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자는 눈높이를 낮추면 다른 세계가 보인다고 한다. 그 다른 세계에서 쌓을 수 있는 경험도 많다고 격려한다. 하지만 다른 일각에서는 눈높이를 낮추면 스스로의 가치가 낮아진다고 말한다. 평생 그렇게 살 확률이 높아진다고도 한다. 요새 청년 실업을 둘러싼 각계의 해석이다. 어쩌면 메이저리그(MLB) 도전을 천명한 윤석민(28)도 그 갈림길에 서 있을지 모른다.
윤석민이 MLB 도전을 선언한 지 벌써 세 달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아직까지 모든 것이 베일에 가려 있다. 몇몇 팀이 관심을 모인다는 보도가 나왔다가 사라지는 일의 반복 속에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있다. 팬들의 기다림도 길어진다. 명확한 행선지가 결정되지 않은 탓에 윤석민의 의지와는 전혀 무관한 ‘국내 유턴설’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어찌 보면 인내심과의 싸움이다.
물론 상황이 비관적인 것은 아니다. 올해 MLB 투수 자유계약선수(FA) 시장은 다나카 마사히로(26, 라쿠텐)의 거취에 모든 관심이 쏠려있다. 다나카라는 거대한 댐이 시장의 물줄기를 모두 가둬둔 모양새다. 곧 행선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이는 다나카 문제가 해결되면 나머지 선수들도 자연스레 새 둥지를 찾아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윤석민도 그 중 하나다. 연말을 한국에서 보내기 위해 잠시 귀국했던 윤석민이 지난 17일 다시 미국으로 출국한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즉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래서 전략이 중요하고 그 전략을 위해서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명확하게 설정해야 한다. 윤석민은 지난해 10월 OSEN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생각하는 기본 조건이 맞아야 간다. 적절한 몸값과 선발 보장 두 가지를 모두 충족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보통 몸값은 보직에 결정되어 있는 만큼 일단 윤석민을 선발 요원으로 보는 팀이 있다면 적절한 몸값도 따라올 가능성이 크다.
윤석민은 주위 지인들에게 “몸 상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라고 자신한 것으로 알려졌다. 에이전트인 스캇 보라스 역시 윤석민의 몸 상태에 대한 별도의 검증은 없을 것이라 호언장담하고 있다. 다만 몸값을 투자해야 하는 MLB 구단으로서는 선뜻 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어쨌든 부상 경력에 대한 자료는 존재하고 여기에 MLB에서는 아직 한 경기도 뛰지 않은 윤석민이기 때문이다. 윤석민 측 못지않게 신중을 거듭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제 곧 영입에 대한 구체적인 제의가 있을 것으로 보이는 만큼 윤석민도 눈높이를 유지하면서 자존심을 지키느냐, 눈높이를 낮춰서라도 MLB 도전이라는 자신의 꿈을 좇을 것이냐는 결정을 내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전자의 열매가 더 달콤할 것은 분명하지만 후자가 좀 더 수월한 길일 수는 있다. 오랜 기간 미국행 도로가 정체되어 있는 윤석민으로서는 양쪽을 모두 흘겨볼 만하다.
자존심과 실리를 모두 챙기는 계약을 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모든 팬들이 바라는 일이다. 하지만 도전이라는 단어에 방점을 찍는다면 어려운 길을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 MLB에서 선발 보장이라는 조건을 보장받는 선수는 극히 드물다. 류현진(27) 또한 LA 다저스로 이적할 당시 마이너리그 거부권은 챙겼지만 표면적으로 선발 보장에 대한 권리는 없었다. 추측만 있을 뿐이었는데 어쨌든 류현진은 이런 자격을 직접 실력으로 증명했다.
마이너리그 거부권, 선발 보장 등의 옵션 등은 실력이 뒷받침될 경우 굳이 문서상으로 존재하지 않아도 됨을 류현진이 보여준 것이다. 윤석민도 못할 것은 없다. 스스로 몸 상태를 자신하고 있고 현지 언론에서도 윤석민을 높은 순위에 올려두며 능력을 충분히 인정하고 있다. 결국 계약의 문제가 아닌, MLB 마운드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주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정리가 가능하다. 2~3년 정도의 계약이 예상되는 만큼 자신의 활약 여부에 따라 그 후에는 류현진보다 더 많은 연봉을 받지 말라는 법도 없다.
물론 연봉이 적은 선수는 상대적으로 기회 제공 측면에서 불이익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고려할 수 있다. 윤석민이 당초 그런 목표를 설정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서서히 기회의 문은 열릴 조짐을 보이고 있고 어떤 선택을 내리든 그것은 윤석민이 짊어지고 가야 할 짐이다. 만약 상황이 여의치 않은 골목에 직면한다면 어떤 결단을 내릴까. 윤석민의 MLB행에 마지막 화두라고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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