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경제 한파의 추억을 되새기는 동시에 웃기면서도 짠한 로맨티 코미디가 찾아왔다. MBC 새 수목드라마 ‘미스코리아’가 연출, 대본, 연기 삼박자 중 어디 하나 어긋나는 것 없이 딱딱 들어맞으며 모처럼 재밌는 로맨틱 코미디를 안방극장에 내놨다. 구멍 없는 이 드라마는 막강한 경쟁자인 SBS 수목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와 맞붙어도 해볼만한 경쟁이 될 듯 하다.
지난 18일 첫 방송된 ‘미스코리아’는 망해가는 화장품 회사를 살리기 위해 싼 티 나는 엘리베이터걸 오지영(이연희 분)을 미스코리아로 만들어야 하는 젊은 청춘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1997년 IMF 금융 위기를 배경으로 청춘의 성공과 사랑을 그리며 안방극장의 향수를 자극하겠다는 계획.
‘파스타’를 통해 감성을 자극하는 로맨틱 코미디를 만든 서숙향 작가와 권석장 PD의 재결합으로 화제를 모은 이 작품은 한 마디로 믿고 보는 제작진의 배신 없는 드라마였다. 권석장 감독 특유의 감성적인 연출과 서숙향 작가의 직설적이면서도 현실적인 대사는 로맨틱 코미디의 홍수 속에서 공감 가득한 재미를 선사했다.

1997년을 배경으로 추억을 되새기는 소재가 곳곳에 배치돼 있는 이 드라마는 시청자들의 감성을 자극했다. 1997년 대통령 선거와 IMF 금융 위기로 뒤숭숭한 사회 분위기, 삐삐 등은 인물 성격을 설명하는데 장치로도 활용됐다.
보통 드라마가 첫 방송에서 인물 성격을 나열하는데 그치기 쉽지만, 제작진은 1997년 분위기가 물씬 나는 소품을 활용해 인물의 성격을 고스란히 표현했다. 지하철에서 대선 후보 유세단이 기싸움을 벌이는 과정에서 주인공 김형준(이선균 분)이 까칠하면서도 오지랖을 발휘하거나, 다급한 상황에서 계속 울려대는 삐삐 등은 이야기 외적인 재미를 안겼다.
생동감 넘치는 인물은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었다. 다소 싼 티 나지만 지킬 것은 지키는 엘리베이터걸 오지영의 삶은 웃기면서도 애잔하게 그려졌고, 쓰러져가는 화장품 회사를 살리기 위해 첫사랑 오지영을 이용해야 하는 김형준의 바닥까지 보이는 자존심도 짠했다. 또한 미스코리아를 양산하는데 일가견이 있는 퀸 미용실 원장 마애리(이미숙 분)와 삼류 깡패 정선생(이성민 분) 등 감초 인물들의 강한 존재감도 놓칠 수 없는 재미였다.
제작진이 만들어놓은 감성적인 이야기, 살아숨쉬는 듯한 인물을 보는 재미와 함께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맛이 있었다. 우아함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래도 의리 하나는 있는 여자 오지영으로 변신한 이연희는 우려를 딛고 성공적인 첫 방송을 마쳤다. 데뷔 후 처음으로 소위 말하는 센 역할을 맡은 그는 껌을 쫙쫙 씹고 욕설을 시원하게 내뱉는 교양이 부족한 오지영으로 완벽하게 탈바꿈했다. 청순한 얼굴과 달리 조금은 모자란 구석이 많은 오지영은 이연희의 아름다운 외모와 함께 극명한 대비를 이루며 인물에 대한 애정도를 높였다.
다소 지질하지만 화장품과 회사에 대한 애착이 강한 김형준은 친근한 매력의 이선균이 맡았다. 이선균은 특유의 힘을 빼면서도 캐릭터 전달력은 확실한 연기 기법으로 첫 방송부터 김형준이라는 인물 설명을 완벽히 소화했다. 3류 건달로 변신한 이성민의 자꾸만 정이 가는 연기와 악역인데 카리스마로 무장해 미워할 수 없게 만드는 이미숙의 힘도 상당하다.
‘미스코리아’는 웃기고 감성적인 분위기 속에 가슴을 쿡쿡 찌르는 대사, 세세한 감정 표현으로 시청자들을 사로잡는 연출, 배우들의 맛깔스러운 연기 덕에 첫 방송을 무사히 마쳤다. ‘별에서 온 그대’가 김수현과 전지현의 만남으로 무시무시한 파급력을 자랑하는 가운데, ‘미스코리아’는 추억팔이에 완벽히 성공한 로맨틱 코미디를 내세우며 만만치 않은 내공을 발휘했다. 시청자들의 호평이 쏟아지며, 흥행몰이를 시작한 이 드라마가 안방극장에 어떤 바람을 불고올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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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코리아’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