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박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게끔 하고 싶어요. 아니, 할 수 있어요”
15일 오후 인천공항에서 사이판행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윤길현(31)의 목소리는 힘이 넘쳤다. 이상했다. 상황 때문이었다. 윤길현은 이날 오전 먼저 미 플로리다 베로비치로 떠난 SK 본진에 합류하지 못했다. 팔꿈치 상태가 좋지 않아서다. 스스로의 말대로 전지훈련 명단에 빠져본 일이 없는 윤길현이기에 조금은 낙담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윤길현은 그런 아쉬움 속에서도 ‘대박’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유가 있었다.
2002년 데뷔 이래 SK의 핵심 불펜 요원으로 이름을 날렸던 윤길현은 2009년 시즌을 끝으로 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잠시 팀을 떠났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복귀 후 성적은 팀에나, 자신에게나 만족스럽지 않았다. 2012년에는 재활 여파로 5경기 출전에 그쳤다. 이를 갈고 시작한 지난해에도 시즌 초반 2군을 다녀오는 등 고전했다.

후반기 뛰어난 성적을 거두며 45경기 출전, 3승1패8홀드 평균자책점 3.32라는 성적을 맞추기는 했다. 핵심 불펜 요원으로의 복귀 가능성을 밝힌 후반기였다. 하지만 시즌 막판부터 팔꿈치가 조금씩 아파왔다. 참고 뛰었지만 결국 막판 탈이 났다. 윤길현은 “생각보다 훨씬 더 큰 뼛조각이 돌아다니고 있더라”라고 떠올렸다. 스스로도 당황했던 부상이었다. 후반기 성적을 끌어올렸음에도 “많이 아쉬웠던 시즌”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그렇게 윤길현은 재활에 들어갔다. 마음이 편할리는 없다. “조금 속상하기도 했다”고 털어놓는 윤길현이다. 비활동기간이 끝난 뒤 매일 문학구장에 나와 운동을 하는 얼굴도 그리 밝지 않았다. 하지만 며칠 사이에 윤길현은 다른 얼굴이 되어 있었다. 하다보면 끝도 없는 부정적인 생각을 긍정적으로 되돌리는 데 성공한 모습이었다. 어느덧 프로 13년차를 맞이하는 내공이 절로 느껴졌다.
윤길현이 밝은 표정을 지은 것은 몸 상태와 연관이 있다. 윤길현은 “야구를 시작한 이래 이렇게 깨끗한 팔꿈치의 느낌은 처음이다”라면서 “나도 기대된다”라고 미소 지었다. 오랜 기간 아픈 상태를 참고 뛰었던 윤길현이다. 새로운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가 가득했다. 윤길현은 “차라리 사이판 재활캠프에 가는 것이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오키나와 2차 캠프에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몸을 착실히 만들어 시즌 때 제대로 된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사이판 재활조를 인솔하는 김경태 SK 재활코치도 윤길현의 상태에 대해 낙관적인 의견을 드러냈다. 윤길현은 출국 전 단계별투구프로그램(ITP)의 40m 과정까지 소화했다. 팔꿈치 상태가 좋아 무리하지만 않는다면 시즌에 맞춰 충분히 몸 상태를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게 김 코치의 설명이다.
어차피 윤길현은 이미 보여준 것이 많은 투수다. 자신의 기량만 유지할 수 있다면 굳이 전지훈련에서 ‘가능성’을 보여주지 않아도 너끈히 1군에서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윤길현이 낙담하지 않고 사이판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렇게 긍정왕으로 변신한 윤길현이 자신의 목표인 ‘대박’을 향해 서서히 나아가고 있다. “할 수 있다”라는 윤길현의 강력한 자기암시는 그 연료가 될 것이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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