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야구가 1977년 니카라과 슈퍼월드컵대회에서 우승, 국제대회에서 처음으로 정상을 차지하는데 공헌한 김정수가 1월 13일 지병으로 타계했습니다. 향년 61세.
부산고 출신으로 한양대를 거쳐 아마추어 롯데 자이언트와 프로 롯데 자이언츠의 원년멤버로 뛴 김정수는 지도자 생활은 롯데와 우리 히어로즈에서 활동했습니다.
부산 지역 리틀야구를 지도하고 최근에는 마산 용마고의 초빙코치로 일하다가 12일 갑자기 뇌졸중이 발병, 부산대 병원으로 옮겨졌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고교 시절 투수로 활약한 김정수는 한양대에 진학 후에 어깨 부상이 생기면서 타자로 전향, 중거리포 좌타자, 1루수로 명성을 날렸습니다.
아마 롯데가 창단한 1975년 10월에 입단한 김정수는 다음 해 실업리그 2차리그와 추계리그에서 팀이 우승하는데 중심타자 몫을 했습니다. 실업야구 첫 해 올스타전에 실업단 멤버로 선정된 그는 금융단과 경기에서 선제 투런홈런을 터트려 홈런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1977년 11월 대표팀에 발탁된 그는 미국 일본 자유중국 캐나다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푸에르토리코 니카라과 등 9개국이 출전한 대회에 출전했습니다.
당시 대표팀은 김응룡(한일은행 감독)감독과 이재환-유백만 코치, 윤동균 유남호 이선희 김시진 최동원 유종겸 심재원 박해종 김재박 배대웅 김봉연 이해창 김일권 장효조 등이었습니다. 김정수는 5~7번타자로 나서 타율 3할대에 미국과의 결승전 등 주요 경기서 타점과 득점을 올리며 중추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1982년 출범한 프로야구는 고향팀 롯데에 입단했으나 우리나이 서른이어서 늦은 감이 있었고 어깨와 허리 부상도 겹쳐 그다지 좋은 성적은 올리지 못했습니다. 첫 해는 80경기 중 79경기에 출장해 타율 2할7푼7리, 76안타 11홈런 45타점 15도루로 괜찮았지만 다음 해는 60경기에 나와 타율 2할2푼4리에 그쳤습니다.
83년 11월 삼미로 트레이드된 후 84년에는 한 게임도 출전치 못하고 85년과 86년에 미미한 기록을 남기고 유니폼을 벗었습니다. 선수 통산 성적은 타율 2할3푼4리에 23홈런입니다. 은퇴 후 90년에 롯데 코치로 일하고 2008년 8구단으로 창단한 우리 히어로즈의 코치를 맡고 2년간 활동했습니다.
야구 불모지 동남아 지역을 방문해 선수들을 육성하고 부산과 경남 지역에서 어린이와 고교야구 팀 지도를 활발하게 했던 김정수는 쓰러지기 직전까지 용마고 선수들을 지도하다 비교적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OSEN 편집인 chunip@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