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두 남자였다. 입지가 예전만 못했다. 하지만 경쟁과 협력이라는 두 키워드 사이에서 멋진 하모니를 만들어냈다. 그 결과 리그 7연패를 향해 달리는 삼성화재의 최후 보루로 우뚝 섰다. 고희진(33, 198㎝)과 이선규(32, 199㎝)라는 두 방패가 삼성화재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자리하고 있다.
4일 현재 리그 선두를 달리며 7연패를 향해 달리고 있는 삼성화재다. 외국인 선수 레오의 위용이 여전하다. 하지만 최근 신치용 삼성화재 감독은 레오보다 “베테랑 덕분에 이겼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신 감독의 시선이 향하는 선수가 바로 고희진 이선규다. 물론 팀의 주포인 레오나 박철우처럼 화려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알토란같은 몫으로 팀에 없어서는 안 될 선수로 각광받고 있다. 팀 분위기를 이끄는 리더들이기도 하다. 이제는 대놓고 보이는 공헌도다.
지난 시즌 삼성화재의 세트당 평균 블로킹 개수는 2.57개로 6개 팀 중 4위였다. 프로 출범 이래 이 부문에서 한 번도 정상에 오른 적이 없다. 그러나 올해는 4일 현재 세트당 2.94개로 당당히 리그 1위를 달리고 있다. 팀 속공 성공률도 69.16%로 선두다. 다 고희진과 이선규의 덕이다. 고희진은 세트당 평균 1개로 블로킹 1위다. 이선규는 속공 성공률이 69.23%로 리그 전체 2위를 달리고 있다.

항상 상대적 약점으로 지적됐던 센터진이 오히려 팀의 강점으로 부각된 셈이다. 하지만 그 중심에 있는 두 선수의 시즌 전은 사실 추웠다. 국내 최고의 센터로 군림했던 이선규는 여오현(현대캐피탈)의 FA 보상선수로 삼성화재 유니폼을 입었다. 필요성을 인정받은 것이었지만 친정팀 현대캐피탈의 보호는 받지 못했다. 적잖이 속이 상했다. 반면 이선규가 입단하자 가장 먼저 자리를 위협받은 선수가 고희진이었다. 지태환은 삼성화재가 전략적으로 키우는 센터였던 까닭이다.
두 베테랑 사이의 경쟁이 불가피했다. 실제 주전을 차지하기 위해 이 두 베테랑은 어느 때보다 많은 땀을 흘렸다. 고희진은 버티기 위해, 이선규는 밀어내기 위해 배구공과 싸웠다. 하지만 꼭 경쟁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 뒤에는 협력이 숨어 있었다. 세월의 내공이었다. 어느덧 경쟁하면서도 껴안을 줄 아는 베테랑들로 성장한 두 선수였다. 서로 가진 노하우를 아낌없이 풀어냈다. 설사 한 선수가 벤치에 있더라도 이는 마찬가지였다.
그 줄타기 속에 삼성화재의 센터진은 강해졌다. 이제는 오히려 지태환이 벤치로 밀렸을 정도다. 고희진은 최근 결정적인 순간 블로킹을 잡아내며 팀 분위기를 완벽하게 반전시키고 있다. 비시즌 동안 예전의 모습을 되찾기 위해 훈련에 매진한 이선규도 전성기의 공격 모습이 나온다는 평가다. 게다가 이들은 팀의 최선임급 선수들이다. 이들의 기가 살면 자연히 팀의 기도 살아난다. 신치용 감독이 주목하는 것도 이 점이다.
체력적 문제에서는 자유롭지 못하다. 신 감독도 지태환을 활용한 적절한 체력 안배를 계획하고 있다. 그만큼 두 선수의 비중이 크다는 것을 시사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만약 이강주까지 살아난다면 여오현을 보내고 이선규를 지명한 것이 ‘신의 한 수’가 될 수도 있다는 기대다. 두 남자에게 위기는 곧 기회였다. 어쩌면 이는 6년 동안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정상에 오른 삼성화재의 저력을 보여주는 한 사례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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