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못하겠습니다. 몸이 너무 아파요. 그만둬야 겠습니다”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던 이승호(37, SK)는 김경태 SK 재활코치를 향해 어렵게 입을 열었다. 그간 수없이 내뱉고 싶었던, 가슴 속에서 응어리졌던 그 말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재활로만 어느새 1년을 훌쩍 넘는 시간을 보냈다. 그럼에도 욱신거리는 팔꿈치는 이승호의 마음까지 욱신거리게 했다. 희망을 보다가도 다시 좌절에 무딪히는 일상이 계속되는 사이, 어느덧 그는 30대 중반을 넘긴 나이가 되어 있었다.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모두 내려놓고 싶었다.
그 때 김 코치는 이승호를 다독거렸다. 평소에 이승호의 팔꿈치를 살펴보던 김 코치는 이번에는 이승호의 마음을 어루만졌다. 김 코치는 이승호에게 “계속 마운드에서 던지고 싶지 않느냐. 결과야 어쨌든 후회는 남지 않게 던져보고 싶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그 때 이승호는 생각했다. 팬들의 수많은 환호가 자신에게 쏟아지던 마운드를 생각했다. ‘한 번만 더’라는 생각에 다시 재활 도구를 잡았다. 그런 과정이 수없이 반복된 결과, 이승호의 팔꿈치에 난 상처는 조금씩 아물어갔다.

당시를 회상하는 이승호는 웃었다. 물론 아픈 기억이라 그 웃음에는 담담함이 묻어나온다. 하지만 지금 그 당시를 회상할 수 있는 것 자체마저도 의미가 있다. 새로운 희망이 보이기 때문에, 그 희망을 찾자고 다짐한 그 때가 기억나는 것이다.
지난해 4월 왼쪽 팔꿈치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은 이승호는 오랜 기간 재활을 했다. 올해 복귀가 점쳐졌으나 수술 부위에 다시 탈이 나는 바람에 무려 두 시즌을 통째로 날렸다. 나이를 생각하면 사실상 사형선고라는 말도 있었다. 이름도 서서히 잊혀져 갔다.
이승호는 재활 과정에 대해 “포기하고 싶을 때가 많았다. 솔직히 그만두고 싶었다. 쫓기는 것도 없지 않았다”라고 털어놨다. 하지만 버티고 버텼다. 김경태 코치와 일상을 같이하며 미래를 꿈꿨다. 그렇게 어두운 터널을 지나온 결과, 이제는 서서히 빛이 보인다. 최근 SK의 괌 재활캠프에서 땀을 흘리고 있는 이승호는 22일 세 번째 하프피칭을 소화했다. 아직 투구수는 30개 남짓. 그래도 던질 수 있다는 게 마냥 신기하고 행복한 이승호다.
이승호는 “항상 재활만 하다 던지는 것 아닌가. 하프피칭 단계에 들어가니 기분이 너무 좋더라”라고 최근 근황을 설명하면서 “재활을 오래 하다 보니 하프피칭 자체도 경기에서 승리한 것처럼 기분이 남다르다”라고 웃었다. 이승호는 “쉰 기간이 있어서 다시 처음부터 만든다는 생각으로 임하고 있다. 올 초에도 피칭까지 다 했는데 무리하게 했다가 올스톱이 됐었다. 더 던지고 싶지만 한 번 겪어보고 나니 조절 능력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한국프로야구의 에이스 중 하나로 활약하며 지금껏 수많은 공을 던진 이승호다. 2003년 LG에서 11승을 거둔 것을 비롯, 프로통산 302경기에서 51승을 거둔 자타공인 베테랑이기도 하다. 2009년 SK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뒤에도 선발과 중간을 가리지 않는 전천후 요원으로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그러나 그런 그도 이제는 공 하나하나에 대한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재활로 2년을 날렸고 이제는 지금껏 뛴 날보다 앞으로 뛸 날이 더 적다는 것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절박하게 매달리고 있는 이유다.
그렇게 한걸음, 한걸음을 내딛다보니 이제는 가시적인 성과도 나온다. 구단도 이승호가 재기할 것이라는 믿음을 드러냈다. 방출할 수도 있었지만 올해 계약하며 기회를 줬다. 이승호는 “2년 동안 아무 것도 보여준 것이 없다. 그런데 구단에서 내년 계약을 하며 기회를 줬다. 여기에 재활캠프도 보내줬다. 구단에 고맙다”라고 속내를 드러냈다. 그리고 내년이 재기를 위한 사실상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에 의지를 활활 불태우고 있다.
김경태 코치, 그리고 구단에 진 빚을 갚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마운드 위에 다시 선다는 각오다. 이승호는 “그 동안은 생각이 많았다. 그리고 안 좋은 쪽으로 생각이 많았다”라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괌의 따뜻한 공기는 물론 세상의 새로운 공기가 이승호를 감싼다. 이승호는 “하루하루가 기대되는 것 같다. 그리고 즐겁다”라고 수줍어하면서 “꼭 다시 마운드에 다시 오르겠다”고 다짐했다. 지난 2년간 느껴보지 못했던 심장 박동이 들린다. 37살 투수의 가슴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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