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협상 테이블에 앉은 윤희상(29, SK)은 좀처럼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는 적은 금액이 구단이 내민 종이에 적혀 있었다. 생각이 많아졌다. 주머니 안의 도장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2012년 데뷔 후 첫 10승을 거두며 SK 선발진의 대들보로 등극한 윤희상이었다. 지난해 성적도 아주 나쁘지는 않았다. 25경기에서 151⅓이닝을 던지며 8승6패 평균자책점 3.87을 기록했다. 후반기에는 5승2패 평균자책점 2.82의 눈부신 활약을 선보이며 끝까지 투혼을 발휘했다. 캠프에서 불의의 부상으로 시즌 출발이 늦었다는 점, 시즌 중반 선발 로테이션이 꼬이며 컨디션 조절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그렇게 나쁘지도 않은 성적이었다.
실제 윤희상의 고과는 투수 중 2위였다. 1위는 팀을 떠난 외국인 선수 크리스 세든이었다. 사실상 고과 1위였다. 6위까지 떨어진 팀 성적을 생각하면 큰 소리를 칠 상황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소폭인상 제시는 윤희상의 예상과는 달랐다. 자신의 연봉계약을 참고할 동료들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윤희상은 장고 끝에 15일 플로리다 전지훈련이 시작되기 전 계약에 합의했다. 지난해 1억3000만 원에서 3000만 원 오른 1억6000만 원이었다.

구단 관계자도 “팀 성적만 좋았다면 충분히 더 많은 금액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정해놓은 원칙이 있는데 윤희상만 예외를 두기는 어려웠다는 의미다. 실제 협상 과정에서는 신경전보다는 이런 상황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는 과정이 거듭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서는 윤희상도 고개를 끄덕였다. 윤희상은 15일 전지훈련 출국 전 “시원섭섭하다”라고 말했다.
협상을 더 끌고 갈 수도 있었다. SK는 미계약자들도 일단 전지훈련에 합류한 뒤 협상을 이어간다는 기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희상은 그러지 않았다. 이유가 있었다. 연봉협상에 더 이상 발목을 잡힐 수 없었기 때문이다. 윤희상은 “사실 연봉협상이 끝나지 않아 개인적인 올해 목표 설정이 잘 되지 않더라. 마음이 잘 잡히지 않았다. 훈련할 것은 꼬박꼬박했는데 그래도 의욕에서 차이가 났다”라고 털어놨다. 훈련에 매진하기 위해 깨끗하게 털고 가기로 한 것이다.
느낀 것도 있다고 했다. 팀을 뛰어넘는 개인은 없다는 점이다. SK는 팀 성적이 6위까지 떨어진 탓에 지난해보다 더 많은 연봉 총액을 책정하기가 어려웠다. 대폭적인 삭감도 없었지만 인상요인이 있는 대다수의 선수들도 소폭 인상에 만족해야 했다. 윤희상도 “협상 과정에서 구단과 감정싸움을 한 것은 아니다. 팀 성적에 대해서는 통감한다. 더 이상 끌지 않고 계약한 이유”라고 밝혔다.
그러자 목표도 생겼다. 팀 성적에 대한 책임감도 생겼다. 윤희상은 “내년에는 좋은 팀 성적을 올려 연봉서도 보답을 받고 싶다”고 목표를 다졌다. “이제 연봉협상도 끝났으니 비행기 안에서 많은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다”고 웃으며 출국장을 떠난 윤희상. 시종일관 의젓한 모습에서 SK의 우완 에이스가 한 단계 더 성숙해지고 또 성장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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