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 꿈 품었던 청년, 억만장자 됐다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3.12.22 07: 11

2001년,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한 청년은 성공의 꿈을 품고 태평양을 건넜다. 시련과 온갖 고생은 그 청년의 이국 친구였다. 그러나 그 청년은 장애물을 모두 이겨낸 끝에 결국 메이저리그(MLB)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대형 계약을 따냈다. 추신수(31)가 지난 12년간의 노력을 모두 보상받으며 억만장자 대열에 들어섰다.
미 언론들은 22일(이하 한국시간) 추신수가 텍사스 레인저스와 7년 1억3000만 달러의 계약에 합의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로빈슨 카노(시애틀), 제이코비 엘스버리(뉴욕 양키스)와 함께 올해 FA시장 최대어로 손꼽혔던 추신수는 시종일관 러브콜을 보낸 텍사스의 손을 잡으며 차기 행선지를 결정지었다.
부산고를 졸업한 추신수는 친구들과 같은 길을 걷지 않았다. 한국에서 편안하고 익숙한 생활을 할 수 있었음에도 더 큰 성공의 꿈을 품었다. 꿈의 무대라는 MLB 무대에 도전했고 혈혈단신으로 2001년 시애틀로 날아갔다. 단번에 성공할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생각보다 MLB의 문턱은 높았다. 마이너리그 선수의 모든 레벨을 거치며 눈물 젖은 빵을 씹었다. 추신수는 지금도 그 때 그 시절을 생각하며 자신을 채찍찔하곤 한다.

고진감래 끝에 2005년 드디어 MLB 무대에 승격했으나 자리는 없었다. 시애틀에는 한창 최전성기를 달리던 스즈키 이치로라는 당대 최고의 외야수가 있었다. 결국 2006년 클리블랜드로의 트레이드를 통해 정들었던 시애틀을 떠났다. 하지만 전환점이었다. 클리블랜드에는 상대적으로 더 많은 기회가 기다리고 있었고 성실한 자세로 노력했던 추신수는 이를 놓치지 않았다.
2008년부터 클리블랜드의 주전급 선수로 발돋움한 추신수는 2008년 94경기에서 타율 3할9리를 기록하며 팀 외야의 한 축으로 자리했다. 2009년에는 데뷔 후 첫 3할을 쳤고 2010년에는 2년 연속 3할 고지를 점령했다. 2009년과 2010년에는 모두 20홈런-20도루 고지를 점령하며 5툴 플레이어로 명성을 날리기 시작했다. 추신수가 빛을 보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시련은 끝이 아니었다. 2011년 불미스러운 사건에 휘말리며 자숙의 시간을 갖기도 했고 시즌 중에는 엄지손가락에 공을 맞아 악몽에 시달리기도 했다. 성적 그래프도 꺾였다. 하지만 추신수는 전진을 멈추지 않았다. 또 한 번의 전환점이 있었다. 바로 올해를 앞두고 단행된 신시내티로의 트레이드였다. 결과적으로 이는 추신수의 가치를 한껏 부풀리는 계기가 됐다.
FA 기간을 1년 남겨둔 채 신시내티 유니폼을 입은 추신수는 1번 타자와 중견수라는 낯선 옷을 입고도 최고의 활약을 펼치며 FA 대박을 예고했다. 추신수는 올해 타율 2할8푼5리, 출루율 4할2푼3리, 21홈런, 20도루, 107득점을 기록하며 생애 최고의 성적을 냈다. 출루율은 내셔널리그 2위였고 20홈런-20도루-100볼넷-100득점을 기록한 리그 두 번째 선수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모든 이들이 추신수의 눈과 방망이, 그리고 발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FA시장에서 우여곡절이 있기도 했으나 어디까지나 추신수라는 값진 상품의 가치는 떨어지지 않았다. 몇몇 팀들이 추신수 영입에 관심을 보인 가운데 결국 타선 보강에 혈안이 되어 있었던 텍사스의 품에 안기며 논란의 종지부를 찍었다. 극적인 성공 드라마의 절정이자, 또 하나의 드라마를 예고하는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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