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무대 위 모습보다는 연기를 하는 모습이 익숙한 배우 이희진(33). 그는 최근 또 하나의 작품을 마치면서 성장했다. 종영한 MBC 수목드라마 ‘메디컬탑팀’에서 수술 전문 간호사 유혜란을 연기했다. 드라마는 의학드라마 치고는 낮은 시청률로 종영했지만, 인간 이희진과 배우 이희진에게는 소중한 작품 중 하나로 남았다.
“촬영이 끝난지 꽤 됐는데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아요. 촬영하면서 출연한 배우들끼리 카카오톡(스마트폰 채팅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대화를 나눴거든요. 아직도 대화를 주고 받아서 계속 촬영을 하고 있는 느낌이 나요. 새 수목드라마가 방영되면 내가 드라마 1편을 끝냈구나, 좀 익숙해질까 싶네요.(웃음)”

‘메디컬탑팀’은 한때 시청률이 3%까지 떨어질 정도로 저조한 관심을 받았다. 그동안의 의학드라마보다 더 많은 사전조사 작업을 통해 정밀한 수술 장면을 표현했지만, 극중 인물 설정과 이야기가 흔들리며 아쉬움을 샀다. 하지만 이희진에게는 이런 아쉬움은 중요하지 않았다.
‘메디컬탑팀’이라는 작품에 출연할 수 있었고, 연기를 보여줄 수 있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미소를 지을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생겼다. 1997년 베이비복스로 데뷔한 후 17년간 활동을 했으니 일이 잘 풀리지 않아도 그 이면의 소중한 가치를 보는 지혜를 터득했다.
“촬영은 굉장히 힘들었죠. 그런데 촬영장 분위기는 정말 좋았어요. 누구 하나 표정을 찡그리는 사람들이 없었죠. 감독님을 비롯한 스태프, 선후배 배우들이 정말 고생이 많았어요. 고생한 것만큼 결과는 좋게 나오지 못했죠. 그래도 우리 드라마가 작품성은 높았다고 생각해요. 다른 의학드라마와 달리 병원을 정밀하고 현실적으로 그렸거든요. 무모한 도전이었지만 우리 작품은 멋있는 작품이었다고 생각해요.”
이희진은 수술 장면에 꼬박꼬박 참여해야 하는 간호사 역할이었다. 냉철한 간호사를 연기하며 안정적인 연기력을 보여줬다. 하지만 연기가 쉽지는 않았다. 여느 의학드라마가 그렇듯 수술실은 고약한 냄새로 견디기가 어려움이 많았다.

“처음에는 냄새 때문에 기절하는 줄 알았죠. 전 그래도 간호사 역할이라 조금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도 고역이었어요. 권상우 오빠나 (정)려원이가 가장 힘들었겠죠. 정말 냄새는 어쩔 수 없더라고요. 그래도 나중에는 모두 피범벅 분장한 채로 밥도 먹고, 여자 배우들도 화장 하지 않고 돌아다닐 정도로 친해졌어요. 힘든 촬영 환경이 배우들끼리의 친밀도를 높였죠.”
이희진은 실제 수술을 하는 게 아니었는데도 수술 장면마다 유독 긴장을 많이 했다. 자신에게는 완벽주의자인 이희진은 연기를 잘 하고 싶어서 고민도 많았고, 실수를 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긴장도 많이 했다.
“이상하게 수술실에 들어가면 긴장됐어요. 제가 수술모자를 쓰고 장갑을 끼고 있으면 대사를 하지 않아도 긴장되더라고요. 수술도구를 만지다보면 묘한 느낌이 들어요. 제가 진짜 간호사가 된 것처럼 착각이 들었나봐요.”
그는 이 드라마에서 철두철미한 간호사를 연기하며 똑부러지는 발음과 자세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때문에 빈구석은 존재하지 않는 유혜란이 탄생했다.
“흐트러지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허리도 피고 다녔죠. 사실 제가 걷는 것을 예쁘게 못하거든요. 그래서 신경을 많이 썼어요. 목소리와 발음도 특별히 생각 많이 했고요. 사실 드라마 시작 전에 병원에서 참관수업을 받았거든요. 실제 간호사 분들을 유심히 지켜보며 캐릭터 연구를 했죠.”
이희진은 베이비복스 해체 후 연기자로 전향했다. 당분간은 가수 이희진의 모습을 보기는 쉽지 않을 전망.
“가수 활동 할 때의 목소리가 아니에요. 뮤지컬에 출연할 때 목소리 관리를 잘하지 못해서 많이 탁해졌죠. 성대 결절 진단을 받았으니까요. 데뷔 초보다 목소리가 많이 굵어졌는데, 덕분에 때에 따라 다양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장점이 생겼어요. 목소리 변화가 가능하더라고요.(웃음)”

그는 여전히 배우 이희진이 어색하다. 워낙 자신에게는 냉정한 성격이라 연기를 보는 게 어색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제 연기를 보면 이상하게 많이 민망하고 어색하더라고요. 자꾸 단점만 보이고요. 그래서 제가 연기하는 것을 잘 보지 못하겠어요. 그래도 조금씩 연기를 하다보니깐 알아봐주시는 분들이 많아졌어요. 연세가 있으신 시청자들은 제가 가수를 했다는 것을 모르시니깐 연기자로만 아시더라고요.”
이희진과 베이비복스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여전히 베이비복스 출신 배우 이희진이라는 설명이 붙는다. 그런데 그는 조급하지 않아 보인다.
“베이비복스라는 설명은 죽을 때가지 가져가겠죠.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베이비복스로 20대를 보냈으니깐 그 좋은 시기에 제대로 여유를 갖지 못했다는 생각에 아쉽긴 하죠. 그래도 베이비복스를 하지 않았으면 지금 연기를 하지 못하고 있었겠죠.”
이희진은 결혼적령기지만 여유를 갖기로 했다. 때가 되면 결혼할 것이라는 게 이희진의 지론이다.
“30살에는 제가 너무 늦게 결혼하나, 싶었어요. 그때는 빨리 결혼하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천천히 하고 싶어요. 결혼하기 위해 빨리 남자를 만나서 연애를 하고 싶진 않거든요. 결혼할 시기가 되면 누군가가 나타나겠죠. 외롭다고 남자를 만나고 싶진 않아요.”
jmpyo@osen.co.kr
손용호 기자 spjj@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