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리나(33, FC서울)가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목숨을 잃을 뻔했던 위기를 넘겼다.
FC서울은 24일 오후 2시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부산 아이파크를 맞아 3-2로 이겼다. 서울은 이미 리그 4위를 확보하며 다음 시즌 아시아챔피언스리그(AFC) 진출권을 확보한 상태. 하지만 시즌 마지막 홈경기서 팬들에게 화끈한 승리를 선사하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서울이 자랑하는 데얀, 몰리나, 에스쿠데로 트리오가 총출동했다.
그런데 경기시작 후 단 2분 만에 사고가 발생했다. 부산 문전에서 헤딩슛을 하던 몰리나가 상대수비수 김응진의 머리와 충돌한 것. 몰리나는 김기용 골키퍼의 펀칭에 관자놀이를 맞고 이중충격을 받았고, 공중에서 이미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그는 바닥에 그대로 고꾸라지면서 또 한 번 머리에 충격을 받았다.


이 때 사태의 심각성을 가장 먼저 파악한 데얀이 즉시 몰리나에게 달려와 의식을 확인했다. 하대성 등 서울과 부산의 선수들도 의료진을 불렀다. 하지만 그 때만 해도 몰리나가 얼마나 심각한 상태인지 제대로 확인이 안되는 상황이었다. 그러자 가까이에 있던 부산 서포터스가 일제히 “들어와”라는 함성을 질러 의료진을 재촉했다. 김진규는 몰리나의 혀를 붙잡았다. 혀가 기도로 말려들어가 질식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이후 경기장에는 들것이 먼저 들어갔고, 몇 분 뒤 앰블런스가 투입됐다. 그 사이 심폐소생술을 받은 몰리나는 결국 3분 만에 정신을 차려 앉았다. 다행히 몰리나는 제 발로 걸어서 벤치로 향했다.
의식을 잃은 환자는 첫 5분이 매우 중요하다. 5분 이상 산소공급이 끊기면 뇌에 치명적인 손상이 오기 때문이다.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5분이 지나면 환자의 생명은 보장할 수 없다. 설령 살더라도 불구가 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 2001년 사고를 당한 신영록 역시 제 시간에 응급처치를 받아 목숨을 보존할 수 있었다.
몰리나가 별 탈 없이 자리를 털고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동료들의 침착한 대응 덕분이었다. 아울러 응급상황에서 너나 할 것 없이 나서줬던 부산 선수들과 서포터스도 큰 힘이 됐다.
이날 두 골을 터트려 승리의 주역이 된 데얀은 경기 후 “정말 심각한 상황이었다. 순간적으로 몰리나의 의식이 없는 것을 보고 두려웠다. 부산 선수들까지 도와줘서 그 상황을 넘길 수 있어 기쁘다. 서울에 6년 동안 있으면서 최악의 상황이었지만 모두 괜찮으니까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몰리나가 다치자마자 그라운드로 뛰어간 최용수 감독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그는 “긴급사인이 들어와 충격을 받았다. 몰리나를 사랑하는 가족이 축구장에 있었다. 순간 위험한 생각이 스쳤다. 우리 팀 선수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복받치는 감정을 느꼈다”면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상대편 윤성효 감독 역시 몰리나를 진심으로 걱정했다. 윤 감독은 “우리 선수든 서울 선수든 누구나 그런 상황이 발생하면 지도자로서 남의 선수도 격려하고 아껴줘야 한다”면서 몰리나를 챙겼다.
벤치로 물러난 몰리나는 이후 속개된 경기를 지켜보면서 팀 닥터의 면밀한 진찰을 받았다. 전반 26분 첫 골을 뽑은 데얀은 벤치의 몰리나에게 다가가 감격의 포옹을 했다. 전반전이 끝난 뒤 몰리나는 이대 목동병원에서 CT촬영을 받았다. 다행히 특별한 이상이 없다는 진단을 들었다.
몰리나가 당한 사고는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끔찍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드러난 그라운드의 끈끈한 우정과 동업자정신은 팬들에게 큰 감동을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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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월드컵경기장=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