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프에서 네 모든 것을 무리하게 보여주려고 하지는 말아라. 네 힘의 80% 정도를 쓰고 남은 힘은 시즌을 온전히 마치기 위해 비축해야지”.
오랫동안 재활에 매달려야 했던 유망주. 팀을 떠나며 등번호를 물려주게 된 10년차 선배는 후배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2차 드래프트를 통해 두산 베어스에서 KIA 타이거즈로 유니폼을 갈아입게 된 우완 김태영(33, 개명 전 김상현)은 이제는 전 소속팀 후배가 된 성영훈(23)에게 귀중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성영훈은 덕수고 시절 또래들은 물론 아마추어 역사 상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최고 유망주 중 한 명으로 평가받은 대형 유망주다. 2008년 캐나다 청소년 야구 선수권 우승 주역인 성영훈은 그해 4월 일찌감치 두산의 1차지명으로 선택받아 계약금 5억5000만원을 받았고 2009년 데뷔했다. 그러나 첫 2년 간 팔꿈치 통증으로 인해 고전하다 결국 인대 접합 수술을 받고 2년 간 공익근무로 병역을 해결했다.

그의 고난은 끝나지 않았다. 전지훈련에 합류했으나 어깨 통증으로 인해 제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한 달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조기 귀국했던 성영훈은 계속 어깨가 좋지 않아 퓨처스리그 실전 등판 기회조차 갖지 못하고 재활군에 있었다. 시일이 꽤 지난 후 어깨 인대가 약간 손상되었다는 진단을 받은 성영훈은 최원호 피칭연구소장, 김병곤 스포사 피트니스 대표의 도움 속 어깨 유연성을 갖추고 근력 회복 등의 준비를 갖춰가고 있다.
팬들과 구단의 기대가 지대했던 데 비해 아파서 3년의 실전 공백이 생겼기 때문인지 선수 스스로 많이 위축된 모습을 일관했다. “고교 졸업 후 정상 컨디션으로 던진 적이 없어서 스스로도 스트레스가 컸다”라며 성영훈의 표정은 일순간 다시 어두워졌다. 때마침 재활 훈련을 마친 김태영이 성영훈의 곁에 앉았다. 두산에서 10년간 뛰며 선발-계투를 종횡무진하는 등 보이지 않는 공헌도가 컸던 김태영은 지난 11월22일 2차 드래프트를 통해 KIA로 이적하게 되었다.
“실전 공백 3년이 있는 만큼 네 스스로도 조급하고 아프지 않다면 네가 무리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면 안 된다. 올해 전지훈련서도 네가 몸이 채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100%를 보여주려다가 다치고 중도귀국 했잖니. 캠프에서는 네 힘의 100%가 아니라 80% 정도를 보여줘야 하는 거야”.
실패한 유망주들이 답습하던 안 좋은 버릇을 없애주기 위한 김태영의 귀중한 이야기였다. 대체로 1군에서 보여준 것이 없는, 스스로 자리를 만들어야 하는 입장의 유망주들은 전지훈련이나 심지어 시즌 후 마무리 훈련, 교육리그서부터 코칭스태프의 눈도장을 받기 위해 오버 페이스를 보여주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영리한 체력 안배 등이 없이 시즌 개막 전부터 전력을 다하다 정작 중요한 페넌트레이스서는 자취를 감추고 쓸쓸히 야구를 접는 전례도 많았다. 김태영은 이 부분을 경계하며 성영훈에게 귀한 조언을 했다.
“캠프에서 모든 것을 쏟아낸 선수가 페넌트레이스에서도 대단한 활약을 이어가는 경우가 얼마나 되는 지 돌아봐야 한다. 캠프에서 전력을 다한 유망주가 그해 1군에서 성공하는 케이스는 거의 없다. 3년 간 실전 공백이 있던 만큼 네가 불안해 하는 것도 이해하지만 중요한 것은 네가 스프링캠프부터 힘을 다해 던지는 것이 아니라 네가 어떤 로케이션으로 던질 수 있는 지 시즌을 위해 힘을 비축하면서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 우선이다”.
사실 선수의 전체적인 체력 안배 부분은 코칭스태프도 터놓고 이야기하기가 힘들다. 더욱이 두산은 송일수 신임 감독을 갑작스레 정한 만큼 유망주들 입장에서는 스프링캠프부터 오버 페이스를 할 가능성도 큰 것이 사실. 이 부분은 코칭스태프가 선수에게 직접 조언하기가 힘들다. 김태영은 그 길을 10년 먼저 걸었던 선배로서 성영훈에게 귀한 조언을 한 뒤 “내 번호를 이어받게 되었으니까”라며 웃었다. 성영훈의 다음 시즌 새로운 등번호는 27번이다.
farinelli@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