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프로야구 평균자책점 꼴찌는 한화 이글스 좌완투수인 다나 이브랜드(30)가 기록했다. 이브랜드는 32경기에 출전, 172⅓이닝을 소화하며 110실점을 기록해 평균자책점 5.54를 남겼다.
이브랜드는 한국무대 잔류를 강하게 희망했으나 한화는 그와의 재계약을 포기했다. 드러난 성적만 본다면 재계약을 맺지 않은 한화의 선택이 옳은 것처럼 보인다. 대신 한화는 그를 보류선수로 묶지 않아 만약 이브랜드 영입을 희망하는 다른 국내 프로야구 구단이 있다면 자유롭게 협상이 가능하다.
과연 이브랜드는 정말 수준미달 투수였을까. 아니면 극도로 불운한 투수였을까. 겉으로 보이는 성적은 이브랜드의 재계약 실패가 당연해 보이지만 조금 더 파고들면 의문점이 드는 게 한 두 가지가 아니다.

▲ WAR(Wins Above Replacement)란 무엇인가
이브랜드의 이야기에 앞서 WAR라는 스탯을 잠시 살펴보도록 하자. 기록에 관심이 많은 야구팬들이 한 번쯤은 들어봤을 WAR를 우리말로 옮기면 '대체선수 대비 승리'가 된다. 특정 선수가 리그 평균수준 선수에 비해 팀에 몇 승을 더 가져다줬는지를 보여준다. 만약 시즌 WAR가 3인 선수가 있다면, 이 선수는 리그 평균수준의 선수보다 팀에 3승을 더해준 것이 된다.
WAR는 투수와 타자 모두 구할 수 있다. 타자의 경우에는 계산이 다소 복잡하다. 타격성적 뿐만 아니라 주루와 수비 모두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수비능력은 숫자로 나타내기 힘들기 때문에 무척 복잡한 과정을 거쳐 답을 얻어내야 한다. 대신 투수 WAR는 타자 WAR에 비해 구하기가 쉽다.
WAR는 선발투수와 불펜투수의 구하는 공식이 다를 정도로 정교하게 세분화되어 있는 수치다. 아직 한국 프로야구에서는 널리 쓰이지 않고 있지만, 메이저리그는 선수의 몸값을 측정하는 지표로까지 이용되고 있다. 또한 'ESPN'을 비롯한 주요 스포츠 언론들도 WAR를 선수가치평가에 적극 반영한다. 참고로 류현진의 올 시즌 WAR는 3.1(팬그래프 기준)인데, 이는 메이저리그 선발투수 가운데 38위에 해당한다.
▲ '승패마진 -8' 이브랜드, WAR는 3.7
올해 이브랜드의 승리는 6승, 패배는 14패다. 단순 계산으로 따지면 팀에 -8승을 했다고 할 수도 있다. 좀 더 극단적으로 해석하는 사람은 이브랜드가 없었다면 한화의 승패마진이 +8이 되므로, 올 시즌 50승 78패 1무가 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되면 8위 KIA와 단 1.5경기 차로 좁혀진다.

그렇지만 단순히 승리와 패전만으로 계산을 하기는 무리다. 일단 승리와 패전은 선수 개인의 능력만큼이나 팀 사정이나 운이 많이 작용한다. 아무리 잘 던져도 타자가 점수를 못 내면 투수는 승리를 거둘 수 없다.
이브랜드의 승패마진이 -8이지만 WAR로 따져보면 다르다. 올해 이브랜드의 WAR는 3.7을 기록, 선발투수 가운데 2위에 올랐다. 만약 이브랜드가 올해 한화에 없었고 리그 평균수준의 투수가 그 자리를 채웠다면 한화는 올해 3.7승을 더 올리지 못했을 것이라는 뜻이다.
참고로 한화 유창식의 WAR가 0에 가까운데, 여기서 말하는 리그 평균수준 투수(선발과 불펜, 2군을 오가는 투수)에 가장 잘 들어맞는다. 철저하게 WAR의 개념에 맞게 해석해보자. 유창식이 이브랜드 대신 한화 선발 로테이션 한 자리를 맡았다면, 올해 한화는 42승이 아니라 38승에 그쳤을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 정말 불운했던 투수, 이브랜드
'6승 14패 ERA 5.54'가 이브랜드의 본모습일까, 아니면 'WAR 3.7, 리그 2위'가 본모습일까. 물론 두 기록 모두 살펴봐야만 정확한 선수평가가 가능하겠지만, 세이버매트릭스(야구통계학)에서는 후자가 답이다.
실제로 올해 이브랜드는 불운한 한 해를 보냈다. 수비무관평균자책점(FIP)이라는 자료가 있는데, 변수가 될 수 있는 수비의 영향을 모두 제거하고 오로지 투수의 능력으로만 성적을 매긴 것이다. 여기에서도 이브랜드는 3.49를 기록, 리그 3위에 이름을 올렸다. FIP는 피홈런과 볼넷, 탈삼진 등 수비의 영향을 받지 않는 기록만으로 계산하는데, 이브랜드는 여기에서 높은 점수를 얻었다.
이브랜드의 ERA와 FIP는 2.00 이상 차이가 난다. 이는 이브랜드가 정말 운이 없었던지, 아니면 수비의 도움을 못 받았다는 걸 뜻한다. 이브랜드가 등판한 날은 빗맞은 안타가 많이 나왔을 수 있고, 또는 단타로 막을 타구를 수비 실수로 2루까지 주자를 보내는 일이 자주 일어났을 수도 있다.
올해 한화의 실책은 74개로 리그에서 3번째로 적었지만, DER(수비효율: 인플레이 타구 대비 아웃카운트를 잡은 비율)는 7위에 그쳤다. 눈에 띄는 실책은 적었지만, 그 만큼 안 줘도 될 안타를 많이 내줬다고 해석이 가능하다. 수비도움을 받지 못한데다가 불운까지 겹친 이브랜드는 결국 리그 평균자책점 꼴찌라는 성적표를 받아들게 됐다.

▲ 이브랜드의 한국 잔류는 가능할까
현재 2014 외국인투수 구성을 마치지 않은 구단은 모두 세 곳이다. KIA와 LG, 그리고 한화는 아직 외국인투수 한 자리를 비워두고 있다. 이 가운데 이브랜드의 원 소속팀인 한화를 제외하면 그가 갈 수 있는 한국 구단은 LG와 KIA 뿐이다.
과연 LG와 KIA가 이브랜드에게 손을 내밀까. 그럴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현재 한국에 새롭게 들어오고 있는 외국인투수의 명단을 살펴보면 모두 쟁쟁한 선수들이다. KIA와 LG는 장고를 거듭하고 있는데, 이미 한 번 한국에서 실패를 맛본 이브랜드를 선택할 가능성은 낮다.
그렇지만 이브랜드에 대한 현장의 평가는 나쁘지 않다. 시즌 중 모 구단 코치는 "이브랜드가 시즌 초 꼬이면서 멘탈이 좀 무너진 것 같다. 후반기 던지는 대로 전반기에도 던졌다면 10승은 했을 투수"라고 높게 평가하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가 널리 퍼져있다면, 이브랜드가 한국에서 시즌을 시작하지는 못하더라도 시즌 중 교체선수로 돌아올 가능성은 얼마든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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