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경기 출전 정지 징계를 받은 알렉스 로드리게스(39, 뉴욕 양키스)가 선수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다. 현역 홈런 랭킹 1위(654개)의 명성은 약물과 함께 실추된 지 오래다. 역시 뛰어난 업적을 남기고도 ‘약물’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배리 본즈(50)와 함께 시대의 ‘일그러진 스타’로 남을 가능성도 커졌다.
메이저리그(MLB) 사무국은 12일(이하 한국시간) 금지약물복용 혐의를 받아온 로드리게스에게 162경기 출전 정지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지난해 1월 이른바 ‘바이오제네시스 스캔들’에 연루된 로드리게스는 그간 자신의 결백을 주장해왔으나 여론은 차가운 상태다. 지난해 8월 211경기라는 징계 처분에 항소했으나 결국 경기수만 다소 줄어드는 데 그쳤다.
연방 법원에 항소하는 절차가 남아 있긴 하다. 그러나 로드리게스가 이 싸움에서 승리할 것으로 보는 시각은 거의 없다. 자신의 무죄를 증명할 만한 증거는 불충분한 것에 비해 혐의를 입증하는 증거는 많다. 설사 연방 법원에서 판결이 뒤집힌다고 하더라도 여론의 따가운 시선을 피해가기는 어렵다. 당장 소속팀 뉴욕 양키스와 MLB 선수노조도 로드리게스에 등을 돌렸다. 나이를 감안하면 사실상 은퇴 수순을 밟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지난 1994년 시애틀에서 MLB에 데뷔한 로드리게스가 남긴 누적 기록은 가히 엄청나다. 통산 2568경기에서 타율 2할9푼9리, 654홈런, 1969타점을 남겼다. 홈런과 타점 모두 현역 선수로는 최다이자 역대 5위에 올라 있다. 세 차례의 최우수선수(MVP), 14차례의 올스타, 10차례의 실버 슬러거 등의 경력도 찬란하게 빛난다. 그러나 약물이 모든 것을 앗아갈 분위기다.
로드리게스는 2001년부터 2003년까지 금지약물을 복용한 적이 있다고 고백해 논란을 일으켰다. 당시는 양키스로 옮겨오기 전 텍사스에서의 3년으로, 연 평균 52홈런을 때렸을 때다. 당연히 기록에 대한 가치가 훼손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시 이번 스캔들에 휘말림에 따라 이미지에 치명상을 입었다. 그가 남긴 모든 기록들이 후대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할 가능성도 커졌다.
배리 본즈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다는 싸늘한 평가도 나온다. 본즈는 1986년부터 2007년까지 통산 2986경기에서 762개의 홈런을 때렸다. 행크 아론의 통산 홈런(755개)를 넘어서 MLB 역사의 가장 꼭대기에 서 있다. 그러나 본즈 역시 금지약물 복용 혐의로 이 기록이 폄하되고 있다. 실제 본즈는 엄청난 기록을 세웠지만 2년 연속 명예의 전당 문턱에도 가지 못했다. 앞으로는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본즈나 로드리게스는 약물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뛰어난 활약을 펼칠 수 있는 선수들이었다. 그들이 약물에 손을 대기 전 시점 기록을 봐도 리그 정상급이었다. 하지만 과도한 욕심은 눈을 가렸고 결국 ‘역대급’의 성적을 내고도 비아냥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추락을 맛봤다.
약물이 기록 향상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지만 어쨌든 이들은 자신의 기록에 아무런 가치를 남기지 못한 채 쓸쓸히 퇴장했거나 퇴장해야 할 상황에 이르렀다. MLB의 후배 선수들, 그리고 우리도 깊이 새겨야 할 반면교사의 가치라도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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