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다 마오(23, 일본)가 2014 소치동계올림픽에서 "가장 좋은 색깔의 메달을 갖고 싶다"며 금메달을 따내겠다고 선언했다.
아사다는 25일 일본 하네다 공항에서 열린 일본항공(JAL)의 '마오 제트' 공개식에 참석해 이와 같은 목표를 밝혔다. 피겨스케이팅 연기를 선보이고 있는 자신의 모습으로 랩핑된 비행기의 모습을 보고 감격한 아사다는 "이 비행기처럼 꿈과 목표를 향해 날고 싶다. 밴쿠버 때보다 좋은 연기를 펼쳐 가장 좋은 색깔의 메달을 갖고 돌아오고 싶다"고 선언한 아사다의 '금메달 선언'은 상당히 흥미롭다.
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라면 누구나 금메달을 목표로 연기를 펼치는 것이 당연한 만큼, 아사다의 금메달 선언이 특별히 놀라울 이유는 없다. 그러나 아사다가 새삼스레 공언한 '금메달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만 하는 산이 있다는 것이 문제다. 바로 김연아(23)다.

이 두 동갑내기 스케이터는 주니어 시절부터 한일 양국의 자존심을 걸고 소리없는 전쟁을 펼쳐왔다. 본인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한국과 일본 양국을 대표하는 스케이터라는 사실만으로도 그들이 맞붙을 때마다 화제가 집중됐다. 이토 미도리의 뒤를 이을 비기(祕技) 트리플 악셀을 갖춘 일본의 자존심 아사다와, 피겨스케이팅 불모지 한국에서 자신의 재능과 노력만으로 세계 정상에 올라선 김연아는 흡사 만화의 주인공 같은 라이벌 관계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실력면에서, 이들의 라이벌 관계는 오래가지 못했다. 시니어 무대에 진출한 후, 아사다는 주니어 시절만큼 트리플 악셀을 잘 뛰지 못하게 됐다. 더구나 한때 라이벌이었던 김연아는 거침없이 상승곡선을 그리며 세계 정상에 우뚝 섰고, 2010년 밴쿠버동계올림픽을 기점으로 아사다와의 차이는 겉잡을 수 없이 벌어지게 됐다. 이후 아사다는 김연아의 벽을 넘지 못하고 금메달을 바라만보는 신세가 됐다.
이처럼 주니어 시절부터 오랜 시간 라이벌 관계에 있던 둘의 차이는 시니어 무대에서 급격하게 벌어졌고, 특히 김연아가 은반을 떠난 후 더욱 두드러졌다. 김연아의 부재라는 절호의 기회 속에서도, 아사다는 그만큼의 존재감을 만들어내는데 실패했다. 압도적인 '여왕'이 없는 상태가 계속됐고, 김연아 없는 여자 피겨스케이팅은 춘추전국시대와 같은 양상을 띄었다.
아사다는 뼈를 깎는 각오로 트리플 악셀을 버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일궈낸 2012-2013시즌 그랑프리 파이널 우승은 김연아의 복귀전 무대에 가려 빛이 바랬다. 트리플 악셀을 버리고 가까스로 안정을 찾은 아사다가 김연아의 점수를 보고 어떤 생각을 했을지는 본인밖에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 이후 아사다가 다시 트리플 악셀에 집착하기 시작했다는 점. 그러나 트리플 악셀을 다시 집어넣고도 2013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김연아에게 또다시 금메달을 내준 아사다는 올 시즌, 올림픽을 맞아 프리스케이팅에 두 번의 트리플 악셀을 넣는 무모한 도전에 나서기에 이르렀다.
"트리플 악셀 없이는 김연아에게 이길 수 없다." 아마도 지금 아사다의 머리 속을 지배하고 있는 생각일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썩 좋지 않았다. 지난 24일 끝난 일본선수권대회에서 아사다는 트리플 악셀의 잇딴 실패로 인해 나머지 점프들까지 망치며 자국 종합선수권대회를 3위로 마감했다. 그랑프리 파이널 메달리스트에게 주어지는 소치동계올림픽 티켓은 따냈지만, 아사다 본인은 물론 그에게 기대를 걸고 있던 일본도 충격을 받을만한 성적이었다.
하지만 아사다는 불과 하루 뒤인 크리스마스, 자신의 모습으로 랩핑된 비행기를 바라보고 아이처럼 즐거워하며 "이 비행기처럼 날고 싶다, 가장 좋은 색깔의 메달을 따서 돌아오고 싶다"고 금메달 획득을 선언했다. 금메달을 따겠다는 아사다의 각오 앞에 김연아를 넘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숨어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잇딴 트리플 악셀 실패에도, 다음에는 잘 할 것이라며 오히려 두 번의 트리플 악셀을 프로그램 안에 넣은 아사다다. 그의 도전에는 결코 넘어설 수 없는 벽을 향한 절박한 도전이 진하게 배어있다.
그렇다면 '쫓기는' 김연아는 어떨까. 김연아는 무심하다. 복귀 이후 김연아의 입에서 '우승'이나 '금메달'이 목표로 나온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모든 것을 다 이루고 정상에 올라본 자의 여유일까. 김연아는 그저 "내가 준비한 프로그램을 완벽하게 소화해서 좋은 연기를 보여드리고 싶다"며 대회를 즐기겠다는 각오만을 전한 바 있다. 자신의 마지막 올림픽이 될 소치에서, 김연아가 바라는 것은 단 하나다. "금메달 소망을 이뤘기 때문에 욕심이 없다. 침착하고 차분하게 경기에 임하겠다"는 것.
금메달을 따겠다고 선언한 아사다와, 그저 완벽한 프로그램으로 좋은 연기를 보여드리고 싶다며 대회를 즐기고 싶다는 김연아. 올림픽을 앞둔 두 사람의 상반된 각오를 보니 '알기만 하는 자는 좋아하는 자만 못하고, 좋아하기만 하는 자는 즐기는 자만 못하다(知之者는 不如好之者요, 好之者는 不如樂之者니라)'는 논어의 한 구절이 생각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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