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9년차, 앳된 외모에선 도저히 느낄 수 없는 내공이 말솜씨에 담겨 있다. 2006년 청소년 드라마로 데뷔해 어느덧 데뷔 10주년을 바라보고 있는 배우 박보영은 귀여운 얼굴로 애교 가득한 목소리에 노련하고 세련된 진심을 담아 전했다. 이 배우, 언제 이렇게 깊어진 걸까.
박보영이 영화 '피끓는 청춘'(감독 이연우)으로 돌아왔다. 1982년 마지막 교복세대들이 충청도를 배경으로 벌이는 열혈 로맨스를 그린 작품이다. 지난 22일 개봉한 영화는 당일 개봉작 중 관객수 1위를 기록하며 힘차게 출발했다. '흥행퀸'다운 저력이다. 지난 수년간 스크린에 몰두한 사이 '과속 스캔들', '미확인동영상', '늑대소년'까지 줄줄이 흥행 릴레이를 이어왔다. 도무지 망할 줄을 모르는 박보영, 난다 긴다 하는 배우들도 무조건 흥행을 장담하긴 어려운 충무로에서 박보영은 그래서 더욱 반짝거린다.
'피끓는 청춘'에서는 생전 처음 여고생 일진 캐릭터에 도전했다. 그가 연기한 영숙은 거친 욕설을 뱉고 담배를 피우고 몸싸움을 벌이는 영락없는 불량 여고생이지만 첫사랑 중길(이종석 분)을 향한 짝사랑에 가슴을 끓이는 소녀다.

많은 관객들에게 영화를 알리기 위해 빼곡한 인터뷰와 라디오 스케줄 등을 소화하고 있는 그를 개봉일이던 지난 22일 종로구 화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다음은 박보영과의 일문일답.
- 흥행률이 상당히 좋다. 작품을 고를 때 어디에 주안점을 두나
운이 많이 좋았던 것 같다. 하하. 아무래도 시나리오를 선택할 때는 일차적으로 제가 봤을 때 재미있는 얘기와 캐릭터를 본다. 또 주위 사람들과 상의를 많이 하는 편이다. 아무래도 혼자서 시나리오를 보는 눈이 정확하지는 않을 것 같다. 소속사 대표님과 사무실 사람들, 측근들에게 '내가 이런 면이 있을까?', '내가 할 수 있을까?'하는 식으로 많이 묻고 상의한다.
아무래도 주위 사람들은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나의 모습들을 더 많이 알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모습과 남들이 생각하는 나의 모습들, 행동들을 종합해 결정한다.
아, 그렇다고 하기 싫은데 주위 사람들 의견으로만 결정하진 않는다. 제가 주장을 하고 고집을 피울 땐 또 좀 한다. 하하하.

- 복고 영화다. 지방 배경에 촌스러우면서도 불량한 느낌이 예상보다 잘 어울렸다. 연기하기 힘들진 않았나.
내가 원래 시골 출신이어서 그런가. 원래 '시골틱한' 느낌이 나지 않나? 하하하. 도시적으로 세련되게 생긴 편은 아닌 것 같다. 생각해보면 '과속스캔들'에서나 '늑대소년'에서나 시골에서 자랐거나 시골로 옮겨가 사는 역할이었다. 내가 말하는 말투도 있고.. 잘 맞는 느낌이다.
- 에이, 실제 보니 오히려 세련된 이미지도 강하다. 가끔 사진이나 화보를 통해 도회적이거나 과감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잘 어울렸다
사진 찍을 때도 그렇고 화보 작업 할 때도 과감한 콘셉트를 시도는 해보는데 아무래도 (영숙이 같은 면이) 더 잘 어울리는 거 같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어색하다. 하하하. 내 마음이 자연스럽게 아직은 자신감이 부족한 거 같기도 하다.
- 일진 여고생이다. 욕하고 때리는 연기는 처음이었는데 카타르시스 같은 것도 있었을 것 같다
하하하. 평소에 감정을 많이 표출하는 편이 아니어서 아무래도 속으로 앓는 편이었다. 그런데 영숙이 역을 하면서 또 그런 걸(욕하고 때리고) 해보니까 살면서 이런 것도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던데. 하하하. 색다른 경험이었고 재미도 있었다.
- 이번 영화를 통틀어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장면과 아쉬운 장면이 있다면?
좋았던 장면은 영숙이가 중길의 데이트 장면을 목격하고 집으로 들어와 새우젓 통의 뚜껑이 안 열린다면서 울던 장면이다. '새우젓 통이 안 열린다=중길의 마음이 열리지 않는다'는 뜻으로 통한다고 생각했다. 영숙은 다른 감정들을 마구 표출하고 사는 것 같아보여도 진짜 속마음은 잘 드러내지 않는 아이다.
아, 중길 아빠(권해효 분) 앞에 무뚝뚝하게 빈대떡을 가져다주는 장면 같은 것들도 영숙이 다운 마음의 표현법인 것 같다.
아쉬웠던 건 영화 후반부에 다리 위에서 중길에게 컴퍼스를 던지고 돌아서는 장면이다. 이건 스스로 연기적으로도 아쉬운 부분인데 조금 더 감정을 터뜨렸으면 했다. 중길을 향한 영숙의 감정이 폭발하는 순간인데 완성본을 보니 뭔가 부족한 것 같더라.
- 흡연 연기까지 도전했는데 편집됐다고?
심의 때문에 흡연 장면 자체는 편집이 되고 담배를 들고 있거나 꽁초를 튕겨 버리거나 하는 모습만 나온다. 담배 피우려고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휴.. 하하하. 담배를 피우는 장면에 영숙의 고뇌가 묻어나는 거였는데 잘린 건 아쉽다. 흡연 장면이 세 번 정도 있었다. 많이 연습하고 훈련했는데 관객들에게 보여드리지 못해 아쉽다.

- 그러고 보니 내년이면 데뷔 10주년이다. 소감이 남다르겠다
휴. 하아. 믿기질 않는다. 벌써 그렇게 됐나? 하하하. 10주년이라고 하기엔 작품 수가 모자라는 것 같다. 올해가 부담된다. 더 많은 작품을 보여드려야 할 것 같다. 사실 오래 일한 것 같아도 중간에 쉬고 끊긴 적이 있어서 아직 많이 부족하다. 좀 더 채찍질하겠다.
- 그래도 이젠 연예계 경험으로 연기 경력으로나 만만치 않은 위치다. 시간이 흐르면서 스스로 달라지는 점이 있다면?
사실 박신혜 씨나 고아라 씨랑 동갑이다. 90년생 여자 배우들의 최근 활약이 두드러지게 나타나 보이고 있는데 나를 포함해 아역으로 데뷔를 하거나 어릴 때부터 일을 시작한 사람들이다. 그만큼 세월의 중요함, 시간의 묵직함을 느낀다.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좀 더 과감해지는 것 같다. 시간이 더 지나고 배우로서 안정기에 접어들었다는 생각이 들게 되면 오히려 다른 모습에 도전하는 게 힘들어질 것 같다. 지금은 혹시 작품이나 캐릭터가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해도 아직은 부족하고 어리니까, 넘어지고 깨져도 다시 일어나면 되지 하는 생각이 있어서 좀 더 과감하게 선택할 수 있는 것 같고.
- 10주년을 바라보는 올해, 새롭게 다짐하는 게 있다면?
예전엔 투정을 많이 부렸는데 올해부터는 부리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하하하. 이제는 투정을 부리지 않아야 한다. 또래들보다 조숙할 수밖에 없는 일을 일찍 시작했다. 아무래도 현실적으로 겪어야할 어려움도 있었다. 살면서 시련을 겪어야 성장하는 게 맞는 말 같다. 예전에 소속사 문제도 그렇고 작년에도 한 번 일을 겪으면서 나름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 '피끓는 청춘'을 통해 또 새롭게 배우거나 깨달은 점이 있다면?
이번엔 영화를 하면서 연기적으로나 영화 외적인 부분으로나 많이 배웠다. 분량이 많지 않고 현장에서도 여유가 생기다보니까 현장에 더 깊숙이 들어갔던 느낌이다. 예전엔 현장에서 배우들 스태프 통틀어 내가 가장 막내였는데 이젠 나보다 어린 친구들도 있더라. 처음엔 무척 신기하고 낯설었다. 하하하.
예전엔 잘 몰랐는데 현장이 굴러가는 것들이 보이고 내가 좀 더 신경을 쓰면 잡음 없이 돌아갈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감독님이 어려워서 말하기 어려워하는 어린 스태프의 얘기를 듣고 내가 해결해보려고도 하고. 챙겨주려고 노력하면서 오히려 내가 편안해졌다. 서로에게 편안하고 도움이 되는 현장이 좋은 거란 걸 새삼 느낀 작품이다.
- '피끓는 청춘'을 관객들에게 권해보자
가벼운 마음으로 편하게 즐기시기에 굉장히 좋은 영화다. 부담은 빼고 많이 와서 봐주시면 좋겠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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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기자 rumi@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