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겠다' 결심 김호곤, "노장은 닳아 없어지는 것"
OSEN 김희선 기자
발행 2013.12.05 07: 33

"노장은 녹슬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닳고 닳아 없어지는 것이라 합니다."
김호곤(62) 울산 현대 감독은 그 말과 함께 감독직을 내려놓았다. "우승에 실패한 책임을 통감한다. 책임을 지고 자진 사퇴하겠다"는 갑작스러운 선언은 오래 전부터 결심한 것인양 담담했지만 무언가를 내려놓는 자리는 그와 같은 노장에게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물만 자꾸 들어가네"라며 연신 목을 축이던 김 감독의 손은 계속 떨리고 있었다.
김 감독은 4일 서울 남산클럽에서 기자 간담회를 열고 자진 사퇴 의사를 밝혔다. 5년 동안 울산과 함께한 김 감독은 몇 번이나 사퇴 이유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우승에 실패한 책임을 지겠다"고 되풀이하며 희미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2011년 러시앤캐시컵(리그컵) 우승, 2012년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이하 ACL) 우승, 그리고 2013년 K리그 클래식 준우승이라는 연이은 결과물에도 불구하고 김 감독이 지휘봉을 내려놓겠다 단언한 이유는 무엇일까.

시즌 개막 전까지만 해도 울산은 우승 후보가 아니었다. ACL 우승의 주역 이근호를 비롯해 이재성, 이호가 모두 빠졌고 곽태휘와 고슬기는 중동, 중원을 책임진 에스티벤도 일본으로 떠나면서 전력 약화가 예상됐다. 하지만 주전 선수들이 대거 빠진 상황에서도 김 감독은 적재적소에 알짜배기 영입으로 전력을 보강했고 '마라톤 전략'을 고수하며 꾸준히 선두권을 유지했다.
비록 한 해 농사의 결실을 거두는 마지막 경기서 김신욱과 하피냐의 결장 속에 아쉽게 준우승을 차지했지만, 올해 울산이 걸어온 행보는 강팀으로서 단연 빛나는 것이었다. 김 감독도 "마지막이 그렇게 돼서 아쉽다. 하지만 선수들이 잘싸워줘서 지도자로서도 행복했고 후회없는 경기를 했다"며 올 시즌을 돌이켰다.
그러나 김 감독은 굳이 사퇴를 결심했다. 갑작스러운 김 감독의 사퇴 결정에 당황한 것은 울산 구단도 마찬가지였다. 김 감독은 "구단에도, 선수들에게도 미리 알리지 않았다"고 했다. 코칭스태프도, 선수들도, 심지어 가족들도 마지막 순간까지 그의 결심을 몰랐다. 김 감독은 사퇴 의사를 밝히기 전날인 3일 권오갑 울산 사장을 만나 면담을 갖고 홀로 조용히 결심을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사퇴 발표 후에도 '노장'이라는 말이 싫다며 미소를 지킨 김 감독은 "지금의 내 상황과 어울리는 말이 있어 적어왔다"며 KFC 창업자인 커넬 샌더스의 명언을 읊었다. "노장은 녹슬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닳고 닳아 없어지는 것"이라고 나직히 읊조린 김 감독은 "당분간 쉬려고 한다. 앞으로의 일에 대한 계획은 아직 없다"고 덧붙였다.
한편, 김 감독의 사퇴로 공석이 된 울산 감독직에는 김현석 전 울산 수석코치와 조민국 울산미포조선 감독, 허정무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등이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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