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 배우 서하준(25)은 누가 뭐래도 지난 해 하반기를 뜨겁게 달군 MBC 일일드라마 ‘오로라공주’의 최대 수혜자였다. 드라마가 기상천외한 논란의 중심에 있는 가운데서도 주인공 오로라(전소민 분)만 바라보는 지고지순한 사랑을 보인 설설희 역으로 시청자들의 시선을 빼앗았다.
혈액암 말기에도 기적처럼 살아남아 로라와의 사랑의 결실을 이루며 극중 셀 수 없이 세상을 떠난 이 드라마에서 행복한 인생을 사는 몇 안 되는 축복을 얻기도 했다. 드라마 첫 작품에서 이렇게 주목을 받기 쉽지 않은데, 서하준은 임성한 작가의 ‘오로라공주’를 통해 이 같은 큰 행운을 거머쥐었다. 여기에는 서하준의 신인답지 않은 안정적인 연기력이 바탕이 됐다. 대학로 연극 무대에서 갈고닦은 연기력을 갖추고 있었던 서하준은 ‘오로라공주’라는 넝쿨째 굴러온 행운을 놓치지 않았다.
“저는 드라마에 출연해서 시청자들에게 인사를 드린 것만으로도 상을 받은 듯한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그런데 많이들 알아봐주시고 좋아해주시니까 기분이 묘해요. 한편으로는 부담감도 있고요.”

지난해 연말 연기대상에서 서하준은 밝은 미소로 시상식 내내 자리를 지켰다. 수상에는 실패한 까닭에 그의 수상을 기대했던 팬들을 아쉽게 했다.
“전 상 욕심도 없었어요. 시상식에 참석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신기했고,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TV에서만 보던 배우들을 볼 수 있어서 그것 자체가 상이었죠. 전 아직도 언론 인터뷰를 하고 저에 대한 기사가 나오는 것이 믿기지 않아요.(웃음)”
서하준은 대학에서 연극영화과를 전공했다. 이후 연극 무대에서 연기를 차곡차곡 쌓다가 우연한 기회에 모델로 무대에 서게 됐다. 3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연기를 하지 못하게 된 후 연기에 대한 갈증이 깊어졌다. 연기가 하고 싶고, 연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찾다가 만난 작품이 ‘오로라공주’였다.

시청자들도 볼 때마다 놀라운 사실이었지만, 서하준 역시 처음에는 큰 역할인지 몰랐다. 서하준은 시청자들의 높은 관심에 점점 비중이 늘었고, 급기야 남자 주인공 오창석과 비등한 위치까지 올랐다.
“첫 작품인데 큰 역할인 줄 알고 들어갔다면 부담스러웠을 것 같아요. 작은 역할인 줄 알고 들어갔다가 조금씩 적응했죠. 만약에 처음부터 이렇게 큰 역할인 줄 알았다면 부담감에 실수도 많이 했을 것 같아요. 작은 역할이어서 그나마 마음 편하게 할 수 있었어요.”
연극의 강한 어조 등에 익숙했던 서하준은 처음 드라마 연기를 할 때 조금 어색했다. 하지만 금방 적응했고, 신인 배우라고 믿겨지지 않을 정도의 섬세한 연기력을 뽐냈다.
“처음에는 제가 연기를 잘하는지, 못하는지도 모른 채 촬영 현장 적응하기에 바빴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제가 잘못된 연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죠. 카메라, 조명, 음향 등 신경 써야 할 부분이 정말 많았어요. 물론 제 연기 뿐만 아니라 상대 배우의 연기까지도 신경 써야 해서 모든 것이 숙제였어요. 힘들었겠지만, 힘들다고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연기를 열심히 해서 다른 배우들과 스태프에게 도움이 돼야겠다는 생각 밖에 없었어요.”
서하준은 이 드라마에 정말 몰두했다. 극중 혈액암에 걸린 설희를 표현하기 위해 몸무게도 감량했다. 2주 만에 5kg을 감량하며 체력적으로도 힘들었다.
“혈액암이 면역성이 없는 병이라고 해서요. 살을 빼야겠다고 생각하고 굶었죠. 빠른 시간 안에 빼려면 방법이 없더라고요. 운동을 하면서 뺐으면 건강하게 뺐을 텐데 그러질 못했어요. 그러다보니 몸이 나빠지더라고요.”
실제로 서하준은 인터뷰 당일 감기 몸살에 시달렸다. 그는 몸상태가 정상적이지 않은 가운데서도 성심성의껏 인터뷰에 응했고, 다음 인터뷰 때는 건강한 모습으로 보자고 약속까지 하는 상대방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오로라공주’는 ‘막장 시트콤’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할 정도로 상식 밖의 전개로 언제나 시끄러웠다. 드라마 이야기보다 작가의 기이한 행보에 관심이 쏠렸다. 드라마에서 연기를 하는 배우로서 이 같은 부정적인 여론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드라마에 대한 좋지 않은 시선과 논란들도 관심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 같아요. 그렇게 관심을 가져주시는 게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하고요. 작가님이 드라마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많은 색다른 시도를 하신 것 같아요. 강아지 떡대에게 입힌 자막 같은 것도 재밌는 요소를 넣기 위한 시도 아니었을까요? 배우들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맡은 임무인 연기를 충실히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도 시청자들에게 충실한 연기를 보여드리려고 노력했어요.”
그는 인터뷰에서 배우로서 자신을 발탁하고 성장하게 만든 임성한 작가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았다. 각종 잡음에 시달렸고 작품의 완성도 측면에서 엇갈린 평가가 존재하지만, 이 드라마에 출연했던 신인 배우들에게 임성한 작가는 고마운 존재다. 따지고 보면, 드라마 성공을 위해 인기 배우를 내세우고 싶은 드라마 환경에서 임성한 작가만큼 신인 배우 양성에 탁월한 재주를 보이는 작가도 없다.
“임성한 작가님께 고마워요. 연기를 하고 싶을 때, 연기에 대한 갈증이 최고였을 때 다시 연기를 하게 해준 분이세요. 작가님이 전화로 제 연기에 대해 조언해주셨는데 정말 목소리가 따뜻했어요. 많은 부분을 가르쳐주셨는데 정말 감사드리죠. 다음 작품에서도 불러주신다면 출연하고 싶어요. 큰 은혜를 입었는데 갚아야죠.”
서하준은 요즘 행복하다. 가족들에게 연기자의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마음이란다.
“정말 많은 연기를 하고 싶어요. 많은 경험을 하고 많은 삶을 살아보고 싶어요. 어떤 특별한 연기를 하고 싶다든가, 이런 생각은 없어요. 가리지 않고 많은 연기를 하고 싶어요. 그래도 하정우 선배님을 닮고 싶어요. 연기도 연기지만, 남자의 향기가 물씬 나는 그 모습, 사람 냄새 나는 배우의 모습을 갖추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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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선 기자 sunda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