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안 되면 내가 책임지겠다”.
감독은 선수의 자질을 꿰뚫어봤고 선수는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지난 8월 17일 사직 NC-롯데전을 앞두고 롯데 덕아웃에서는 넥센 4번 타자 박병호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롯데는 앞서 이틀 동안 넥센과 2연전을 치렀고 박병호는 7타수 4안타(1홈런)를 기록해 롯데를 괴롭혔다. 김시진 롯데 감독은 박병호를 영입할 당시를 떠올렸다.

김시진 감독은 “(박)병호를 영입하는데 3개월 동안 공들였다”고 말하며 일찌감치 박병호에 대한 확신으로 트레이드를 추진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구단에 ‘잘 안 되면 내가 책임지겠다’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이장석 히어로즈 대표이사도 트레이드 카드를 맞추며 김시진 감독을 적극 지원했다. 김시진 감독은 “이장석 대표는 젊어서 한 번 판단하면 추진력이 빨랐다”고 했다. 2011년 7월 31일 트레이드 마감일에 LG 박병호와 심수창은 넥센 유니폼을 입었고 넥센 김성현과 송신영은 LG로 갔다.
2011년이 끝나고 지난 시즌과 올 시즌이 막을 내렸다. 박병호는 2년 동안 리그 최고 4번 타자로 자리매김했다. 2년 연속 프로야구 MVP를 거머쥐며 박병호 시대를 알렸다. 2005년부터 2011년까지 5시즌 동안 37홈런에 112타점을 기록한 박병호는 지난해와 올해 두 시즌 동안만 68홈런 222타점을 기록한 거포가 돼 있었다.
박병호는 전날 동아스포츠대상 프로야구 부문 올해의 선수상을 받았다. 선수들이 직접 뽑아 의미가 작지 않았다. 박병호는 시상식에서 “김시진 감독님 덕분에 2011년 넥센으로 트레이드 되면서 야구를 잘 할 수 있게 됐다. 힘이 돼주신 분이다”라고 말했다. 김시진 감독은 이날 시상자로 자리를 빛냈다.
김시진 감독은 “7월 31일 트레이드 마감일 당시 (김)성현이가 선발로 나와 승리투수가 됐다”며 “그날 트레이드 하고 나서 야구팬들한테 욕 많이 먹었다”고 회상했다. 김시진 감독은 2011년 8월부터 2012년 9월까지 박병호가 있던 넥센 지휘봉을 잡았다. 박병호는 2년 동안 넥센 4번 타자 자리를 지키며 리그 최정상급 거포로 거듭났다.
박병호는 진화 중이다. 지난해보다 선구안이 좋아져 타율과 출루율 모두 상승했다. 더 까다롭게 성장하고 있다. 한 팀에서 평범했을지 모르는 한 타자가 팀을 옮겨 비범한 타자로 탈바꿈했다. 박병호의 노력 이외에 김시진 감독의 안목도 빼놓을 수 없다.
감독의 할 일 목록에는 선수의 겉으로 드러난 능력뿐만 아니라 감춰진 재능을 발굴하는 것도 포함돼 있다. 선수의 할 일 목록에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미래에 올 기회에 대비하는 게 포함돼 있다. 김시진 감독과 박병호가 그랬다.
rainshine@osen.co.kr
왼쪽 김시진 롯데 감독, 오른쪽 박병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