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칠고 치열한 조직이라면, 어디에나 대표적인 '마녀'는 한명쯤 있게 마련이다. 연예계도 마찬가지. 특히 사건 사고 많고, 말 많은 가요계선 각 회사마다 '마녀'로 불리는 카리스마 넘치는 여성 임원이 있는데, 최근 방송으로 얼굴이 많이 알려진 FNC엔터테인먼트의 김영선 이사도 그 중 한명이다.
대형엔터테인먼트사로 거듭나고 있는 이 곳에서 엔터테인먼트 사업부 기획총괄이사를 맡고 있는 그는 기획1~3팀, 디자인팀, 언론홍보팀, 신인기획팀, 미디어팀을 이끌고 있다. 30여명의 직원들이 그의 지시에 따라 앨범을 기획하고 연습생을 트레이닝 시키고, 홍보 프로모션을 짠다.
FNC엔터테인먼트 구석구석을 재미있게 보여주고 있는 tvN '청담동 111' 속 그의 모습은 똑부러지게 일을 해내고, 매서운 독설도 서슴지 않는 진짜 '마녀'다. 하지만 메이크업을 지우고 서류더미가 가득 쌓인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유쾌하고 재미있기만 하다. 시트콤을 방불케 하는 한성호 대표와의 질긴 '악연'부터, FT아일랜드-씨엔블루를 뽑아낸 인재 알아보는 비결까지 모두 공개한다.

# 정든 가수, 잘 안되면 내 탓 같아
OSEN(이하 O) - 기획이라면, 좀 모호한데요. 정확히 어떤 어떤 일을 하고 계세요?
김영선 이사(이하 K) - 기획 1~2팀에서는 앨범, 아티스트를 맡고 있고요. 3팀에서는 콘서트 기획과 팬 관련 기획을 하고 있어요. 언론홍보팀과 긴밀히 움직이며 앨범, 프로모션 관련 일을 진행하죠. 디자인팀에서는 모두 알고 계시듯이 앨범 포토, MD 디자인, 포스터 제작 등의 일을 하고 있고요. 미디어팀은 사내 필요한 영상과 사진을 촬영하죠. 신인 기획팀에서는 캐스팅, 연습생 관리, 데뷔까지의 기획-세팅 등을 맡고 있어요. 월말평가를 진행하고, 모니터를 통해 장단점을 파악하고 있는데 현재 20명 가량의 연습생들이 있어요.
O - FNC로 들어오는 1차 관문을 여기서 맡고 있는 거네요.
K - 그런 셈이죠. 신인기획팀에서 괜찮은 친구들을 추천하는데, 그 중에서 가능성이 있는 친구들을 선별하고 있어요. 그냥 '잘한다' 수준이 아니라, 프로페셔널하게 될 수 있을지 보는 거죠. 촌스러운 티만 좀 벗기면 연기자가 될 수 있겠다, 트레이닝만 조금 받으면 메인 보컬이 되겠다, 그런 판단을 하게 돼요.
O - 요즘 각 기획사마다 인재가 많이 없다고들 해요. 정말 그런가요.
K - 아무래도 연습생 계약이 어려워지긴 했어요. 제가 FT아일랜드 멤버들을 캐스팅 할 때만 해도 이렇지 않았거든요. 괜찮은 잡지 모델 중에서도 기획사가 없는 친구들이 굉장히 많았죠. 요즘에는 '좀 어려운 케이스가 아닐까' 하는 친구들조차도 다 기획사가 있어요. 다들 계약을 다 해버린 상태인 거죠. 오디션 프로그램도 많다보니, 아무래도 오랜 트레이닝을 하느니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단번에 인지도를 높이겠다는 친구들도 많아요. 이해가 되긴 해요. 오랜 기간 연습에만 투자한다는 것, 굉장히 겁이 날 것 같긴 해요.
O - 기획사에서 먼저 내보내는 친구들도 꽤 있지 않아요?
K - 없진 않죠. 과제를 안해온다거나, 처음 들어왔을 때보다 실력이 늘지 않는다거나, 이유 없이 학교를 가지 않는다거나. 특히 학교 생활은 중요하다고 봐요. 학교도 제대로 안다니는데 연습을 열심히 해낼까요. 바로 데뷔 직전의 멤버들이 아니면 학교 생활에 우선권을 줘요.
O - 막 울면서 매달리는 경우도 많을텐데요.
K - 있죠. 최대한 초창기에 얘기해주려 해요. 한두달 내에요. 울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받아주면 그건 서로에게 더 큰 실수니까요. 다른 기획사에서, 혹은 아예 다른 길을 잘해낼 수 있는데 괜히 데리고 있으면 안되죠. 단호하게 얘기해요.
O - '마녀'가 될 수밖에 없네요.(웃음)
K - 단호해야죠.(웃음)
O - 저는 아직 누가 잘되고, 안될지 잘 모르겠어요. 그런 감이 딱 오나요. 예를 들면, 정용화는 어땠어요? 연습생 때부터 어마어마한 아우라가 있고 그런 건가요.
K - 아니요.(웃음) 처음부터 두각을 나타내는 스타일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매력이 보이더라고요. 실력이나 성실함은 기본으로 깔고, 그걸 넘어서서 대중이 연예인을 볼 때, 여자가 남자를 볼 때 갖게 되는 매력? 끌림? 그런 게 캐치될 때가 있어요. 좀 더 예뻐진다고 해야 하나? 요즘은 그런 면에서 민혁이 많이 발전 중이고요. 연기자들은 드라마를 잘 만나면 그런 걸 갖게 될 때가 있죠.
O - 이홍기는 어땠어요?
K - 실력이 좋았죠(웃음). 처음 봤을 때 시원한 창법으로 노래를 정말 잘했어요. 실력으로 뽑은 셈인데, 또 희한한 게 활동하면서 얼굴도 많이 잘생겨졌어요.(웃음)
O - 그런 건 정말, 공식도 없고. 직감이 작용하는 일인 거잖아요.
K - 그렇죠. 얼마 전에 깨달았는데 저는 길을 갈 때 건물이나 거리를 보지 않더라고요. 지나가는 사람의 얼굴과 패션을 봐요. 방금 지나간 사람이 어떻게 생겼고, 뭘 입었는지 다 기억이 날 정도로. 예전엔 관상책도 많이 봤죠. 그리고 사랑 받는 톱스타들의 얼굴, 외모를 많이 연구했어요. 보면 관상학적으로도 모두 강점이 있는 얼굴들이더라고요.

O - 캐스팅은 주로 어떻게 이뤄지는 거예요?
K - 주로 알음알음 이뤄지는 경우가 많았죠. 각 지방에 숨어있는 인재는 캐스팅 디렉터가 찾고요. 저는 주위에서 추천을 받아요. 오디션 오는 애들 중 예쁜 애들한테는 추천을 해달라고도 하죠. 예쁜 애들 주위엔 예쁜 애들이 많으니까.(웃음)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무작정 가서 말을 걸 때도 많아요.
O - 뻔뻔해야겠어요.
K - 신인 캐스팅 업무에 열중할 때에는 무조건 대중교통을 이용해야죠. 누굴 만나든 주위에 혹시 노래 잘하는 애 있냐고 물어보고요.
O -그렇게 만나서 데뷔까지 함께 하는 거니, 정말 정이 많이 들겠어요.
K - 아무래도 그렇죠. 특히 성과가 잘 안나오면 신경이 많이 쓰여요. 화도 막 나고.(웃음) AOA도 매번 이번이 마지막이라며 엄청 긴장해왔어요. 이번 '흔들려'로 조금 자리 잡은 상태인데, 그러기가 무섭게 또 다음에 더 열심히 해야한다고 주먹을 쥐었죠. 책임감 때문에 그래요. 워낙 오랫동안 봐왔고, 연습하는 걸 봐왔는데 잘 안되면 내가 부족한가 하는 생각도 들고, 미안하기도 하고 그렇거든요.
# 까탈스러운 신인가수와의 11년 인연
O - FNC에서 벌써 7년째 근무 중이신데, 어떻게 일을 시작하게 된 거예요?
K - 대표님과는 인연이 더 오래됐죠. 대표님 (FNC 한성호 대표)의 스타일리스트가 저였어요.(웃음) 2002년이니까 벌써 11년 전이네요.
O - 어머나. 정말 호흡이 잘 맞으시나봐요.
K - (웃음) 일반 직장을 다니다가 패션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무작정 회사를 그만뒀어요. 그런데 의상학과를 나온다고 해서 제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학원을 통해 곧바로 스타일리스트로 현장에 투입된 거예요. 그러면 보통 보조로 들어가는데, 저는 약간 특이하게 일이 풀렸죠. 당시 완전 신인가수였던 대표님의 메인 스타일리스트가 돼버린 거예요.
O - 잘된 거 아니에요?
K - 당시 회사에서 스타일엔 크게 투자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웃음) 그런데 정말 힘들었어요. 신인이니까 협찬도 잘 안되고, 옷도 잘 안맞고.(웃음) 그래도 발품을 팔아서 겨우 구해오면 또 옷이 맘이 안든다고 하시고. 미용실에서도 원장 선생님한테 어렵게 눈도장을 찍어서 헤어 메이크업을 배웠는데, 또 제가 해드리면 맘에 안든다고 머리를 감아버리시고. 또 매번 굳이 자신의 집에서 헤어를 받으신다고 해서 불만이 많았죠. 그 무거운 가방을 메고 영등포 아파트까지 가는데 많이 힘들었죠.(웃음) 당시 콘셉트는 배용준의 바람 머리였던 걸로 기억해요.
O - 까탈스러운 가수였군요.(웃음)
K - 그럼요. 뒷통수를 한참 째려봤던 기억이 나요.(웃음) 정말 그만둬야지 했는데, 또 그럴 때는 토스트도 챙겨주시며 고맙다고 하셔서, 감동을 받기도 했죠. 뮤직비디오에도 굳이 우리 스태프가 나와야 된다고 옆테이블에 앉혀두시기도 했는데, 당시 감독이 제가 가수인줄 알고 절 찍은 적도 있어요.(웃음)
O - 그렇게 얼마나 일하신 거예요?
K - 몇달? 대표님 덕분에 스타일리스트는 내 길이 아니란 걸 빨리 알았죠.(웃음) 그러다 우연히 제가 로드캐스팅을 당한 거예요. 제 뒷모습만 보고 왔다가 앞모습을 보고 많이 놀라시긴 했는데.(웃음) 알고보니 회사는 그렇게 알게 된 분과 어떻게 연이 돼서 캐스팅 관련 일을 시작하게 됐어요.
신기한 게 정말 계속 눈에 띄는 거예요. 기획사가 없는데 가능성이 보이는 친구들이요. 그런데 그때 마침 대표님이 회사를 하나 차리셨어요. 그래서 하나 둘씩 소개를 해드렸죠. 그러다 같이 일하자고 하게 돼서 처음 시작한 게 FT아일랜드였어요. 직원이 거의 없으니까 제가 가서 밥도 해주고, 책도 주고, 청소도 같이 하고 그랬죠. 그러다 FNC를 오픈하고 씨엔블루 론칭까지 하게 됐어요.

# 내년엔 뉴트렌드 보이밴드다
O - 그 후로 이렇게 탄탄대로인데, 지금 현재 가장 신경쓰고 있는 프로젝트는 뭐예요?
K - 내년 상반기에 나올 신예 보이밴드가 있어요. 4인조 엔플라잉(N.Flying)이라는 밴드인데요. 뉴 트렌드 밴드로, 기존 FT아일랜드, 씨엔블루와는 또 확연히 다른 색깔을 낼 예정이에요. 비주얼도 많이 다를 거고요.
O - 밴드 안에서 다른 색깔을 낸다는 게 쉽지 않을텐데요.
K - 그래서 신경을 많이 쓰고 있죠. 일단 음악부터가 다르게 느껴지실 거예요. 최근 FT아일랜드나 씨엔블루의 투어 공연 오프닝에 서고 있어요.
O - 엔터업계에서 일한다는 건, 스트레스가 많은 일이잖아요. 어떠세요?
K - 전 재미있어요. 일 자체는. 보통 스트레스는 사람 때문이죠. 아티스트, 직원들한테 상처를 받을 때가 있죠. 그래도 재미있는 게 더 많아요.
O - '청담동 111'을 보니까 마녀로 불리던데요.(웃음)
K - 홍기가 지어준 별명이에요. 홍기가 라디오에 나와서 "우리 회사에 마녀가 있어요" 그러더라고요. 제가 딱 들었죠.(웃음) 아무래도 회사에는 누군가 악역이 있어야 하니까, 어쩔 수 없죠. 실제로는 마녀가 아니지만 회사를 위해서.(웃음)
O - 방송출연 해보니까 어때요?
K - 방송에선 화장을 많이 하고 나오니까, 실제로는 절 잘 못알아보시던데요.(웃음) 그런데 연예인이라는 직업이 정말 어렵구나 하고 느끼게 되긴 했어요. 내 의도와 다르게 비치기도 하고, 악플도 달리고 하니까 연예인들 마음을 아주 조금은 알겠더라고요. 그동안은 악플 신경쓰지 말라고 쿨하게 말했는데, 이제 못그럴 것 같아요. 저만해도 자꾸 보게 되고 신경쓰이고 화가 나더라고요. 그동안 애들이 많이 의연했던거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죠. 실물과 화면이 너무 다르다는 말을 자주 듣고 있지만(웃음) 뜻깊은 일이었어요.(웃음)

rinny@osen.co.kr
FNC엔터테인먼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