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숙 작가가 집필한 SBS 수목드라마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 상속자들'(이하 상속자들)이 그의 전작들과 흡사한 설정 속에서 스토리가 전개된다는 ‘자기복제’ 우려에도 불구하고 차별화에 성공하며 기분 좋은 마침표를 찍었다.
김 작가는 '김은숙 마법'이라는 단어까지 만들며 로맨틱 코미디 물에서 입지를 굳힌 인물이다. 전작인 '시크릿 가든', '신사의 품격' 등 집필하는 드라마다 마다 강력한 팬덤을 형성했고, 여심을 대변하는 연애 세포 생성 드라마로 환영을 받았다. 문제도 있었다. 비슷한 설정이 자기 복제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상속자들’에 담긴 재벌집 아들 김탄(이민호 분)과 가난한 여자 차은상(박신혜 분)의 무모한 사랑은 전작 ‘시크릿가든’을 떠올렸다. ‘시크릿가든’에서는 싸가지 없는 김주원(현빈 분)과 스턴트우먼 길라임(하지원 분)의 로맨스가 그려진 바 있다. 여기에 과거 꽃미남 드라마 ‘꽃보다 남자’로 인기스타 반열에 들어섰던 이민호가 다시 재벌2세 캐릭터에 도전했다는 점은 기름을 부은 셈이 됐다. 우려의 목소리가 컸던 것이 사실.

이 같은 문제는 초반에 완전히 사그라졌다. 특히 배우들의 호연은 드라마의 맛을 살린 일등공신. 서자라는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인물 김탄을 표현하며 이민호는 농밀한 감정연기를 선보였다. 어린 아이처럼 엉엉 울다 다시 일어나 자신의 어깨에 지워진 짐을 이고 나아가는 모습은 감동에 가까웠다. '상속자들'을 촬영하며 데뷔 10주년을 맞은 박신혜는 '눈물의 여왕'으로 한단계 올라섰다. 풋풋하기만 했던 그에게는 여성스러운 로코 여주인공의 느낌이 물씬 풍겼다. 다양한 감정신은 그의 내공을 증명해준 좋은 예가 됐다. '상속자들' 최고의 발견으로 꼽히는 김우빈의 몰입도도 감탄을 자아냈다. 눈썹을 쓰다듬는 작은 동작까지 계산해가며 영도에 빙의됐다. 그는 이민호 만큼이나 뜨거운 팬층을 갖게 됐다.
배우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운동장은 김 작가가 만들었다. 그는 설득력을 갖춘 캐릭터들로 반감을 최소화했다. 어장관리 하는 여자 주인공은 없었고, 막무가내로 보일만큼 로맨틱한 남자 주인공만 있었다. 인정에 호소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놓으며, 감정적으로 여유를 줬다. 겉으로 보기엔 완벽한 상속자들이 본의 아니게 떠안고 있는 삶의 무게를 짚어내며 이유없는 방황에 근거를 마련했다. 또, 한번쯤 말해보고 싶은 어록을 만들어 내며 집중도를 높였다. "나 너한테 반했냐"(김탄), "뭘 또 이렇게 정직하게"(최영도) 등은 패러디 돼 사용될 만큼 인기를 모았다.
아름다운 퇴장을 하는 '상속자들'이지만 시청률에서는 고전했던 쓴 역사가 있다. 수목극 2위로 출발한 ‘상속자들’은 지난달 20일까지 제자리에 머물렀다. 반등의 기회는 동시간대에 방영되던 KBS 2TV 수목드라마 ‘비밀’이 종영하면서 찾아왔다. 시청률이 상승한 것은 물론, 오히려 ‘비밀’보다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대박 드라마로 거듭났다. 이는 탄-은상의 로맨스가 점화된 시점이기도 했다. 드디어 ‘상속자들’은 19회에서 자체 최고 시청률인 24.3%(닐슨코리아 전국 기준 집계)를 기록했다.
'상속자들'은 김은숙 작가와 '타짜', '마이더스'를 연출한 강신효 PD가 만든 작품. 경영상속자, 주식상속자, 명예상속자, 주식상속자 등 부유층 고교생들과 유일한 가난상속자인 여주인공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청춘 로맨틱 코미디물로, 이민호, 박신혜, 김우빈, 크리스탈, 김지원, 강민혁, 최진혁, 임주은 등이 출연했다.
'상속자들'에 이어 오는 18일부터는 김수현, 전지현 주연의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가 방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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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자들’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