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수 SK 감독은 전지훈련 출국 전 “모든 것을 백지상태에서 시작하겠다”라고 공언했다. 이를 돌려 말하면 마운드 보직도 원점에서 다시 구상하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에 김광현(26)의 마무리 기용설이 수면 위로 다시 떠올랐다. 다만 이 구상의 가장 중요한 이름은 오히려 박희수(31)일 수 있다.
지난해 6위까지 추락한 SK는 지난 15일 1차 전지훈련캠프가 기다리는 미 플로리다 베로비치로 떠나 훈련에 임하고 있다. 지난해 가고시마 마무리캠프부터 몸을 착실한 만든 까닭에 선수단 전반의 컨디션은 좋은 편이다. 4강 재진입이라는 키워드, 그리고 명예회복이라는 가슴 속의 칼을 품고 야구와 씨름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 이만수 감독도 선수단의 몸 상태와 전반적인 분위기에 대해 만족감을 드러냈다.
4강 재진입을 위해서는 지난해 문제점을 해결하고 가야 한다. SK는 지난해 가장 큰 문제점은 불펜이었다. 박정배 진해수 윤길현이 본격 가세한 후반기에는 다소 나아졌지만 전반기에는 롤러코스터 행보를 거듭했다. 2012년 마무리 정우람이 군에 입대한 탓에 박희수가 마무리로 이동했는데 선발부터 박희수까지 이어지는 징검다리가 줄곧 급류에 떠내려가곤 했다. SK가 전반기 좀처럼 치고 올라가지 못했던 하나의 이유였다.

이 감독도 이에 불펜 구상에 고심하고 있다. 새로운 전력보강 요소가 없는 만큼 기존 선수들을 어떻게 배치하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것이 김광현 마무리론이다. 이 감독은 “아직 확정된 것이 아니다. 모든 선수들을 시험한 뒤 캠프가 끝날 때쯤 결정하겠다”라고 밝혔지만 확실한 부인도 하지 않았다. 가능성은 열어두고 있다는 뜻이다.
김광현은 프로 데뷔 이후 거의 대부분 선발로 나섰다. 2010년 한국시리즈에서 마무리로 대기한 적이 있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단기전에 임하는 팀 전략의 일부였다. 어깨 부상에서 회복한 만큼 빠른 공을 던지는 김광현은 마무리로서도 좋은 활약을 보여줄 가능성이 충분하다. 다만 10승 투수를 마무리로 돌리는 것이 효율적인지, 팀의 장기적 전략과 부합하는지, 김광현의 몸 상태를 완벽하게 고려한 선택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아있다. 갑론을박이 일어나는 이유다.
이런 논란에도 이 감독이 구상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고 있는 이유는 결국 박희수의 존재라고 봐야 한다. 김광현이 마무리로 대기하면 박희수를 중간에 당겨 쓸 수 있는 여력이 생긴다. 박희수는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셋업맨으로 이름을 날렸다. 2012년에는 무려 65경기에 나가 8승1패6세이브34홀드 평균자책점 1.32의 ‘역대급’ 활약을 펼쳤다. 왼손 투수지만 오른손 타자에게도 별다른 약점이 없고 1이닝 이상을 능히 소화할 수 있는 전천후 투수이기도 하다.
지난해 10승을 거둔 김광현이 마무리로 대기한다면 필연적으로 선발진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김광현을 마무리로 돌리는 것은 박희수의 활용도를 극대화시켜 중반에 뒤집히는 경기를 최대한 줄이겠다는 계산으로 볼 수 있다. 실제 SK는 지난해 리그에서 세 번째로 많은 31번의 역전패를 당했고 7회 까지 앞선 경기에서는 47승8패로 7위에 그쳤다. 여기서 까먹는 경기만 상당 부분 건져내도 SK의 기대 승수는 적잖이 뛸 수 있다.
즉 박희수라는 든든한 투수가 있기에 이 구상은 실현 가능성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구상의 기간을 정우람이 다시 불펜에 돌아오는 시간까지로 한정시킨다면 단기적인 효과는 볼 수 있다는 평가다. 그러나 김광현의 상징성, 박희수의 배가되는 부담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감독도 이 부분에 대해 고민을 가지고 결론을 미룬 것으로 알려졌다. 과연 이 감독이 어떤 선택을 내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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