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성형 외국인선수가 새롭게 뿌리내릴 수 있을까.
10구단 kt가 지난 20일 창단 첫 외국인선수로 투수 마이크 로리 영입을 발표했다. kt는 올해 1군이 아닌 2군 퓨처스리그에서 데뷔한다. 때문에 kt의 로리 영입은 당장이 아닌 미래를 바라본 선택이다. 이른바 '육성형 외국인선수'로 키워쓰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 불가능했던 육성형 용병

로리는 메이저리그 경력이 일천한 투수이지만 대만시리즈에서 MVP를 차지했다. 특히 2012년 아시아시리즈 예선 삼성전에서 9이닝 3피안타 무사사구 11탈삼진 무실점 완봉승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러나 지난해 대만에서 부진했고, kt 트라이아웃을 통해 한국으로 넘어왔다.
kt는 로리를 육성형 외국인선수라고 소개했다. 한국에서는 매우 생소한 개념이다. 과거 두산 후안 세데뇨와 삼성 프란시스코 크루세타처럼 기대에 못 미쳤으나 점차 성장한 젊은 외국인선수들에게 우스갯소리로 육성형 외국인선수라고 불렀지만 오랜 기간 한국에 있을 수 없었다.
지난해까지 2명 보유 2명 출전으로 외국인선수 쿼터가 제한돼 있었기에 무조건 즉시전력감을 영입해야 했다. 매년 수준급 선수를 영입하기 위해 경쟁이 붙었고, 몸값은 100만 달러 이상으로 호가했다. 올해부터 3명 보유로 쿼터가 확대됐지만 여전히 구단들의 외인 지출은 줄지 않는다.

▲ 일본의 성공한 육성 용병들
그래서 나온 게 출전 숫자는 제한하되 보유 숫자라도 늘리자는 주장이었다. 한화 김응룡 감독은 "우리도 일본처럼 2군에 육성형 외국인선수가 필요하다. 그래야 구단의 부담도 덜하고, 몸값 비용도 줄일 수 있다. 외국에 값싼 선수들을 키우면 돈이 별로 안 든다"고 말했다.
실제로 일본은 1군에 외국인선수 4명만 출전하도록 제한하고 있지만 2군 보유 숫자는 무제한이다. 메이저리그 호타준족의 대명사 알폰소 소리아노도 히로시마 도요카프가 도미니카공화국에서 운영한 야구 아카데미 출신. 토니 블랑코(요코하마) 아롬 발디리스(요코하마) 미첼 어브레유(니혼햄) 등 현재 일본을 대표하는 외국인 타자들도 육성형에 가깝다.
블랑코는 2009년 주니치 입단 당시 더블A 출신으로 연봉 3000만엔밖에 들지 않았다. 어브레유도 지난해 연봉 2000만엔에 니혼햄 유니폼을 입었다. 오릭스에서 이대호와 한솥밥을 먹은 발디리스 역시 25살 때였던 2008년 한신 타이거스에서 1000만엔의 연봉을 받고 육성형으로 입단했다. 오릭스의 이탈리아 출신 투수 알렉산드라 마에스트리는 2012년 불과 220만엔의 연봉으로 시작했다.
일본을 떠났지만 위르핀 오비스포(전 요미우리) 막시모 넬슨(전 주니치) 등도 성공사례 중 하나로 거론될 만하다. 이외에도 주니치 현재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고 투수 천웨인(볼티모어)을 비롯해 상당수 대만인 선수들이 일본프로야구의 2군 및 육성군에서 성장 중이며 한국인으로는 주니치 외야수 송상훈이 대표적인 선수다.

▲ 현실적인 어려움과 가능성은
그러나 우리나라가 일본프로야구의 길을 따라가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따른다. 가장 먼저 육성형 외국인선수에 투자할 만한 시간과 여유가 있느냐는 것이다. 프로야구는 매경기가 전쟁이고, 단기간 성과를 바라는 팀이 거의 대다수다. 육성형 외국인선수를 장기적인 관점에서 체계적으로 키울 수 있는 시스템이 되어있느냐가 관건이다.
또 하나는 선수협회의 제한이다. 외국인선수 보유 숫자를 2명에서 다시 3명으로 늘리는 데에만 무려 12년이 걸렸다. 한 자리를 늘리는 것도 매우 민감한 사안이었는데 보유 숫자를 무제한으로 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다수. 국내 선수들의 설자리가 좁아지면 야구 풀뿌리 자체가 움츠러들 것이라는 의견이다.
하지만 한국프로야구의 비용 거품을 줄이고 시장성을 확대하기 위해서라도 육성형 외국인선수가 필요하다는 게 구단들의 생각이다. 한 관계자는 "보유 숫자가 확대되면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지고, 구단의 비용이나 부담이 줄어들 수 있다. 지금방식으로는 중간에 교체하는데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2~3명 모두 즉시전력으로 성공하는 게 쉽지 않다. 외국인과 FA들의 몸값이 치솟는 이유"라고 했다.
실제로 블랑코·어브레유는 첫 해부터 활약한 케이스이지만 이들을 영입할 때 큰 돈 들이지 않고 부담없이 영입할 수 있었던 것은 보유 제한이 없었기 때문이다. 반드시 성공해야 하는 선수가 아니었기에 폭넓게 선택한 게 대박으로 이어진 케이스. 한국프로야구도 장기적으로는 육성형 외국인선수가 아니더라도 선택의 폭을 다양하게 넓히는 보유 확대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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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리-발디리스-천웨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