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중 김민구(22, KCC)를 고의로 가격한 애런 헤인즈(32, SK) 사태가 2경기 출전금지(SK 3경기 추가 자체징계)와 500만 원의 벌금으로 일단락되는 분위기다. 올스타 휴식기와 오리온스와 KT의 4대4 대형 트레이드가 겹치면서 벌써 헤인즈의 만행은 대중의 머릿속에서 지워지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 KBL에서는 얼마든지 ‘제2의 헤인즈’가 나올 수 있다.
▲ 솜방망이 징계수위 강화해야 한다
한국프로농구연맹(KBL)은 지난 16일 오후 논현동 KBL센터에서 재정위원회(이하 재정위)를 열었다. 재정위는 지난 14일 잠실학생체육관에서 벌어진 SK-KCC전에서 김민구(22, KCC)를 팔꿈치로 가격해 부상을 입힌 애런 헤인즈(32, SK)의 비신사적행위에 대한 징계수위를 심의했다.

장장 3시간 가까운 회의결과 헤인즈에게 ‘2경기 출전금지와 500만 원의 벌금’이라는 징계가 내려졌다. 아울러 해당경기를 맡았던 최한철 주심에게 견책, 이상준 2부심에게 1주일 배정정지가 부과됐다. 이는 한선교 KBL 총재의 재가를 얻어 최종승인이 된 결과다.
발표당시 KBL은 헤인즈 징계에 대해 “역대최고수준”이라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과거사례와 비교해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지난 2008-2009시즌 전자랜드 소속의 김성철은 LG의 기승호의 얼굴을 팔꿈치로 가격했다. 이에 김성철은 2경기 출전정지를 당하고, 300만 원의 벌금을 물었다. 2002-2003시즌 SK 빅스 최명도가 오리온스 김승현의 얼굴을 주먹으로 가격해 3경기 출전정지를 당하고, 500만원의 제재금을 낸바 있다.
하지만 여론은 이를 곱게 수용하지 않았다. 결국 SK구단은 헤인즈에게 자체적으로 3경기 추가징계를 내렸다. KBL의 징계수준은 팬들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에 한참 못 미친다는 점이 확인된 셈이다. KBL의 ‘솜방망이 처벌’은 SK에게 고민을 떠넘긴 격이었다.
지난 17일 전주실내체육관에서 팬들은 “헤인즈 폭행 ‘징계’ 대신 크리스마스 ‘휴가’를 준 이게 클린바스켓입니까?”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나타났다. 이들은 보안요원의 제지를 받고 즉각 플래카드를 접어야 했다. 하지만 민심은 확실하게 전달이 됐다. 현행 KBL의 징계수위로는 선수들에게 아무런 경각심도 줄 수 없다는 것. 아울러 500만 원이란 벌금도 수 억 원을 받는 선수들의 연봉을 고려했을 때 현실적으로 타격이 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2경기 만에 부상에서 복귀한 김민구는 지금도 후유증으로 고생하고 있다. 하지만 헤인즈는 돌아오는 경기에서 곧바로 실력발휘를 할 수 있다. SK는 헤인즈가 없어도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누가 더 손해인지 모르겠다. 지난 시즌까지 LA 레이커스의 어시스턴트 코치였던 척 퍼슨 KCC 코치는 “헤인즈의 플레이는 무방비 상태였던 김민구를 가격했다는 점에서 범죄에 가깝다. 적어도 9~10 경기 출전금지는 받았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과거사례를 들춰낸 ‘최고수준징계’란 KBL의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KBL은 헤인즈 사태를 계기로 선수들의 징계수위를 대폭 강화해야 한다. 억지로 떠밀려 사과하는 ‘퍼포먼스’는 전혀 진정성이 없었다. KBL은 잘못한 선수에게 사회봉사활동 30시간을 명령하는 식으로 선수가 벌을 받고 진정으로 반성하는 모습을 대중에게 확실하게 보여줄 의무가 있다.
▲ 비디오 판독제도 보완해야 한다
사건당시 헤인즈의 만행을 목격한 심판은 3명 중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중계카메라는 김민구가 어떻게 당했는지 정확하게 잡아냈다. 코트에 드러누운 김민구는 고통을 호소했지만, 심판은 사태파악도 제대로 못했다. 심지어 심판은 의료조치도 받지 못한 김민구가 빨리 코트에서 벗어나 경기가 속개되길 원했다. KBL 심판들은 정확한 판정을 하지도 못했고, 더 중요한 선수보호에도 매우 소홀했다.
KBL규정 제 13장 비디오판독 규정을 보면 ‘비디오 판독은 4쿼터 종료 및 매연장전 종료 2분전 동안 심판 3심의 협의 후에도 명확하게 판정하기 어려운 경우 주심이 비디오 판독을 요청한다’고 되어있다. 또 개인파울여부는 비디오판독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 쿼터 중반에 벌어진 헤인즈의 파울장면은 이에 해당되지 않는 셈이다.
그러나 규정에 얽매여 충분히 잡아낼 수 있는 오심을 놓쳤다는 것은 팬들에게 변명거리가 되지 못한다. 수 억 원을 투자해 들여놓은 판독장비를 정작 중요한 순간에 쓸 수 없다면 도입한 의미가 없다. 규정에 문제가 있다면 이제 바꾸면 된다. 그런데 KBL은 항상 비슷한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며 책임회피만 하고 있다.
KBL에 NBA규정을 적용했다면 비디오판독을 거쳐 헤인즈를 즉각 퇴장시킬 수 있었다. NBA는 플레이 외적으로 선수들 간의 충돌이 발생했을 때, 파울콜이 선언됐지만 어떤 선수가 파울을 당했는지 확실하지 않은 경우 등에 3심 합의하에 비디오판독을 적극 활용할 수 있다. 심판도 인간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기술의 진보를 활용해 최대한 정확한 판정을 하겠다는 의지다.

KBL은 지난 11월 30일 모비스 대 삼성전에서도 신체접촉이 없던 로드 벤슨에게 파울을 줘 벤슨을 5반칙 퇴장시켰다. 또 12월 28일 전자랜드 대 KGC전 4쿼터 숀 에반스의 퇴장판정도 다소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다. 비디오에는 에반스의 신체접촉이 없었다는 장면이 명확하게 나온다. 이처럼 경기 중 비디오판독이 꼭 필요한 경우는 얼마든지 나오고 있다. 더구나 전자랜드전 주심은 헤인즈 사건으로 견책처분을 받았던 최한철 심판이었다. 심판징계는 오심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다.
KBL관계자는 비디오판독 규정변화에 대해 “필요성은 알고 있지만, 올 시즌은 이대로 갈 수밖에 없다. 올 시즌이 끝나고 규정변화를 건의하겠다”고 대답했다.
지난 시즌 일부 구단들이 좋은 신인을 뽑기 위해 ‘일부러 져준다’는 의혹이 일었다. 이에 KBL은 시즌 중 갑자기 신인 드래프트 제도를 뜯어고쳐 챔프전에 진출하지 못한 8개 팀의 1순위 지명확률을 동등하게 바꿔버렸다. 이렇게 순발력이 좋았던 KBL이 정작 변화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비디오 판독 규정에 대해선 원칙을 고수하고 있으니 아이러니하다.
헤인즈 사태가 발생한지 2주가 넘는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KBL은 부정적 여론 잠재우기에만 관심이 있을 뿐, 근본적인 재발방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제2의 헤인즈’가 나오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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