부비며 현장에서 지샌 그 숱한 밤들이 이제는 눈빛만 봐도 무엇을 생각하는 지 알 수 있게끔 무서운 팀워크를 만들어냈다. 가장 선배이자 형인 이명한 PD가 선장이 되어 동갑내기인 나 PD와 신 PD, 이 작가의 도전을 리드하고 지지했다. 넘어지고 깨지는 순간도 있었지만 그 때의 시간들이 없었다면 오늘 날 '응답하라' 시리즈와 '꽃보다 할배' 프로젝트는 나올 수 없었을지 모른다.
인간적인 유대뿐 아니라 일하는 과정에서도 죽이 잘 맞던 네 사람은 결국 새로운 둥지로 함께 날아가 더 큰 기적을 일궈내고 있다. 십여 년전 그 여의도 연구소에서 태동한 그 엉뚱하고 다소 초라했던(?) 창작 욕구는 세월이 지나 가시적인 성과로 나타나는 중이다.  
이명한 PD는 "영석이와 원호, 우정이 등 후배들이 너무나 잘해주고 있어서 걱정이 없다"고 후배들을 추켜세우고 세 사람은 "명한 형이 있어서 든든하다. 명한 형이 없었다면 지금의 성과는 없었을 것"이라며 공을 돌린다. 오늘도 공장에서는 네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부지런히 움직이며 더 나은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다. 여의도 연구소는 '꽃보다 할배'와 '응답하라'의 탄생을 가능케 한 위대한 공장이고 근원지다. 시작은 미약했으나 그 끝은 정말 창대하다.
issue@osen.co.kr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