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강호 "'변호인' 헌정영화 아니다..눈에 밟혔다" [인터뷰]
OSEN 정유진 기자
발행 2013.12.21 10: 44

배우 송강호처럼 2013년을 알차고 빛나게 보낸 이는 없을 것이다. 8월 개봉한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를 비롯해 하반기 ‘관상’까지 그가 주연한 두 영화는 모두 90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올 한 해 최고의 흥행작들로 떠올랐다. 두 영화에서 송강호가 보여준 압도적 존재감은 기대작들을 명품의 반열에 올려놓는 데 크게 일조했다. 요컨대 송강호란 배우는 섬세한 연기로 영화의 결을 살려내는 그 자체로 명품인 배우다. 그런 그가 만족하지 않고 올해 마지막 작품을 하나 더 택했다. 영화 ‘변호인’(양우석 감독)이다. 
‘변호인’은 1980년대 제 5공화국 정권 초기 부산 지역에서 벌어진 ‘부림사건’을 영화적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먼 훗날의 미래(‘설국열차’)의 열차 안에서 조선시대(‘관상’)로 회기 했던 평범한 듯 비범했던 한 남자는 격동의 현대사로 뛰어 들어 모두가 알고 있는 한 인물로 돌아왔다. 송강호가 ‘변호인’에서 그려낸 인물은 ‘부림사건’에서 크게 활약했던 변호사 시절 故 노무현 대통령이다.
“시나리오가 좋아서라기보다는 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게 커요. 처음에는 일개 배우인 내가 어떻게 감히 그분의 인생을 그려낼까 싶기도 하고…. 너무 큰 작품으로 다가와 거절을 한 번 했어요. 그런데 보통 왜 자꾸 밟힌다는 표현을 하잖아요? 사람이 눈에 밟혔던 건지 책이 밟혔던 건지 그게 점점 더 머릿속을 크게 차지하더라고요. 좋다기보다는 잊을 수 없는 지점이 있었어요.”

‘변호인’의 시나리오는 영화가 본격적인 제작에 들어가기 전부터 ‘잘 나왔다’는 소문이 돌았던, 유명했던 프로젝트.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작품 자체보다 더 관심을 받았던 것은 주인공의 모델로 알려진 故 노무현 대통령이었다. 작품의 모델 때문인지 ‘변호인’은 개봉 당시부터 지금까지도 많은 관심과 함께 의혹에(?) 찬 시선을 받아야했다.
“미화를 했다던지 헌정영화와는 전혀 다른 작품입니다. 송우석이라는 이름도 그렇고…. 편협한 시각보다는 80년대라면 불과 30년 전, 얼마 전입니다. 그 격동의 시대에 그렇게 살아온 사람을 통해서 우리가 어떤 느낌을 받을 수 있다면 그게 의미가 있지 않나 생각해요. 그게 이 영화의 최고의 지향점이랄까요. 다른 어떤 선입견 보다는 그게 가장 가치가 있는 것 같아요.”
‘변호인’에 대해서는 엇갈린 시선이 존재한다. 그러나 양우석 감독을 비롯해 송강호는 제작보고회와 언론시사회 등에서 영화가 정치적으로 해석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드러냈었다.
“배우가 작품을 선택하는데 자꾸 정치적인 색깔을 넣어 생각하는 게 안타까워요. 정치적으로 송강호란 사람이 노무현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건 이 영화를 설명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안 돼요. 중요한 건 그 시대, 그 분 인생의 궤적을 보면 누구나 우리에게 울림으로 다가오는 지점이 있다는 것, 그런 점에서 많은 분들에게 말씀 드리는 건, 편협한 시각을 가지고 닫힌 마음의 문으로 영화를 보는 게 아니라 열려있는 마음으로 보신다면 전혀 정치적 이념을 주장하는 영화가 아니란 걸 알게 되실 것이란 겁니다.”
영화 속 송강호의 모습은 어쩔 수 없이 노 전 대통령을 떠올리게 한다. 속사포처럼 쏘아대는 날 선 말투와 때로는 거칠고, 때로는 익살스럽게 들리는 사투리가 그렇다. 송강호는 “참고한 적은 없다”고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
“비슷하다고 느낀 점은 아마 동향이라는 점에서 비롯된 것일 거예요. 왜냐면 이 영화의 핵심은 부산을 무대로 했단 점인데 그곳의 지역적인 정서를 표현할 수 있는 게 중요했죠. 그래서 제가 캐스팅되지 않았나 싶어요. 그러나 제가 그 부분들을 위해 연설 같은 것을 들었다던 지 참고했다던 지 그런 적은 없어요. 단, 어릴 때, 전국의 중계방송이나 청문회 때 얼핏 본 모습은 기억하고 있었죠. 재임시절에도 틀면 나왔으니까. 그래도 이미지나 인상을 표현하기 위해 특정한 참고를 했다던 지 하지는 않았어요.”
송강호가 주인공 송우석 변호사를 표현하는 데 故노무현 대통령을 흉내 내는 것보다 중요하게 여겼던 것은 진심을 담는 것이었다. 그는 늘 그래왔듯 진심을 담아 한 인물을 표현했고 스스로도 이번 역할에 대해서 “최소한 진심은 담겼다”고 조심스레 자평했다. 
“정말  저의 진심이 얹히지 않는 연기는 가짜니까요. 제가 어떻게 감히 그분의 인생의 단면을 제대로 표현했겠어요? 그 깊이를. 단 부족하지만 최소한 제대로 그분의 삶을 그리고 싶었어요. 잘 한다 못 한다 떠나 별개로 최소한 저의 진심을 담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것이 관객 분들에게 읽혀야 하는 게 핵심이지 않나 싶었죠. 그런 점에서는 제가 객관적으로 봤을 때도 많이 부족하긴 하지만 최소한 제 진심이 담겨있다고 말씀드릴 수는 있을 것 같네요.”
 
이번 영화에서 송강호는 ‘터뜨리는’ 연기를 제대로 보여준다. 사실 그간 스크린에서 송강호는 정면에서 조금 비껴나간 듯한 역할들을 많이 맡아왔다. 송강호 역시 “지금까지는 차가운 연기를 많이 했다”고 수긍했다.
“그 전까지는 제가 절제되고 차가운 연기를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관상’이나 ‘변호인’ 같은 경우 지금까지의 연기와는 반대 지점에 있는 모습을 보여드렸죠. 관객 입장에서는 신선할 수 있겠다고 생각해요. 억누르고, 차갑고 절제하는 연기를 하다가 반대의 지점에 있는 스타일을 구사했으니까요. 여기 그런 지점이 저는 일부러 그렇게 해봐야지 한 건 아닌데. 결과적으로 그렇게 보이는 것 같아요.”
이번 영화에서 송강호 다음으로 주목을 받았던 것은 아이돌 그룹 제국의아이들의 멤버 임시완의 스크린 데뷔였다. 임시완은 첫 영화에서 대 선배 송강호와 함께 할 기회를 붙잡았고, 그냥 흘려보내지 않았다. 송강호는 까마득한 후배인 임시완이 귀엽지 않았는지를 묻는 질문에 “사실은 야단도 많이 쳤다”며 웃어 보였다.
“귀엽다기 보다는 대견스러워요. 아마 이번에 혹독한 영화의 맛을 느꼈을 거예요. 영화란 게 이렇게 많은 사람이 피와 땀을 흘려서 만들어 간다는 걸 이번에 제대로 알았을 것 같아요. 사실 정신 차리라고 야단도 많이 쳤어요. 이렇게 말하면 (임시완이)잘못을 해서라고 생각하실 수 있는데 어떤 나태한 모습을 보이고 그런 건 절대 아니에요. 단지 제가 걱정을 좀 했어요. 시완이는 연기가 좋아서 늘 해맑은 모습으로 현장에 오는데 고문 신 전날에 저는 속으로 '내일부터 죽을 텐데' 걱정이 됐어요.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좋은 장면은 나올 수 없다'고 조언을 했죠. 제가 현장에 가면 더 연기에 집중을 못 할까봐 일부러 가지 않았어요. 나중에 보니 시퍼렇게 멍이 들고 눈에 실핏줄이 터졌더라고요. 제가 야단을 친 건 그 전입니다.(웃음)”
송강호가 임시완을 혼냈다는 이야기는 배우 김영애의 입을 통해 제작보고회와 언론시사회 등에서 알려져 화제가 됐다.
"(내가 혼을 낸 것을) 임시완 팬들이 너무 좋아 한다고 하네요. 시완이가 저에게 '제 팬들이 너무 좋아한다'라고 말해주더라고요. 아무런 사심 없이 순수하게 받아주고…. 참 고마워요. 내가 자기를 싫어해서 야단을 친 것처럼 잘못 받아들이면 안 되는데 내 진의를 잘 알아 줬어요."
곽도원에 대한 칭찬도 이어졌다. 서로 어떻게 연기를 하자 의논하지 않아도 호흡이 잘 맞았다는 것. 곽도원은 ‘변호인’에서 정권의 하수인이 돼 무고한 학생들에게 거짓 증언을 받아내는 잔인한 차동영 경찰 역을 맡았다.
“촬영을 시작할 때면 항상 도원이랑 히히거리며 들어갔어요. 저는 준비가 많이 필요해 5일전에 들어가서 전체적인 연습을 많이 했어요. 감정 표현을 어떻게 할 지, 감독과 상의를 하고 촬영 감독이 카메라 위치를 잡고, 리허설 같은 연습을 매일 했죠. 도원이는 뭐 가만히 앉아 만 있으면 되잖아요?(웃음) 농담이고요. 도원이도 내 연기를 보고 자기도 감정 맞춰야 하니까 함께 했어요. 도원이가 훌륭한 배우의 자질을 갖고 있는 걸 느낀 게 제가 내는 감정의 높낮이에 따라 리액션이 탁탁 나오는 거예요. 감탄했어요. 아주 좋은 배우에요. 연기를 시작하면 서로 대사와 감정을 주고받을 뿐 우리 둘이 ‘난 이렇게 할 테니 넌 이렇게 하자’ 이런 얘기를 한 적은 없었어요.”
영화 속 배경이 되는 80년대의 송강호는 이십대였다. 그러나 그는 오랜 기간(?)의 군 생활과 제대 이후엔 연기에 빠져 사실상 대학생활을 제대로 누리지는 못했다고 회상했다.
“저 당시에 군대는 30개월이었어요.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바로 군대를 갔고, 군대에 다녀오고 나서 대학에 복귀를 안 하고 자퇴를 한 뒤 바로 극단에 들어갔죠. 대학에서의 대학생활 같은 부분, 그런 문화를 한 번도 경험한 적 없어요. 미팅도 해본 적 없고요. 대학에서 연극을 시작했고, 연극 밖에 생각을 안했어요. 연극에 심취해 있었죠.”
연극에 빠져있던 젊은이는 어느새 한 나라를 대표할 만한 영화배우로 성장했다. 송강호는 불과 몇 년 사이 선배보다 후배가 많아진 현실을 보며 기분 좋은 부담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시간이라는 게 참 금방 지나가요. 불과 얼마 전에도 제 위로 선배들이 쭉 계셨는데 지금은 선배보다 후배가 많더라고요. 이제 그럴 때가 됐구나 싶고, 부담이라면 부담이죠. 기분 나쁜 부담이 아닌 즐거운 부담감이요. 롤 모델 이런 것 보다는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배우로서의 느낌이 나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특별하다면 어느 해보다 특별했던 한 해를 보낸 소감을 물었다. 그러나 송강호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경구를 떠올리게 하는 담담하고도 겸손한 말로 감회를 표현했다.
"참으로 다행스럽게 흥행이 돼서도 좋지만 굉장히 다양한 작품이라 그런 게 좋아요. 과거와 미래, 현재를 얘기하는 시공간 적인 부분 뿐 아니라 관상쟁이, 변호사 그런 캐릭터도 다양하게 해봤고요. 그런 점에서 배우로서 특별했던 한 해죠. 크게 보면 많은 사랑을 받아 행복한 해이기도 했고요. 그렇지만 살다보면 안 좋은 해도 있고 좋은 해도 있는데 그 과정 속에 하나의 지나가는 해일 뿐 특별히 좋아할 일도 아니고, 안 좋은 해를 만난다고 해서 특별히 실망할 필요도 없다는 생각해요. 대범하게 생각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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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송이 기자 ouxou@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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