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위권 추락으로 자존심이 상했던 SK가 2014년 다시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 놓인 이만수 SK 감독도 다시 입술을 깨물었다. 비울 것은 비우고, 채울 것은 채운다는 심정으로 스스로부터 새해 각오를 다지고 있다.
2013년은 SK의 모든 관계자들에게 시련의 해로 기억된다. 6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며 왕조를 건설했던 SK는 지난해 6위까지 미끄러졌다. 모든 관계자들이 성적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좋은 성적을 낸 선수들조차 성적 부진이라는 대명제에 마음껏 웃지 못했다. 좀처럼 경험하지 못했던, 몇몇 선수들에게는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이는 책임을 짊어지고 가야 할 이만수 감독도 마찬가지였다.
2011년 중반 감독대행으로 사령탑에 오른 뒤 2012년 한국시리즈 준우승의 성과를 낸 이 감독이었다. 수석코치와 퓨처스팀(2군) 감독 때부터 정상권 성적에만 익숙했던 이 감독으로서도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현실이었다. 시즌이 끝나고는 장시간의 고민이 이어졌다. 매일 정리한 야구노트를 뒤척이며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무엇이 잘못됐는지, 앞으로를 어떻게 이끌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이 이 감독의 허무한 가을과 겨울을 지배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 가슴 아픈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메이저리그(MLB)에서 코치 생활을 한 이 감독은 SK에 ‘자율’이라는 단어를 주입시키려 애썼다. 하지만 급격한 팀 분위기 변화가 현실과 잘 맞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결국 지난해에는 자신의 지도성향과는 다른 대규모 마무리캠프를 꾸리기도 했다. 이 감독은 “마음이 많이 아팠다.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선수들을 쉬게 해주고 싶었던 것이 솔직한 심정”이라고 했다. 이런 현실이 이 감독의 마음을 더 차갑게 했다.
하지만 언제까지 반성과 고민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감독도 이제는 어느 정도 생각의 정리를 끝냈다. 최근 가족들과 함께 조용한 여수를 찾아 ‘버림’의 마지막 단계를 밟고 있다. 이 감독은 “작년은 힘든 한 해를 보냈다”라고 씁쓸하게 웃으면서도 “지난 것은 다 잊었다. 새해가 밝지 않았나. 부정적인 생각은 버렸다. 이제부터는 올해만 생각할 것”이라고 다시 목소리에 힘을 줬다.
버리면서 비워낸 부분은 긍정이라는 단어로 채워 넣을 생각이다. 오프시즌에서 부동의 2루수인 정근우, 그리고 지난해 14승을 올린 에이스 크리스 세든을 잃은 SK다. 이 감독도 내심 아쉬움이 크지만 긍정적인 생각만 머릿속에 넣으려고 노력 중이다. 이 감독은 “긍정적으로만 생각하려고 한다. 지난 2년 동안의 문제점은 나도 알고 선수들도 분명히 알았을 것이다”라면서 “이제 와서 내가 잘했느니, 네가 못했느니 식의 논쟁은 필요없다”며 새로운 시작에 대한 다짐을 분명히 했다.
긍정에 대한 희망도 보고 있는 이 감독이다. 이 감독은 “선수들도 이제 깨달은 것이 있었을 것이다. 마무리캠프에서도 선수들이 잘 따라왔다. 그렇게 열심히 했던 적은 처음”이라고 선수단을 칭찬하면서 “새로운 코치들도 정열적으로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다. 이제는 모두가 자발적으로 하지 않을까”라고 기대를 드러냈다. ‘자율야구’가 3년차를 맞이해 좀 더 뿌리가 굳건해지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이다.
이제 3년 계약의 마지막 해로 접어드는 이 감독이다. 미묘한 시기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감독은 ‘마이웨이’를 외쳤다. 이 감독은 “마지막 해라 관심을 모으고 있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하늘의 뜻이다. 지금까지와 똑같이 하겠다. 갑자기 성향이 바뀌는 일은 없다. 있는 그대로, 내 스타일대로 간다”며 의지를 드러냈다. 이 감독은 3일 인천으로 올라와 다시 유니폼을 입는다. SK 선수단은 4일 주장 선출을 시작으로 6일 구단 공식 시무식이 예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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