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손남원의 연예산책] "어이 브라더!" 황정민이 멜로로 귀환한다. 정통 최루탄 멜로 '남자가 사랑할 때'다. 뻔한 신파극인데 이 영화, 웃고 박수치며 보다가 결국은 눈물을 한 바가지 흘리게 만든다. 뻔한 멜로라도 황정민이 하니까 다르다. 그래서 충무로 영화인들은 황정민이라 쓰고 명품 배우로 부르며 캐스팅에 열을 올리는 게 분명하다.
'남자가 사랑할 때'(이하 '남사')에서 극 중 황정민은 채권회수 때문에 만난 호정(한혜진 분)에게 첫 눈에 반해 그에게 저돌적이면서도 순수하게 구애를 펼치는 사채꾼 건달 태일을 연기했다. 밉지않은 건달로 거친 인생을 살아가던 태일은 찰라의 순간, 자신의 온 몸 속으로 파고든 호정을 통해서 처음으로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다른 삶을 살고자 한다.
이런 류의 멜로영화 도입부는 흔하디 흔하다. 건달과 청순녀의 만남이고 둘이 사랑에 빠진다는 거다. 그리고 정통 멜로라면 둘의 사랑을 죽어라 방해하는 각박한 세상과 누군가 나쁜 놈에 의해 서로 헤어지거나 한 명이 죽고 말겠지. 뻔히 알고 보는데도 관객을 울리는 '남사', 바로 이 것이 웰메이드 멜로의 생명줄이다.

황정민의 태일은 건들건들 주먹을 휘두르고 휘발유를 마시는 사채 독촉 협박을 일삼건만, 정감이 가는 캐릭터다. 2013년 액션 누아르 최고의 수작으로 꼽히는 '신세계'에서 그가 연기했던 조직폭력 보스 정청의 시장판 버전이나 다름없다. 황정민이 아니면 입지못할 옷이고 캐릭터다. 태일이란 이 친구, 객석에 앉아서도 보면 볼수록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남이다. 그러니 영화 속 깔끔녀 호정이 능글맞은 건달에게 점점 빠져들 밖에. 관객이 공감하지 못하면 멜로 영화 남녀 주연의 사랑은 끝장이다.
황정민은 "내가 연기하면서 느낀 것이, 사랑 얘기할 때가 제일 어렵지만 제일 재미있다는 것이다. 사랑은 관객들과 같이 소통이 잘 되고 잘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은 누구나 하니까. 늘 관객들과 소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멜로를 사랑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의 멜로라면 이미 최루성 멜로의 고전으로 자리잡은 '너는 내 운명'이 있다. 에이즈에 걸린 다방 종업원을 사랑하는 순진한 농촌 총각으로 등장했던 황정민의 연기는 명불허전이었다. 하지만 황정민답게, '너는 내 운명'식 멜로와 '남사' 식 멜로는 극의 탬포와 캐릭터,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같은 배우 맞나 하는 의문부호가 찍히게 되고 바로 이 점이 황정민 식 '천의 얼굴' 연기를 입증한다.
실제로 '달콤한 인생'의 천인공노할 악질 폭력배와 '신세계' 속 잔혹한 범죄자임에 분명하지만 인간미를 풀풀 풍기는 폭력배, '부당거래'의 선과 악 경계가 모호한 형사와 '사생결단' 속 물불 안 가리는 열혈형사 등 그는 같은 장르, 같은 역할을 갖고서 180도 다른 캐릭터들을 도화지에 그려낸 연기의 마법사였다.
드라마 '그저 바라보다가'에서는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 같은 '착한 남자'를,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에서는 눈 먼 검객으로 분해 사극 액션을 선보였다. 코미디, 액션, 느와르, 드라마 등 온갖 장르를 섭렵하며 흥행작과 수작들을 쏟아낸 흔치않은 이 시대의 연기파 배우가 바로 그다.
그런 황정민의 올 설날 멜로 '남사'가 기대되는 건 영화팬의 한명으로서 당연한 마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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