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눈에는 포수 마스크와 미트, 그리고 포수가 짊어져야 할 무거운 장비들이 아른거렸다. 그러나 그에게 주어진 임무는 ‘방망이’였다. 이재원(26, SK)의 프로 생활은 그렇게 8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갔다. 그런 이재원이 자아를 찾겠다고 선언했다. 포수로서 당당히 인정받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다리지도 않는다. 찾아가겠다고 했다.
예나 지금이나 포수는 귀하다. 만들기도 어렵고, 잘 만들 수 있는 재목을 찾기는 더 어렵다. 그런 현실에서 이재원은 인천고 시절 한국프로야구의 미래로 불렸다. 당당한 체구를 갖춘 대형 포수감이었다. 구단의 기대도 컸다. 베테랑 박경완, 그리고 2001년 입단한 정상호의 뒤를 이어 SK의 포수진을 이끌고 나갈 재목으로 봤다. ‘2006년 1차 지명’이라는 경력의 한 줄이 이를 증명한다.
하지만 좀처럼 기회가 오지 않았다. 박경완은 건재했고 정상호라는 벽도 만만치 않았다. 포수 마스크를 잃어버린 이재원은 주로 타석에서 활약했다. 왼손 투수 천적이라는 호칭을 얻으며 데뷔 시즌부터 꾸준히 중용됐다. 처음에는 그렇게라도 경기에 나갈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머릿속에는 의문이 쌓여갔다. 과연 자신이 포수였는지도 헷갈리기 시작했다. 자아의 혼돈이었다.

그런 이재원의 가슴이 다시 뛰기 시작한 것은 상무 시절이었다. 포수 자원이 귀한 상무에서 이재원은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무거운 장비를 들고 뛰어야 하는 포지션이지만 이재원은 마냥 행복했다고 말한다. ‘포수’로 경기에 나서면서 차츰 식어갔던 의욕을 되찾았다. 제대 후에도 “포수로 나서고 싶다. 그것이 내 가치를 향상시키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한결같이 말한 이재원이다.
물론 올해도 기회의 틈은 넓지 않다. 베테랑 조인성과 정상호가 버티고 있다. 이재원에 비하면 경험에서 절대 우위다. 이재원도 이를 알고 있다. 하지만 이미지 트레이닝을 게을리 하지 않으며 착실하게 ‘포수 이재원’으로서의 모습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 마무리캠프에서도 포수로 출전하며 의욕을 불태웠다. 이재원은 “올해는 주변 사람들에게 지명타자의 이미지가 아닌, 포수로서의 이미지를 심어주고 싶다”라고 힘줘 말했다.
지난 마무리캠프에서 투구에 손등을 맞아 또 한 번 악몽을 겪은 이재원이다. 남들이 플로리다로 떠날 때 이재원은 사이판 재활조로 향했다. 2012년 말, 아시아야구선수권에서 비슷한 악몽을 겪은 것에 이어 두 번째 불운이다. 이재원은 "상무에서의 페이스를 이어갔어야 했는데 참 안 된다. 주위에는 ‘괜찮다’라고 이야기하는데 사실 속상하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그러나 포수로서의 꿈을 이야기할 때는 아이처럼 표정이 밝아진다.
이재원은 “지난해 막판 거의 1년 만에 포수로 출전한 적이 있다. 자리가 어색하기는 했는데 ‘아 그래, 이게 내 자리야’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떠올리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얼굴에는 이내 미소가 번졌다. 이재원의 자아 찾기 여행은 그렇게 가슴 속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다. 그리고 그 여행이 완성되는 순간, 비로소 SK의 장기적 그림도 완성될 수 있다. ‘포수 이재원’에 큰 기대가 모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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