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억대 제작비, 줄줄이 적자, 그럼에도 놓지 못하는 이유
'대세 그룹' 엑소가 보이그룹의 폭발력을 제대로 증명하고 있다.
그동안 높은 제작비에 상대적으로 적은 대중성, 일본 한류의 위기와 짧은 수명 등으로 '등한시'됐던 보이그룹의 시장성이 엑소를 통해 재조명되고 있다. 보다 '쉬운' 걸그룹에 치중해온 기획사들도 다시 남자 연습생들의 고삐를 틀어쥐며 '포스트 엑소'를 노리고 있다.

엑소는 2013년 최고 대세로 떠오르며 멜론뮤직어워드, 엠넷 아시안 뮤직어워드, KBS '가요대축제'의 대상을 휩쓸고 있는 중. 앨범 판매량이 100만장을 넘어서서 '올킬'도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제 겨우 데뷔 2년차. 동방신기가 '미로틱'으로 대상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게 데뷔 6년차였을 때임을 감안하면 무서운 성장세다.
이는 한동안 잠잠했던 10대 소녀팬들의 귀환이기도 하다. 동방신기 이후 '갈 곳을 잃었던' 소녀팬들이 엑소에 둥지를 틀었다는 중론. 비스트, 인피니트, B1A4 등 '초통령'들은 꾸준히 등장했으나 여기에 발빠른 글로벌 정책이 더해지자 폭발력은 어마어마했다.
업계서는 "역시 보이그룹은 한 방이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극히 일부를 제외하곤 음원차트에서 죽을 쑤는 데다, 히트곡이 나오기까지 적어도 3년 가량을 두세달에 한번씩 신곡을 내야해 '돈을 퍼붓는' 상태이지만, 한번 터지면 모든 게 '역전' 가능하다는 판단이다.
충성도 높은 소녀팬들 덕분에 콘서트 등 다양한 수익 확보도 가능하다. CF, 음원차트를 휩쓰는 걸그룹들이 자그마한 공연장 하나도 채우는 게 힘든 현실에서 보이그룹은 그야말로 '생짜 신인'도 수백, 수천 규모를 채우고 있는 상황.
한 가요관계자는 "물론 대중적 인지도나 히트곡 제작은 걸그룹이 훨씬 더 유리하다. 행사에서도 훨씬 더 많이 찾는다. 하지만 음원차트에서 대박이 난 곡이라 해도 그 수익을 보면 회사를 전혀 끌어갈 수가 없는 수준이다. 광고 역시 스캔들 등 외부 위험 요소가 많다. 보이그룹이 안정적으로 동원하는 팬 규모가 가장 중요한 수익"이라고 풀이했다. 소위 히트곡이라고 불리는 음원들의 총 수익은 2~3억원 가량인 것으로 알려졌다.
소녀팬들의 충성심은 지난 27일 방송된 KBS '가요대축제'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건당 100원이 청구되는 문자투표에 나선 이들은 '절대적으로' 10대 여성팬들이었다. 걸그룹과 솔로가 다수 포진한 20팀의 후보 중 상위권을 보면 엑소에 이어 2위에는 비스트, 3위에는 인피니트, 4위에는 샤이니가 올랐다. 이후 B1A4, 틴탑, 씨스타 순. 걸그룹으로는 씨스타만이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이들은 고스란히 앨범 구매자, 콘서트 관객, MD 사용자가 된다.
그래서 최근 가요계에 불어닥친 레이블 사업에서도 제1순위는 보이그룹이다. SM C&C의 첫 선택을 받은 울림 엔터테인먼트의 가장 큰 자산은 인피니트였으며, 로엔으로부터 150억원을 투자받은 스타쉽엔터테인먼트의 다음 프로젝트도 보이그룹이다.
정상급에만 올라서면 수명도 짧지 않다. 신화는 물론이고 동방신기, 빅뱅 등이 크고 작은 고저는 있겠지만 브랜드 파워를 유지해내고 있다. 현재 엑소 정도의 화력만 되면 큰 이변이 없는 한 이후 3~5년은 정상급 수성에 무리가 없다는 게 업계 관측이다.

이같이 '신상' 보이그룹의 시장성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는 가운데, 발등에 불이 떨어진 케이스도 있다. 어중간하게 이미 엑소의 선배가 돼버린 케이스들. 2~3년간 차곡차곡 신곡을 쌓아서 조금씩 팬덤을 늘리며 성장하는 그림을 그리던 일부 보이그룹들은 여전히 수익보다 투자가 많은 상황에서, 겨우 1년만에 가요계를 평정한 선례에 맞닥뜨리게 됐다. 폭발력을 과시할 타이밍을 놓쳐버린 것.
한 보이그룹 관계자는 "이제 웬만한 규모와 성과로 홍보하기는 어려워졌다. 대중의 관심이 엑소 이후의, 엑소를 뛰어넘는 대형 보이그룹에 집중될 게 뻔한 상황이라 기존 2~3년차 선배그룹들이 전략 수정에 나서야 하게 됐다"고 말했다. 앞서 제국의 아이들이 성공적으로 개발한, 개별활동 활성화가 그 답이 될 전망. 그룹으로의 승부보다는 멤버별 각개전투를 통해 드라마 및 예능 등 틈새시장을 공략, 그룹 활동과 시너지를 노리는 시도가 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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