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회 청룡영화제 시상식에서 여우신인상을 발표하는 그 순간.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의 정은채와 ‘마이 라띠마’의 박지수, ‘돈 크라이 마미’의 남보라, ‘뫼비우스’의 이은우, 그리고 ‘화이:괴물을 삼킨 아이’의 남지현, 이 다섯 명의 여배우 얼굴이 스크린에 가득 잡혔다. 저마다의 표정으로 수상 발표를 기다리던 이 다섯 얼굴들 중 결국 환한 웃음을 머금은 주인공은 ‘마이 라띠마’의 박지수였다.
어느 날 갑자기 혜성처럼 등장한 박지수는 이로써 자신의 첫 작품으로 신인상 수상이라는 기쁨을 맛보게 됐다. 그리고 박지수만큼이나 그의 수상을 기뻐할 이가 또 있었으니, 자신의 첫 장편데뷔작으로 여우신인상을 배출해낸 배우 겸 감독, 유지태였다.
여우신인상 수상 이후 유지태는 박지수에게 ‘수고했다. 축하한다’라는 문자를 남겼단다. 그리고 시상식 전날에도 박지수에게 ‘노미네이트 된 것 축하한다’는 문자를 보냈다고. 유지태 감독이 많이 아끼나 보다 이야기를 꺼내니 흐뭇하게 웃어 보이며 유지태 감독에게 매우 감사하다고 전한 그였다. 그리고는 유지태 감독과 자신을 ‘살짝 떨어져 애정을 가지고 있는 관계’라고 설명했다.

“나이 차가 12살 차이 나는데 아주 가깝게 대하진 못하더라도 그렇다고 아주 먼 거리에 있는 관계는 아니에요. 음, 살짝 떨어져서 애정을 가지고 있는 관계인 것 같아요. 사실 ‘마이 라띠마’ 촬영을 하면서 애정표현을 함부로 하면 안되겠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러니까 감독님이 ‘여배우가 이렇게 시크한 건 처음 봤다고’ 하시더라고요(웃음). 감독과 배우의 관계로 만나서 저한테는 ‘감독님’이라는 것이 더 컸던 것 같아요. 촬영 당시 저는 ‘나는 다른 곳에서 들어온 사람이니까 일단 여기서 답답한 일이 생기더라도 배우는 입장으로 가자’라고 혼자 약속을 했었거든요. 그래서 늘 듣는 입장으로 있었던 것 같아요. 말하는 것보다.”

이처럼 애정 어린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두 사람이지만 박지수에게만큼은 유지태가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지 않을까. ‘마이 라띠마’ 개봉 당시 박지수를 따라다닌 수식어는 ‘유지태가 발굴한’, ‘유지태의 뮤즈’ 등의 수식어였다. 이에 대해 물으니 생각보다 없다며 호탕하게 웃어 보였다. 일각에선 아직도 그런 수식어를 사용한다고 하니 자신이 안고 가야 할 일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러면서 유지태란 잊어야 할, 그러나 잊어서는 안 될 존재라고.
“유지태 감독과 관련된 수식어는 생각보다 없어요(웃음). 생각보다 그런 이야기를 안 해주셔서 다행이에요. 하지만 만약에 그렇게 이야기를 하면 그건 제가 안고 가야 하는 것 같아요. 저는 이후에 제가 ‘마이 라띠마’를 했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 한편으론 그건 다 끝났고 내 손을 떠난 거니까 다른 식의 작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잊어야 하는데 잊으면 안되는 부분이죠. 그래서 유지태 감독님과 저는 보이지 않는 연결고리로 이어져 있다고 생각해요(웃음).”
‘유지태’라는 부담을 떨쳐내고 나니 ‘신인상’이라는 부담이 생겼다. 부담보다는 2014년이 더 재밌어질 것 같다는 소감을 밝힌 그이지만 신인상을 수상한 신인배우의 행보에 이목이 집중되는 건 당연한 일. 그는 자신이 이러이러한 배우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단다. ‘마이 라띠마’로 상을 받았지만 흥행에는 그리 성공하지 못했기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모를 것이라고. 신인상까지 받았으니 2014년 각오가 남다르겠다는 말을 건네자마자 어렵다며 한참을 고민하던 그는 한 글자 한 글자 조심스럽게 그러나 확실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사실 부담이라기 보단 즐겁고 새해가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물론 상을 받았기 때문에 제 위치가 아주 확 달라지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탄탄대로라는 생각은 안하거든요. 대신에 조금 더 좋은 분들을 만날 기회를 가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요. 아마 청룡영화상 수상으로 제가 갑자기 나타난 배우라고 생각하실 것 같아요. ‘마이 라띠마’를 많이 안 보셨으니까. 그래도 생각지도 못한,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기대와 관심을 보내주시는 분들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그 힘을 이어받아서 2014년에 좀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사실 상을 받았지만 이 사람이 무슨 연기를 했는지 모르실 분들도 많을 것 같거든요. ‘저 이런 배우입니다’ 보여드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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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기자 rumi@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