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저께TV] 드라마스페셜 ‘끈질긴 기쁨’ 단막극의 존재 이유
OSEN 오민희 기자
발행 2013.12.02 07: 30

KBS2 '드라마스페셜 단막2013-끈질긴 기쁨'(극본 장명우, 연출 김종연)이 극본, 연기, 연출 3박자가 고루 갖춰진 웰메이드 단막극을 선보이며 시청자들의 공감을 자아냈다. 잔잔하지만 여운을 남기는 짜임새 있는 스토리, 배우들의 개성 있는 연기, 흔한 청춘의 아픔을 담았지만 완성도 높은 연출이 단막극의 존재 이유를 보여줬다. 
지난 1일 오후 11시 55분에 방송된 '끈질긴 기쁨'에는 무심한 남자친구에게 권태감을 느낀 선주(류현경 분)가 술자리에서 우연히 만난 준기(정은우 분)와 바다를 보러 여행을 떠나며 일상을 잠시 벗어나는 이야기가 그려졌다.
유학에 실패한 뒤 인생에 회의감을 갖고 사는 미술학원 강사 선주는 친구들보다 뒤쳐진 인생에 무기력한 나날을 보냈다. 동창회에서 만난 친구들과 자신의 현실을 비교하며 쓴웃음을 지었고, 미래가 보이지 않는 남자친구 경운(허정민 분)과의 무미건조한 만남에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선주를 연기하는 류현경은 “사람들하고 사는 게 왜 이렇게 힘든 거지. 뭐가 이렇게 잘못된 걸까. 너나 나나 왜 이러고 사냐”고 혼잣말하며 뒤쳐진 인생에 괴로워하는 청춘의 단면을 생생하게 연기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선주는 대학선배 형석(허준석 분)을 우연히 만나며, 준기(정은우 분)와도 인연을 맺게 됐다. 준기는 학부생 때 소설가로 등단한 작가지만, 현재는 딱히 하는 일이 없는 인물. 그는 선주에게 “등단 문학상 이런 거 사실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좋은 글 쓰는 게 중요한 거지”라며 선주와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음을 고백했다. 준기는 선주와 만난 첫날부터 그녀에게 키스하며 바다 여행을 제안했다. 즉흥적인 제안이었지만, 선주는 “당장 가자”고 화답하며 강릉으로의 청춘 여행을 시작했다.
연인과의 관계에서 권태감을 느낄 때 찾아온 새로운 남자는 치명적이었다. 특히 준기의 환경이나 상황이 자신과 비슷하다보니 동질감도 느꼈다. 그러나 선주가 꿈꾸던 낭만은 하루도 가지 못했다. 준기는 무능력한데다 무책임하기까지 한 남자였다. 부모에게 대책 없이 의지하고, 과거의 여자 친구를 만나 도움을 청하는 찌질한 남자였던 것. 결국 선주는 그렇게 준기와 강렬하지만 허무한 만남을 정리했다.
선주는 곧바로 서울로 올라가지 못하고 강릉에 살고 있는 친구 명희(송민지 분)를 찾아갔다. 할아버지가 대학 이사장인 덕분에 어린 나이에 교수 자리를 꿰어찬 부러운 친구였다. 그러나 명희는 온화한 미소와 달리 어딘지 모르게 신경질적이었고, 집안 분위기는 살얼음판이었다. 이런 불편한 분위기 때문에 선주는 다음 날 서울로 가려고 했다. 그러나 이를 만류하던 명희는 “너 알잖아. 알고 있잖아. 그이 어저께 안 들어온 거”라고 소리치며 불행한 결혼생활을 고백했다. 쇼윈도 부부로 살고 있지만, 겉으로는 누구보다 행복하고 화려한 척 사는 명희의 모습에 선주는 쓴웃음을 지었다.
선주는 준기와 명희로 인해 그제야 자신의 평범한 일상과 오래 사귄 남자친구의 소중함을 알게 됐다. 선주는 경운을 만나기 위해 그가 촬영을 떠난 전주로 향했지만, 어째서인지 계속 연락이 닿지 않았다. 불안함에 잠도 이루지 못할 정도였다. 뒤늦게 연락이 온 경운은 휴대전화가 고장났다고 설명하며 선주가 연락이 없어 걱정했다고 덧붙였다. 남자친구의 목소리에 선주는 감정이 북받쳐 눈물을 터뜨렸다. 경운은 흐느껴 우는 선주를 따듯하게 다독이며 정류장으로 마중을 나가겠노라 약속했다. 즉흥적으로 떠났던 강릉과 전주 여행은 선주를 한뼘 더 성장시켰다.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실은 선주는 그 어느 때보다 홀가분한 표정으로 남자친구에게로 향했다.
이렇게 ‘끈질긴 기쁨’은 선주의 여행을 통해 낯선 사람들과 부대끼며 겪는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적나라하게 담아내며, 현재의 삶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고 일탈하려는 이들에게 현재 현실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하며 진한 여운을 선사했다. 
‘드라마스페셜'의 제작비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지만, 사전 제작을 통해 완성도 높은 스토리와 연출을 자랑하며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 했다. 특히 ‘끈질긴 기쁨’은 늦가을을 맞은 소도시 강릉과 전주의 아름다운 풍경이 관전 포인트였다. 추노’, ‘굿닥터’의 김재환 촬영 감독은 강릉 풍경을 헬리캠으로 담는 등 가을의 절경을 담아내어 시청자들의 눈을 즐겁게 했다. 여기에 ‘힘내요 미스터 김’의 공동 연출을 맡았던 김종연 감독은 아름다운 영상미와 함께 현실에 존재할 법한 다양한 인간 군상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세심한 연출로 소장하고픈 단막극을 완성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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