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게 자른 머리, 굳게 다문 입술이 그의 마음을 대신해 보여줬다. '국민타자' 이승엽(38, 삼성)이 남다른 각오를 품에 안고 15일 괌행 비행기에 올랐다. 이날 기자와 만난 이승엽은 "어제 잘랐다"고 머쓱하게 웃었다. 말 그대로 절치부심이다.
이승엽에게 지난해는 악몽과도 같았다. 타율 2할5푼3리(443타수 112안타) 13홈런 69타점 62득점. 국민타자의 명성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성적이었다. 더욱이 허리 부상까지 겹치는 등 한숨만 늘어갔다.
류중일 감독은 두산과의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이승엽을 6번 타자로 기용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른바 폭탄 타순에 배치해 이승엽의 부담을 줄여주는 동시에 중심 타선의 뒤를 받치는 거포의 존재감을 보여주길 기대하는 마음에서다. 결과는 성공보다 실패에 가까웠다. 이승엽은 한국시리즈 타율 1할4푼8리(27타수 4안타)로 아쉬움을 삼켰다.

지난 시즌을 앞두고 "한국시리즈 3연패 달성은 삼성 선수로서 목표이자 의무"라고 힘줘 말했던 이승엽은 시즌 내내 기대 만큼의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 탓에 사상 첫 통합 3연패의 순간에도 마음껏 웃지 못했다.
"후배들의 활약으로 우승할 수 있었다. 후배들이 자랑스럽다. 내년에 다시 기회가 온다면 내 이름을 되찾겠다". 이승엽에게 한국시리즈 우승 소감을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어느덧 불혹을 앞둔 이승엽은 조용히 칼을 갈았다. 괌행 비행기에 오른 그의 얼굴에 그동안의 노력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는 말했다. "시즌 내내 짧은 머리를 고수하겠다"고. 올 시즌 명예 회복을 위한 강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류중일 삼성 감독은 이승엽이 제 모습을 되찾길 학수고대하고 있다. "이승엽이 지난해 부진했었는데 팬들은 과거의 이승엽의 모습을 기대한다. 지금의 이승엽의 모습을 원하는 건 아니다. 이승엽이 30홈런을 쳐줬으면 좋겠다".
잇딴 인터뷰 요청에도 정중히 거절했던 이승엽은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줄 각오다. 이승엽은 머리를 짧게 자르며 명예 회복을 위한 힘찬 시동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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