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류윤식 때문에 오늘은 기분이 좋습니다.”(웃음)
신치용 삼성화재 감독은 ‘코트의 승부사’로 불린다. 냉정함이 그 명예로운 수식어를 이끈 원동력이다. 웬만해서는 표정 변화가 없다. 경기에 이긴 뒤에도 쓴소리를 내뱉는 데 전혀 주저함이 없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런 신 감독이 웃었다. 선두 탈환 때문도, 라이벌 현대캐피탈을 이겨서도 아니다. 트레이드로 영입한 레프트 류윤식(24, 196㎝)이 보여준 가능성 때문이었다.
삼성화재는 후반기 첫 경기였던 22일 천안 현대캐피탈전에서 3-1로 역전승했다. 1세트 고지를 눈앞에서 내주는 등 쉽지 않았지만 선수들이 똘똘 뭉쳐 역전승을 일궈냈다. 표면적인 일등공신은 41점을 올린 외국인 선수 레오였다. 2세트 16-17 상황부터는 서브 에이스 2개를 곁들이는 강서브 행진으로 프로배구 역대 최다인 10연속 득점 행진을 이끈 주역이 됐다. 하지만 신 감독의 시선은 다른 선수로 향해 있었다. 류윤식이었다.

한양대학교를 졸업한 류윤식은 2011-2012시즌 남자배구 신인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5순위로 대한항공에 지명됐다. 처음에는 국가대표 출신 류중탁 명지대 감독의 아들로 이름을 떨쳤지만 코트에서도 서서히 존재감을 넓혀가기 시작했다. 김학민 곽승석 등이 버틴 대한항공의 왼쪽 날개에서 적잖은 출전 시간을 얻었다. 그랬던 그는 지난 17일 삼성화재와 대한항공이 단행한 2대2 트레이드에 묶여 삼성화재 유니폼을 입었다. 신 감독은 류윤식의 가능성에 주목했다.
류윤식은 예상보다 빨리 코트에 들어섰다. 22일 열린 현대캐피탈전에서 1세트 초반 고준용을 대신해 교체 투입됐다. 아직 팀에 합류한 지 얼마되지 않아 동료들과의 호흡이 완벽하지 않았던 류윤식이었다. 신 감독의 모험으로 보였다. 그러나 류윤식은 침착하게 자신의 몫을 수행하며 삼성화재의 왼쪽 날개 한 자리를 지켰다. 레오가 공격에 전담하는 사이 수비를 착실히 거들었고 몇몇 어려운 공격 기회를 성공시키는 등 알토란같은 몫을 해냈다.
아직 몸 상태도 완벽하지 않고 삼성화재라는 팀에 녹아들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신 감독은 류윤식에 대해 호평을 내렸다. 표면적인 기록보다는 이타적인 모습 때문이었다. 신 감독은 “공격을 크게 한 것은 없다. 그러나 류윤식의 플레이가 다른 선수들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는다는 점이 고무적이다”라고 말했다. 신 감독의 표현대로 삼성화재는 조직력의 팀이다. 어느 하나가 튀면 톱니바퀴가 돌지 못한다. 그런데 팀에 합류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은 류윤식이 그런 톱니바퀴의 일원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해 흐뭇한 표정을 지은 것이다.
신 감독은 “류윤식에게 상당한 기대를 하고 있다”고 공개적인 기대치를 드러냈다. 역시 신 감독이 좀처럼 하지 않는 이야기다. 뜯어보면 이유가 있다. 삼성화재는 레프트 한 자리가 문제다. ‘수비도사’ 석진욱이 은퇴한 이후 고준용 김정훈이 기회를 얻었으나 신 감독의 성에 차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류윤식의 가세는 장기적인 팀 밑그림을 그리는 데 도움이 될 만하다. 당장 올 시즌도 경쟁효과를 누릴 수 있다.
아직 젊고 발전 가능성도 충분하다는 것이 신 감독의 평가다. 신 감독은 “(류)윤식이가 몸도 빠르고 높이도 있다. 자신감만 찾으면 공격에서도 충분히 기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자신의 생각을 드러냈다. 류윤식도 각오를 다졌다. 트레이드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겠다는 의지다. 류윤식은 22일 경기 후 “트레이드 된 뒤 ‘프로가 냉정하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형들이 먼저 챙겨주고 잘해주셨다”라고 고마워하며 “같이 트레이드된 (황)동일이형이 ‘오기를 가지고 해보자’라고 하더라”고 앞으로의 각오를 대변했다. 류윤식 효과에 대한 삼성화재의 기대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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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화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