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간 V-리그 코트에 지배했던 국내 공격수 판도가 서서히 바뀌고 있다. 기존 ‘빅4’(문성민 박철우 김요한 김학민)가 부상과 군 입대로 고전하고 있는 사이 새로운 ‘3인방’이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전광인(23, 한국전력) 송명근(21, 러시앤캐시) 최홍석(26, 우리카드)이 그 주인공들이다.
올 시즌 남자부 개인 성적 순위표에서는 외국인 선수들의 여전한 강세가 눈에 띈다. 1위부터 4위까지 모두 외국인 선수들의 차지다. 반면 이런 외국인 선수들을 독주를 저지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문성민(현대캐피탈) 박철우(삼성화재) 김요한(LIG손해보험)은 다소 부진한 전반기를 보냈다. 모두 부상이라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마주쳤다. 세 선수 모두 복귀한 상황이지만 100% 상태에는 아직 이르지 못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하지만 프로배구는 새 희망도 보고 있다. 이들을 대신해 전광인 송명근 최홍석이 맹활약을 펼치며 팬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파 공격수들의 세대교체가 시작되고 있다”라는 일부 배구 관계자들의 말이 단순한 바람만으로 들리지 않을 정도다. 개인 순위표를 보면 이런 양상을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다.

강력한 신인왕 후보로 손꼽히는 전광인은 전반기에 379점을 올려 리그 5위에 올랐다. 국내 선수 중에는 가장 많은 득점이다. 국내 공격수 중 2위, 전체 7위가 최홍석(296점)이었다. 신인왕 레이스에서 전광인의 대항마로 불리는 송명근은 295점으로 전체 8위다. 공격 성공률에서도 송명근(2위, 56.95%) 전광인(3위, 55.25%) 최홍석(5위, 52.46%)이 모두 5위권 내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거센 바람을 실감할 수 있다.
전광인은 한국전력의 에이스 몫을 톡톡히 하고 있다. 외국인 선수 밀로스의 부진과 부상으로 이 임무를 떠안은 감이 있지만 외국인 선수 못지않은 공격력이다. 전광인이 애당초부터 기대했던 자원이라면 송명근의 페이스는 말 그대로 기대 이상이다. 외국인 선수 바로티와 함께 팀의 날개 공격을 양분하고 있다. 셋 중 가장 연차가 높은 최홍석도 분전 중이다. 외국인 선수 루니의 공격 가담이 아직은 부진한 상황에서 우리카드의 주포로 활약 중이다.
세 선수의 분전이 더 큰 의미를 갖는 것은 상대적으로 불리한 신체조건을 이겨냈기 때문이다. 문성민 박철우 김요한은 모두 2m 언저리의 신장이다. 세 선수가 등장했을 때 배구계는 “이제 한국배구도 서양과 높이에서 한 번쯤 겨뤄볼 수 있게 됐다”라고 환호했다. 그러나 ‘신 3인방’은 모두 195㎝ 정도의 신장이다. 대신 빠른 몸놀림과 점프력으로 높이의 한계를 극복하고 있다. 이 역시 의미가 있는 일이다.
관건은 후반기에도 전반기만한 활약을 이어갈 수 있느냐다. 전광인은 전반기에 많은 공격을 시도한 탓에 몸 상태가 썩 좋은 편은 아니다. 체력 부담도 있다. 최홍석 또한 좋지 않은 몸을 이끌고 몇 시즌을 버텨오고 있다. 송명근은 이제 서서히 자신에게 지워질 부담감과 상대의 견제를 이겨내야 한다는 숙제를 가지고 있다. 체력이 한계에 이를 후반기가 진짜 시험대라는 말도 나온다. 하지만 그 한계를 젊은 나이에 느껴본다는 자체만으로도 선수 생활에 도움이 된다. 프로배구가 귀한 보물들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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