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호(28, 상주)가 옛 스승의 가슴에 제대로 비수를 꽂았다.
K리그 챌린지 우승팀 상주는 4일 상주시민운동장에서 벌어진 2013 현대오일뱅크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두 골을 터트린 이상협을 비롯해 이승현, 이상호의 연속골에 힘입어 K리그 클래식 12위팀 강원FC를 4-1로 완파했다. 이로써 상주는 오는 7일 강릉서 펼치는 2차전서 비기기만 해도 클래식으로 승격하게 됐다.
경기 전 양팀 감독이 꼽은 키플레이어는 국가대표 공격수 이근호였다. 김용갑 강원 감독은 청소년대표시절 제자였던 이근호에게 냉정한 평가를 내렸다. 김 감독은 “이근호도 그냥 선수다. 예전처럼 ‘화장실까지 쫓아다니라’며 이근호에게 2~3명을 붙이는 것은 현대축구에서 무의미하다. 이근호에게 한 골도 안 줄 자신이 있다”며 이근호를 평가절하했다.

이어 김 감독은 “이근호가 외박을 위해 뛴다고 했다. 또 월드컵을 위해 클래식에서 뛰는 것이 좋다고 했다. 결국 자기욕망을 위해 뛴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팀의 존폐를 놓고 강원도민을 위해 뛴다”며 이근호를 깎아내렸다. 물론 김용갑 감독이 진심으로 이근호를 미워할 리 없다. 다만 중요한 경기를 앞둔 고도의 심리전이었다.
경기 전 김 감독의 이근호 발언을 전해들은 박항서 상주 감독은 껄껄 웃으며 “(이)근호에게 그 얘기를 좀 전해 달라. 자극 좀 받게”라면서 개의치 않았다. 국가대표 공격수인 이근호가 강원을 상대로 통하지 않을 리 없다는 자신감이었다.
측면공격수로 선발출전한 이근호는 특유의 빠른 스피드를 활용해 강원 문전을 헤집었다. 이근호의 파괴력 있는 좌우돌파가 이어지면서 강원의 수비진은 붕괴될 수밖에 없었다.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간 이상협은 두 골을 터트리며 맹활약했다. 이승현, 이상호의 득점 역시 이근호의 숨은 도움이 있었다.

경기 후 김용갑 감독은 “이상협에게 준 첫 골이 뼈아팠다. 상주로서는 하태균의 부상이 오히려 행운이 된 것 같다”며 패배를 인정했다.
박항서 감독은 이근호의 활약에 대해 “97점을 주겠다. 득점은 못했지만 상대를 헤집을 수 있었다. 이근호에게 공이 투입되면 강원 4명의 미드필더가 무너진다. 그래서 무조건 공을 이근호에게 넣으라고 했다. 이근호가 움직이면 (김)동찬이와 (이)상호가 공간 커버를 잘해줬다.이근호는 주어진 전술을 100% 잘 수행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지난 2일 미디어데이서 이근호는 김용갑 감독의 도발에 발끈하며 “난 예전의 풋내기가 아니다”라고 받아쳤다. 이근호는 그라운드서도 자신의 말을 100% 증명해냈다. '이근호에게 한 골도 안 주겠다'던 김용갑 감독도 약속은 지켰지만 승부에서는 제자에게 패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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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민경훈 기자 rumi@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