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팀에 무턱대고 머릿수를 채우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재기하며 도움이 될 수 있는 나를 만들어 후회 없는 선수 생활을 하고 싶은 것이 내 목표다”.
올 시즌 11년 만의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감격을 누린 LG 트윈스. 그 암흑기 시절을 지탱했던 투수 중 한 명이 가을 잔치의 뜨거움 속에서 조용히 팀을 떠났다. 그리고 두 달이 지난 현재 그는 선수 생활을 이대로 마칠 수 없다는 뜨거운 각오 아래 재기를 노린다. 허약했던 투수진 속에서 고군분투하던 우완 정재복(32)은 무적(無籍) 신세 속에서 박명환(NC) 케이스를 동기부여 삼아 선수 생활의 새로운 전기를 꿈꾼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금메달 멤버이기도 했던 정재복은 2003년 LG에 입단한 뒤 팀의 암흑기 속에서 분전했던 투수 중 한 명이다. 선발-계투를 가리지 않고 등판했던 그는 빠른 공의 투수는 아니었으나 안정적인 제구력을 갖춘 투수로 어둔 가운데서 등불이 되었던 투수다. 2005시즌 65경기 5승3패4세이브14홀드 평균자책점 4.10을 기록했고 2008시즌에는 마무리로도 나서며 55경기 4승10패13세이브10홀드 평균자책점 3.89를 기록했다. 공격에 비중이 쏠렸던 팀 상황 상 정재복은 자신의 노력이 팀 성적으로 이어지지 않았던 불운한 투수였다.

부상과 수술 질곡 속 정재복은 또 한 번 희생양이 되었다. 신연봉제로 인해 정재복의 연봉은 마구 깎여나갔다. 지난 시즌 5월17일 문학 SK전서 제춘모와의 선발 맞대결로 6⅔이닝 노히트 2탈삼진 2사사구 쾌투를 펼치며 선발승을 따내기도 했으나 LG에서의 찬란한 순간은 사실상 그 경기가 끝이었다. 팬들과 선수단이 11년 만의 포스트시즌에 감격하던 순간, 정재복은 쓸쓸히 LG 라커룸에서 자신의 짐을 꾸려 나오고 말았다.
현재 정재복은 LG 트레이너 출신인 김병곤 대표가 운영하는 서울 광장동 스포사 피트니스에서 몸을 만들고 있다. 이곳에는 인천고-LG 선배이기도 한 최원호 피칭코치도 정재복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그의 재기를 위해 힘쓰고 있다. 그리고 LG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베테랑 박명환이 이곳에서 현역으로 뛸 수 있는 몸 상태와 구위를 만들어 NC 입단에 성공했다.
“두 달 정도 이곳에서 운동을 하고 있다. 부상은 아니었고 구위 면에서 내가 원하는 만큼 나오지 못했다. 수술 부위인 팔꿈치 보다는 어깨 유연성을 좀 더 높이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LG 암흑기 시절 고생했던 투수의 방출이라는 글들을 많이 보았는데 그 때 고생하지 않은 투수가 어디 있겠는가”.
방출 선수 신세지만 정재복은 김기태 감독을 원망하지는 않았다. “좋은 분께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다만 캠프서부터 페이스를 먼저 올리다보니 시즌 때 힘이 떨어지기도 했고. 오히려 페이스를 너무 일찍 올린 것이 독이 되었던 것 같다”라며 자신의 실책을 먼저 돌아보고 아쉬워한 정재복이다.
이어 정재복은 “3~4팀에서 이야기가 나오기는 했다. 그러나 방출된 후 공을 던지지 않은 상태라 곧바로 테스트에 임하기는 어려워 고사를 했다. 공을 제대로 던지지 않은 지 두달이 된 상태에서 새 팀을 곧바로 알아보는 것은 아니다 싶다”라고 이야기했다. 단순히 새 팀의 머릿수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재기할 수 있는 몸 상태를 갖췄을 때 새로운 팀에서 제대로 공헌하고 싶다는 선수 본인의 신념이었다.
“내 목표는 재기다. 다른 팀에 그저 들어가서 머릿수를 채우는 것이 아니다. 금전적으로는 조금 힘들겠지만. 김 대표께서도 많은 배려를 해주시고 원호형과는 5~6년 간 함께 룸메이트이기도 했다. 서로 머리를 맞대고 어떻게 해야 제대로 된 공을 던질 수 있을 지 연구하고 싶다. 내년 오뉴월 쯤 내가 자신있는 몸 상태로 자신있게 공을 던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1년 간의 무소속 상태를 감수하고 새로운 팀을 찾은 박명환은 정재복에게 좋은 동기부여 예가 되기 충분하다. 박명환에게 약속의 땅이 된 곳에서 정재복은 또 한 번의 야구드라마를 꿈꾸는 입장. “명환이 형은 대단한 사람이다. 내 현재와 비슷한 상태에서 시작했는데 그 형은 한 번 고비를 맞았다더라. 그리고 그 이후에도 인내심으로 버텨 새로운 팀을 찾는 데도 성공했다”라며 정재복은 박명환의 경우가 좋은 동기부여가 되고 있음을 밝혔다.
“재기하겠다는 바람도 크고 새로운 팀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마음도 확실히 갖고 있다. 내가 그동안 무엇을 했다는 것을 잊고 자존심을 버리고 야구에 달려들어야 진짜 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조언도 들었다. 쉽지는 않더라. 그러나 나는 선수로서 조금 더 후회없이 뛰고 싶다. 아쉬움을 남기고 싶지 않다”. 베테랑은 지금의 고난이 내일의 보람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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