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니맨이었던 내가 10년이나 있었고 코칭스태프로도 염두에 두었던 팀이 두산이다. 그리고 LG는 내게 새 기회를 주었다. 두 팀 모두 내 야구인생에서 정말 고마운 팀이다”.
전 소속팀의 동료들 중 그를 따르는 이가 많았다. 코칭스태프도 프런트도 그를 좋아했고 팬들도 그를 ‘불꽃 남자’로 부르며 힘을 북돋워주었다. 그러나 이제는 한 지붕 두 가족 팀으로 옮겨 라이벌전을 빛내야 하는 처지. 2차 드래프트를 통해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게 된 ‘타신’ 임재철(37, LG 트윈스)은 감사의 마음으로 2013년 세밑을 보내고 다가오는 2014시즌을 기다린다.
임재철은 지난 22일 2차 드래프트서 LG의 1라운드 선수로 지명되었다. 앞서 임재철은 전 소속팀 두산으로부터 코칭스태프 제의를 받았다. 야구를 임하는 진지한 자세와 뛰어난 자기관리 능력을 지닌 만큼 젊은 선수들의 멘토가 되어주길 바랐으나 아직도 체력 테스트에서 팀 내 최상위권에 들 정도로 힘이 있는 임재철은 현역 생활을 연장할 수 있길 바랐다. 그리고 임재철은 40인 보호선수 명단에 들지 못했고 LG의 선택을 받았다.

지명에 앞서 LG 측은 “임재철이 우리 순번까지 올 수 있을까”라며 반신반의했는데 차례가 오자 주저 없이 임재철을 선택했다. 임재철도 지명에 앞서 “내가 현역 생활을 연장할 수 있을까”라며 드래프트 이틀 전부터 내심 초조한 마음을 가졌다.
“두산에서 내게 코칭스태프 제의를 했었다. 날 높게 평가해주셔서 정말 감사했으나 나는 아직 선수로서 더 뛰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다만 ‘2차 드래프트에서 날 필요로 하는 팀이 있을까’라는 불안감이 있더라. 내심 ‘만약 갈 수 있다면 오랫동안 살아왔던 수도권의 팀으로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도 했고”.
두산으로 둥지를 틀기 전 임재철은 확실한 자리를 못 잡던 저니맨 외야수였다. 천안 북일고-경성대를 거쳐 1999년 롯데에 입단했던 임재철은 2002년 4월 유격수 김태균-좌타자 이명호의 반대급부로 삼성 유니폼을 입었다. 그해 삼성에서 양준혁의 백업 요원으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함께했던 임재철은 2003년 5월 내야수 김승권과 함께 내야수 고지행-좌완 지승민의 반대급부로 한화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2004년 좌완 차명주와의 맞트레이드로 두산 이적할 때까지 임재철은 확실한 자리를 못 잡던 저니맨이었다.
“나는 두산에 오기 전까지 저니맨이었다. 다른 팀에서 적당히 필요로 하지만 내 자리는 확실히 지키지 못하던. 그 임재철이 오랫동안 뛰었던 팀이 바로 두산이다”. 임재철은 2005년 주전 우익수이자 2번 타자로 3할1푼 3홈런 30타점을 기록하며 팀의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이끌었다. 2006시즌 후 늦은 군입대와 함께 선수 은퇴를 고려하기도 했으나 그는 상근 예비역 복무 중에도 몸 관리를 계속 해나가며 2009시즌 2할8푼1리 6홈런 50타점으로 주전 우익수로 다시 섰다.
최근 3년 간 임재철은 주전 외야수로 뛰지는 못했다. FA 자격을 얻어 2년 계약을 맺기도 했으나 주전으로 나서지는 못했다. 그러나 경기 내외적으로 존재감을 발산한 이가 임재철이다. 올해 LG와의 플레이오프 3차전서는 민병헌과 함께 9회초 레이저빔 송구로 팀의 5-4 승리를 이끌고 한국시리즈 진출 발판을 만든 주역이 임재철이다. 올해 팀 주전 우익수로 활약했던 민병헌은 “임재철 선배의 자기 관리 능력은 당연히 보고 배워야 할 점”이라며 존경을 마지않았다. 현장에서 아직도 국내 최고의 홈 송구로 꼽히는 선수가 바로 임재철이다.
“두산에서 10시즌을 뛰었다. 저니맨이었던 내가 10시즌을 안착할 수 있게 했고 날 높이 사며 코칭스태프직을 제의한 팀도 두산이다. 이곳에 있으면서 결혼도 하고 두 아이도 낳고 주전 선수로도 뛸 수 있었다. 내 현역 생활의 의지가 컸을 뿐 두산은 고마운 팀이고 팬 사랑도 정말 많이 받았다. 다치고 돌아왔을 때 팬들이 ‘불꽃 남자 임재철’을 외칠 때는 나도 울컥했을 정도니까”.
내년이면 임재철은 우리 나이 서른 아홉의 베테랑 외야수다. 그러나 LG는 임재철의 경기력이 젊은 선수들을 뛰어넘을 정도이고 팀 1군의 우타 외야수가 정의윤 밖에 없다는 점에서 선수 기용폭을 넓히기 위해 임재철을 선택했다.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이대형(KIA)의 홈 쇄도를 막은 보살도 결정적이었다. 2차 드래프트에 앞서 “어느 곳이라도 가서 현역 선수로 뛸 수 있었으면 좋겠다. 기왕이면 수도권 팀에서 뛸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라며 긴장과 초조를 감추지 못했던 임재철은 새 야구 인생을 쓰게 되었다.
“LG는 팬들의 성원이 뜨거운 인기구단인데다 올 시즌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며 페넌트레이스 2위에 오른 좋은 팀이다. 이전에는 팀 분위기에서 안 좋다는 평도 많았는데 지금은 팀워크도 굉장히 좋아졌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선수 임재철을 1라운드에서 선택해줬다는 자체가 정말 고마운 일 아닌가. 개인적으로도 그동안 출근하던 곳으로 그대로 출근하면 되니 좋다”.(웃음) 새로운 팀에서 프로 14시즌 째를 치르게 된 임재철은 새 기회에 신예 선수처럼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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