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은 그림같이 예쁜데 행동은 딱 동네 날라리 여동생이다. 쓰디 쓴 현실 앞에 술잔을 기울이며 속마음을 털어놓는 ‘미스코리아’ 속 이연희가 그려내는 오지영은 비록 외모가 비현실적일지라도 처한 상황과 선택은 지독히 현실적이라 정감이 간다.
1일 오후 10시 방송된 MBC 수목드라마 '미스코리아'(극본 서숙향 연출 권석장)에서는 진심으로 오지영(이연희 분)을 설득하기 위해 애쓰는 김형준(이선균 분)의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김형준은 눈앞에서 퀸 미용실 마원장(이미숙 분)에게 오지영을 빼앗겼다. 앞서 그는 감귤아가씨 선발대회에 오지영을 출전시키며 그의 미스코리아 당선으로 자신의 회사 비비화장품을 회생시키는 데 사활을 걸고 있었던 상황.

그러나 김형준을 신뢰하지 않는 오지영은 마원장과 손을 잡으려 계획하고 있었고, 자신에게 손을 내미는 마원장의 제안을 받아 들고 그의 미용실에서 미스코리아가 되기 위한 수업을 본격적으로 듣기 시작했다.
떠나는 오지영과 마원장에게 “오늘 당신을 따라간 게 지영이 진심인 거 아는데 다시 나한테 돌아오는 것도 지영이 진심이 되게 할 거다"라고 굳은 의지를 보였던 김형준은 오지영이 엘리베이터 걸을 그만두고 백화점에 사표를 내는 날 찾아왔다.
김형준과 함께 야외 포장마차에서 술잔을 기울이던 오지영은 갑자기 하늘을 향해 입술을 내밀며 ‘쪽쪽’거렸다. 영문을 모르는 김형준에게 그는 “개 같은 놈의 세상에 애교 한 번 떤 거다. 나 좀 예쁘게 봐 달라고. 실망이야? 실망이면 까짓 돈도 안 드는 거 발랑 까진 년이 한 번 해줄게”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IMF 관련 뉴스를 보며 씁쓸한 표정을 짓는 김형준의 볼에 갑작스럽게 뽀뽀를 했다. 혀 꼬인 발음으로 털어놓은 뽀뽀의 이유는 "그렇게 슬픈 표정 짓지 말라고"였고, 김형준은 설레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도 잠시 김형준은 회사 부도 위기에 처한 자신의 딱한 사정을 설명하며 연민을 자아냈다. 그러나 "한 번만 다시 생각해 달라"는 김형준에게 오지영은 "마원장이 죽으라면 죽는 시늉을 해서라도 미스코리아 꼭 될 거다. 나도 불쌍하다. 제발 나보다 더 불쌍한 척 하지마라. 불쌍한 사람 둘이서 눈물로 절이라고 세워 볼까?"라고 호소했다.
포장마차 안에서 내뱉는 오지영의 말들은 일면 툭툭 던지는 듯 무심했지만, 오랜 시간 미래가 보이지 않는 엘리베이터 걸을 하며 쌓여온 오지영의 설움과 비애가 담겨 있어 남다른 여운을 만들었다.
오지영의 캐릭터는 매력적이다. 뛰어난 미모에 남자들을 홀리는 여우같은 면을 갖고 있으면서도 자신 때문에 실직 위기에 처한 동료를 위해 퇴직금을 바치는 통큰 면모를 보인다. 작은 가슴에 대해 콤플렉스를 갖고 있으면서도 가슴 확대술 제안에는 "모유 수유를 할 수 있느냐"며 미래의 아이까지 생각하는 엉뚱하고도 따뜻한 면을 비쳐 웃음을 자아낸다.
이연희는 이 같은 오지영의 캐릭터를 자연스러운 연기력으로 십분 살리고 있다. 특히 이날의 술 취한 연기는 함께 하고 있는 이선균과 탁구공을 주고 받듯 완벽한 어울림을 보여 극의 몰입도를 한 층 높였다. 한 때 연기력 논란에서 이름을 빼놓지 않았던 이 여배우가 하루하루 성장해 가는 모습이 놀랍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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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코리아'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