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집으로 가는 길'(방은진 감독)은 한 마디로 왜 배우 전도연의 이름값이 높은지 알 수 있는 영화다. 영화를 보면 그의 연기력을 100% 민낯으로 마주할 수 있다.
'집으로 가는 길'은 지난 4일 서울 왕십리 CGV에서 베일을 벗었다. 12월 '변호인', '용의자'와 함께 극장가 '빅3'로 손꼽히는 작품이라 당연지사 관심을 모았고, 더욱이 앞서 뚜껑을 연 '변호인'이 감동과 여운이 있는 작품이라는 입소문이 타고 있어 더욱 집중됐다.
공개된 '집으로 가는 길'은 멜로 장르가 아님에도 격정적인데, 이를 가능하게 만든 것은 역시 전도연이다.

영화는 10년 전인 지난 2004년 10월 30일 프랑스 오를리 공항에서 마약 운반범으로 오인받아 대서양 건너 외딴 섬 마르티니크 감옥에 수감된 평범한 한국인 주부 장미정 씨의 실제 이야기를 소재로 했고, 그렇기에 자연스럽게 전적으로 극을 이끌어가야 하는 여배우의 짐이 상당할 수 밖에 없다.
이 지점에서 전도연의 캐스팅은 당연하고도 '안전한' 최고의 선택이다. 연기를 기술적인 것과 감성적인 것으로 나누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전도연은 영화 '밀양'에서 보여줬던 삶의 극한에서 폭발하는 본인 특유의 연기 스타일을 보여주면서도 또 다른 인간사의 오만가지 감정들을 진정성있게 드러낸다.
사실 여배우라면 이 드라마틱한(좋지 않은 의미로) 인생을 산 여인을 연기하고픈 욕심이 자연스럽게 생기겠지만, 화장기는 커녕 너무 초췌해 민망할 정도의 민낯으로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것에는 용기가 필요했를 것이다.
붉게 충혈된 눈, 정리 안된 부스스한 머리, 너무 말라 볼품없어진 몸. 스크린에 전도연은 없다. 송정연만 있을 뿐이다. 특유의 귀염성은 척박한 순간에도 종종 드러내는데 그 모습이 아련해 눈물이 날 정도다.
딸과 함께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는 조곤조곤한 대사만으로도 보는 이를 울컥이게 만들고, 공권력에 의지하면 의지할수록 배신당하고 좌절하는 모습에서는 울분이 토해진다. 끔찍한 수감 생활에서 겪는 일련의 상황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관객들을 지옥으로 안내한다. 서서히 미쳐갈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흔들리면서도 중심을 잡는 연약한 여자의 몸부림은 부서질 듯 하면서도 강렬하다.
영화는 많은 지점에서 관객들을 울린다.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타지의 수감생활 속 생긴 친구가 그리워 목놓아 부르는 장면, 그토록 가고싶었던 달콤한 휴양지인 카리브해를 마치 신기루처럼 망연자실하게 바라보는 모습은 여운이 짙다.
'칸의 여왕'이라는 수식어를 받고도 아직도 전도연이 과대 평가 받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이라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15세 관람가. 11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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