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수 SK 감독은 2014년 전지훈련을 앞두고 ‘백지상태’라는 말을 자주 쓴다. 전체적인 팀 라인업을 원점에서 그리겠다는 것이다. 마무리 보직도 화두에 올라 있는 가운데 관심을 모으고 있는 김광현(26)의 마무리 기용은 새 외국인 투수 로스 울프(32)에 달려 있을 가능성도 있다.
SK는 오는 15일 1차 전지훈련 캠프가 마련된 플로리다로 떠난다. 이번 오프시즌에서 지난해 다승왕 크리스 세든과 공·수·주의 핵심 정근우를 잃은 SK는 오히려 전력이 더 약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새롭게 뽑은 외국인 선수들이 좋은 활약을 펼친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도 있다. SK도 외국인 선수 선발에 심혈을 기울인 끝에 루크 스캇(36)과 울프 영입에 성공했다.
두 선수 모두 메이저리그(MLB) 경험이 비교적 화려한 편이다. 스캇은 MLB 통산 135홈런을 친 경력이 있다. 울프는 지난해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시즌 중반부터 끝까지 25인 로스터에 포함된 선수였다. 이만수 SK 감독도 일단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다. 그러나 긴장을 놓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외국인 선수들은 변수가 많은 만큼 “직접 눈으로 봐야 한다”라는 게 이 감독의 생각이다.

국내 선수들의 기량 파악은 끝났지만 두 선수는 비디오로밖에 보지 못했다. 때문에 이 감독은 플로리다 전지훈련에서 두 선수의 기량을 면밀하게 파악한 뒤 그에 맞는 보직을 준다는 심산이다. 울프도 마찬가지다. 일단 선발을 염두에 두고 있으나 이 감독은 “확정된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이 감독은 “울프는 중간에서의 경험이 더 많더라”라며 여지를 뒀다.
실제 울프는 MLB 통산 47경기 출전 중 3경기만이 선발이었다. 마이너리그에서도 478경기에서 18경기만이 선발 출전이었다. 중간이 더 익숙한 선수다. 지난해 SK에서 뛰며 14승을 거뒀던 크리스 세든도 비슷한 상황이었기에 선발 전환이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으나 확신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만약 선발 전환이 난항을 겪는다면 그냥 중간으로도 쓸 수 있다.
이 감독은 “세든도 중간 경험이 더 많았다. 선발로는 뛴 경험이 별로 없었는데 여기서 선발로 잘했다.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라면서도 “단정 짓기는 이르다. 보직도 전지훈련에서 결정할 생각”이라고 했다. 이는 김광현의 보직 이동과도 연관이 있다. 이 감독도 말을 아끼면서도 이에 대한 연관성을 배제하지 않으며 “모든 선수들의 보직은 전지훈련이 끝날 때쯤 결정하겠다”라고 밝혔다.
만약 울프가 선발진에 합류할 경우 조조 레이예스, 울프, 윤희상, 백인식까지의 4선발은 완성이 된다. 현재 SK에서는 이창욱 윤석주 여건욱 등도 잠재적인 선발 후보로 키우고 있다. 이 경우 김광현을 뒤로 돌릴 수 있다는 게 이 감독의 계산이다. 그러나 중간이 더 적합하다고 생각할 경우는 김광현을 선발로, 박희수를 마무리로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외국인 투수를 중간으로 쓴다는 것은 비효율적일 수도 있지만 지난해 SK 마운드 최대 약점이 중간 투수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아깝지 않은 투자다. 기대가 걸리는 선발 네 명에 윤길현 진해수 박정배 울프 박희수의 조합이라면 결코 나쁘지 않은 그림이다. 왼손은 시즌 중 합류가 예상되는 고효준 이승호에 기대를 걸어볼 수 있다.
한편 야수 쪽에서도 스캇의 보직 확정 이후 나머지 그림들이 그려질 전망이다. 이 감독은 “스캇은 3번부터 5번까지 모두 뛸 수 있는 선수다. 하지만 어떤 타순이 적당한지, 수비가 어느 정도인지는 지켜봐야 한다”며 역시 확답을 미뤘다. 이 감독은 “울프와 스캇의 포지션은 단정 짓지 않으려고 한다”라는 말과 함께 신중하게 플로리다 전지훈련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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