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타자' 이승엽(38, 삼성)은 지난해 자존심에 적잖은 상처를 입었다.
그는 지난 시즌 허리 부상에 시달리는 등 타율 2할5푼3리(443타수 112안타) 13홈런 69타점 62득점으로 정규 시즌의 마침표를 찍었다. 그리고 두산과의 한국시리즈에서도 타율 1할4푼8리(27타수 4안타) 1타점 1득점에 그치며 고개를 떨궜다.
"최악이었다". 20일 삼성의 1차 캠프가 차려진 괌 레오팔레스에서 만난 이승엽은 지난 시즌을 되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짧은 한 마디에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그는 "한국에서 뛰었던 11시즌 가운데 최악의 성적이었다. 프로는 항상 성적으로 말한다. 잊을 수 없는 일"이라고 독기를 품었다.

이승엽에게 지난해의 부진 이유에 대해 조심스레 물어봤다. 그는 제3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1라운드에서 고감도 타격을 선보였다. 타율 4할(10타수 4안타) 1타점 3득점. 대표팀 타자 가운데 이승엽보다 컨디션이 좋은 이는 없었다. 그런 만큼 정규 시즌에서도 상승세를 이어갈 것이라는 기대가 컸던 게 사실.
"WBC에 맞춰 훈련을 열심히 했었고 페이스를 빨리 끌어 올렸다. WBC에서의 타격감이 좋아 올 시즌 기대를 많이 했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아 나 역시 실망이 컸다". 그의 표정에는 진한 아쉬움이 묻어났다. 이승엽은 '맏형'진갑용(40)에 이어 팀내 서열 2위다. 그의 표현처럼 야구를 했던 날보다 야구를 할 날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 그러다 보니 마음이 조급해진 상황에서 시즌을 맞이했다.
"WBC 대표팀에서 준비가 완벽한 상태였는데 다녀온 뒤 폼이 좀 무너졌다. 불안한 마음으로 시즌을 시작했다. 국내 무대 복귀 첫해에는 연습 경기에서도 타 선수들과 달리 서서히 페이스를 끌어 올리면서 개막전에 초점을 맞췄는데 작년에는 몸과 밸런스가 전혀 맞지 않았다".
2할1푼8리의 득점권 타율과 팀내 최다 삼진(94개)에 대해서도 "다 인정하는 부분"이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은 변함없었다.
이승엽은 오프 시즌을 어떻게 어떻게 보냈을까. "프로 선수는 좋은 성적을 거두면 오프 시즌 때 행복하게 보낸다. 반면 나쁜 성적을 남겼다면 다음 시즌이 빨리 왔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 올 시즌의 아쉬움을 만회하기 위해서다".
가족들과 떨어져 살고 있는 이승엽은 좋은 남편이자 좋은 아버지가 되기 위해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러면서도 원했던 만큼의 준비는 착실히 소화했다. 이승엽은 "시즌을 준비하려면 마음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 몸과 마음 둘다 갖춰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결코 서두르지 않는다. 그는 "천천히 천천히 끌어 올려야 한다. 개막전 때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게 우선"이라며 "아무리 캠프 때 좋아도 시즌 때 못하면 의미없는 일"이라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이승엽은 언제나 한국 프로야구의 주인공이었다.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을 만큼 비중있는 주인공. 지난해의 부진 때문일까. 이승엽은 "이제 야구를 할 수 있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고 후배들과 경쟁하는 상황"이라고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는 "지난해 성적이 좋지 않았던 만큼 주전 선수라기보다 젊은 선수들과 경쟁해서 결과를 보여줘야 많은 경기에 나갈 수 있다는 마음으로 절박하면서도 투지있게 해볼 생각이다. 그러면서도 천천히 한 걸음씩 나아가며 나만의 페이스를 유지하는 건 변함없다"고 강조했다.

기본기 강조. 이승엽의 올 시즌 명예 회복을 위한 화두다. 그는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기술적인 부분을 언급하자면 배트 헤드가 먼저 나오면 안 되고 상체가 앞으로 쏠려도 안 되며 하체 중심이 잡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기본이라는 건 누구나 알고 있다. 이승엽 또한 마찬가지. "예전과 똑같이 돌아갈 수 없지만 기본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이승엽은 타격 훈련할때 수건이 묶인 배트를 사용한다. 배트 헤드가 먼저 나오는 걸 방지하기 위한 선택.
그렇다면 '이승엽이 살아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는 어느 만큼의 성적을 거둬야 할까. 이에 이승엽은 곰곰히 생각한 뒤 "이젠 그런 것도 없다. 내가 가지고 있는 걸 해보자는 생각 뿐이다. '이승엽이 살아 있다'는 것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한 번 해보자'는 식으로 하고 싶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는 "옛날 생각하면 당연히 안된다. 옛날처럼 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한창 좋았을때와 똑같이 할 수는 없겠지만 어느 정도 내가 만족할 만한 스윙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래서 이승엽은 "전훈 캠프 때부터 시즌 마지막 경기까지 한 가지 폼으로 칠 수 있는 스윙을 만들어야 한다. 오키나와 2차 캠프에서 그러한 타격 폼을 완성한다면 시즌 시작할때 자신감이 커질 것"이라며 "내가 가진 스윙을 만드느냐 못 만드느냐가 전훈 캠프의 첫 번째 과제다. 자신감을 갖고 시작하는 것과 안 좋아서 헤매는 건 분명히 다르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상의 컨디션을 만들기 위한 식이 요법을 선택했다. 그토록 좋아했던 과자와 탄산 음료도 과감히 끊었다. 최대한 몸에 좋은 음식을 먹고 있다. "체중 조절보다 내 힘을 위한 선택이다. 과자와 탄산 음료를 자주 먹으면 헛배가 부르고 살만 찐다. 물렁한 몸보다 다부진 몸을 만들고 싶다".
류중일 삼성 감독은 이승엽이 제 모습을 되찾길 학수고대하고 있다. "이승엽이 지난해 부진했었는데 팬들은 과거의 이승엽의 모습을 기대한다. 지금의 이승엽의 모습을 원하는 건 아니다. 이승엽이 30홈런을 쳐줬으면 좋겠다". '국민타자' 이승엽이 지난 시즌의 부진을 딛고 명예 회복에 성공할까. 이는 삼성의 통합 4연패를 위한 필수 요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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