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의 도약을 이끈 차명석 투수코치가 구리로 자리를 옮겨 유망주 육성에 전념한다. 지난 7월 콩팥종양 제거를 위한 복강경 수술을 받은 차 코치는 병원으로부터 1년 동안 휴식을 취할 것을 통보받았다. 차 코치는 2013시즌이 끝난 후 김기태 감독과 이에 대해 논의했고, 건강 회복을 위해 한 발 떨어져 LG와 김 감독을 지원하게 됐다.
그동안 차 코치는 김기태 감독의 참모, 즉 제갈공명 역할을 해왔다. 단순한 투수코치에 머물지 않고, 트레이드나 FA등 팀의 주요 현안에 대해 김 감독과 머리를 맞댔다. 좋은 일이든 안 좋은 일이든, 김 감독은 언제나 차 코치의 의견을 들었다. 김 감독은 이러한 차 코치를 두고 “우리 차 박사는 정말 이름 그대로다. 항상 차분하고 명석하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왔다.
흥미로운 것은 김 감독과 차 코치의 인연이다. 지금은 두터운 신뢰 관계를 형성하고 있으나, 둘은 지도자로 만나기 전까지 공통분모가 없었다. 현역시절 김 감독이 1991년 쌍방울 입단 후 삼성 SK 등을 거친 반면, 차 코치는 1992년부터 지금까지 LG 유니폼만을 입고 있다. 선수로 활약한 시기는 겹치지만, 동향도 동문도 아니다.

시작은 2010년 김기태 감독이 LG 2군 감독으로 부임하면서부터였다. 일본프로야구 요미우리의 2군 타격 코치였던 김 감독은 구리에서 LG 유니폼을 입고 2군 코칭스태프와 선수단을 알아갔다. 이 중 가장 먼저 김 감독의 시선을 끄는 이가 차 코치였다.
“구리에 출근할 때면 항상 나보다 차 코치가 먼저 와있었다. 사실 처음에는 단순히 ‘나한테 잘 보이기 위해 일찍 오나’ 생각도 했다. 30분씩 일찍 구리로 향하면서 차 코치의 출근 시간을 알게 됐는데 무려 새벽 6시에 구리에 오더라. 그런데 마냥 일찍 오는 게 아니었다. 차 코치는 매일 새벽부터 교육방송을 보면서 영어공부를 했다. 이런 코치를 옆에 두고 있는 것이야말로 행운이라고 느꼈다.”
김 감독은 2011년 10월 LG의 11대 감독으로 선임됐다. 투수코치 자리에는 차명석 코치가 앉았다. 애초에 ‘우리 팀 투수코치는 차명석 코치가 아니면 안 된다’는 게 김 감독의 생각이었다. 취임기자회견에서 김 감독은 7, 8, 9회에 강한 야구를 강조했고, 이에 따라 차 코치는 강한 불펜을 만드는 데에 매진했다.
2012시즌 LG는 유원상-봉중근의 승리공식을 앞세워 2002시즌 이후 처음으로 불펜이 안정됐다. 1년 전 차 코치는 프런트에 요청해 은퇴에 기로에 있던 류택현을 선수로 복귀시켰는데, 류택현은 이상열과 함께 상대팀의 좌타자를 꽁꽁 묶었다. 선발투수였던 유원상의 불펜 전환 또한 차 코치의 발상이었다.
문제는 마무리투수 자리였다. 시즌 초 과감하게 레다메스 리즈를 마무리투수로 기용했으나 실패였다. 사실 차 코치에게 마무리투수 1순위는 에이스투수 봉중근이었다. 그러나 쉽게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다. 무엇보다 당시 봉중근은 팔꿈치 수술 재활로 정상적인 등판이 불가능했다. 차 코치의 고민을 안 김 감독은 봉중근의 마무리투수 전향을 허락했고, 차 코치는 6월 중순까지 봉중근을 연투 없이 마운드에 올렸다. 당해 LG는 불펜진 평균자책점 3.60으로 9년 만에 처음으로 불펜진이 3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뒷문은 강했지만 불펜만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기에는 부족했다. 그런데 이 또한 김 감독과 차 코치의 머릿속에 그려져 있었다. 차 코치는 2012시즌이 시작하기에 앞서 김 감독에게 “당장 올해부터 포스트시즌에 진출하기는 힘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절대로 외부에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됩니다. 목표는 높게 잡되 2013시즌을 바라보고 1년 동안 팀을 잘 살펴봐야 합니다”고 조언했다.
2012시즌을 57승 72패 4무, 7위로 마무리한 후 차 코치는 불펜진에 이어 선발진을 구축하는 데 전념했다. 그리고 2013시즌 LG는 선발진도 도약을 이루며 평균자책점 1위를 달성, 페넌트레이스 2위로 11년 만에 드디어 포스트시즌에 올랐다. 물음표가 가득했던 우규민 류제국 신정락이 한꺼번에 점프, 불과 2년 만에 투수들의 무덤에서 투수왕국이 된 것이다.
차 코치의 롤모델 중 한 명은 메이저리그 세인트루이스에서 15년 동안 투수코치를 역임했던 데이브 던컨(68) 코치다. 세인트루이스는 2011년 월드시리즈를 우승한 후 던컨 코치와 토니 라루사 감독이 은퇴를 선언했고, 중심타자 알버트 푸홀스도 FA로 팀을 떠났었다. 흥미로운 것은 당시 세인트루이스 시민의 마음이었다. 세인트루이스 시민들은 ‘라루사 감독과 던컨 코치, 그리고 푸홀수 중 누구의 공백의 가장 클까’란 설문조사에서 푸홀스보다 라루사 감독과 던컨 코치의 공백을 우려했다. 설문조사 결과는 라루사 감독이 1위, 던컨 코치가 2위, 푸홀스는 3위였다.
15년을 함께한 라루사 감독과 던컨 코치처럼, 김 감독과 차 코치의 연인도 길게 이어질 것이다. 2014시즌 1군 무대에는 없지만, 차 코치는 투수들의 부상 방지와 기량 향상을 돕는 가이드라인을 구축하려고 한다. 내셔널리그 최고 명문구단인 세인트루이스처럼, LG도 김 감독과 차 코치의 손에서 확실한 시스템을 만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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