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수원에서 열린 현대캐피탈과 한국전력의 경기. 경기는 현대캐피탈의 극적인 역전승으로 마무리됐다. 수훈갑은 5세트 막판 결정적인 서브 에이스를 연거푸 꽂아 넣은 리버맨 아가메즈(현대캐피탈)였다. 그러나 이날 경기에서 더 빛난 선수는 따로 있었다. 아가메즈가 아닌, 반대편 코트에 있었던 전광인(23, 194㎝)이었다.
올 시즌 가장 강력한 신인왕 후보로도 손꼽히는 전광인은 이날 36득점을 올렸다. 공격 성공률은 53.45%로 준수했던 반면, 범실은 단 3개로 적었다. 외국인 선수 밀로스의 부진과 퇴출로 시즌 내내 에이스 몫을 수행하고 있는 전광인이 종횡무진 맹활약을 펼친 날이었다. 전광인을 막지 못한 리그 선두 현대캐피탈은 말 그대로 벼랑 끝까지 다녀왔다.
전광인은 키가 큰 편은 아니다. 배구에서는 엄청난 핸디캡이다. 그러나 이를 만회하는 점프력, 잽싼 움직임,빠른 스윙, 그리고 상대 블로커를 두려워하지 않는 패기를 지녔다. 이날 경기에서도 반대편에 위치한 세계 최정상급 공격수 아가메즈와 대등한 싸움을 벌였다. 한 번 공격이 실패해도 다시 날아올랐고, 계속되는 공격에도 이를 악물고 스파이크를 날렸다. 기록 이상의 뜨거움을 남기는 장면이었다.

애당초 기대가 컸던 신인이기는 하다. 대학 시절부터 태극마크를 달고 대표팀의 주포로 맹활약했다. 러시앤캐시의 창단 때 한국전력이 1라운드 1픽을 지키려고 사활을 걸었던 것도 오로지 전광인 때문이었다. 기대는 들어맞고 있다. 아니 기대 이상이다. 신인의 티는 일찌감치 벗어던졌고 이제는 팀의 대들보로 활약하고 있다. 득점 5위(366점), 공격 종합 3위(55.92%)이라는 성적은 환하게 빛이 난다. 문성민 박철우 김요한이라는 토종 ‘빅3’가 부상으로 고전하는 사이 국내 최고의 공격수로 떠올랐다.
물론 힘들다. 뛰어난 기량을 가졌지만 어쨌든 첫 프로 시즌이다. 자신에게 몰리는 공이 부담스러울 법도 하다. 신영철 한국전력 감독도 고개를 끄덕인다. 신 감독은 경기 후 “(전)광인이가 힘든 과정을 잘 견뎌주고 있다. 혼자서 외국인 몫을 한다고 할 정도로 해주고 있다”라고 제자를 칭찬했다. 무릎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투지를 불사르는 것도 신 감독의 마음을 짠하게 하는 요소다.
다행히 이런 부담은 줄어들 수 있을 전망이다. 이름값만 놓고 보면 걸출한 외국인 선수인 레안드로 비소토가 후반기부터 합류한다.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할 필요성까지는 없을 전망이다. 체력을 관리할 수 있다면 더 뛰어난 활약이 가능하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제는 팀의 보물로 거듭난 전광인에 대한 당연한 관리이기도 하다. 이를 알았을까. 아가메즈는 경기 후 전광인과 악수를 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상대 에이스에 대한 예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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