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실장님’이 여성 시청자들을 사로잡던 시대가 조금 주춤하고, 이제는 어쩐지 부족한 을(乙)에 가까운 남자들이 통하고 있다. MBC ‘미스코리아’ 이선균, ‘기황후’ 지창욱, ‘사랑해서 남주나’ 이상엽이 동정심을 유발하는 ‘을남’으로 여심 사냥에 성공했다.
얼굴도 잘 생기고 직업도 탄탄하며, 부유한 집안 배경에 성격까지 좋은 남자를 드라마에서는 ‘실장님’으로 부르던 시대가 있었다. 여성 시청자들이 원하는 완벽한 남성들이 주로 ‘실장님’이었기에 가능했던 별명이었다. 물론 여전히 멋있는 ‘실장님’들은 드라마 단골소재이나, 요즘 인기 드라마를 살펴보면 ‘실장님’을 쫓아다니기만 하는 ‘을남’들의 반격도 만만치 않다.
대표적인 ‘을남’은 ‘미스코리아’에 나오는 이선균. 그가 연기하는 김형준은 망해가는 화장품 회사 사장인데 대출 돌려막기는 기본이다. 화장품 회사를 살리기 위해 첫 사랑 오지영(이연희 분)을 이용하려다가 들킨 후에도 변명 하나 못하고 자신의 처량한 신세를 털어놓기에 급급하다. 자존심 하나 챙기는 것도 벅찬 팍팍한 현실에 발버둥을 치는 인물이다.

지창욱이 ‘기황후’에서 연기하는 타환 역시 거대한 권력을 쥐고 있는 대승상 연철(지창욱 분)에게 목숨을 구걸하는 힘 없는 황제. 고려 출신 기승냥(하지원 분)에게 푹 빠져서 답도 없는 안타까운 짝사랑을 이어오고 있으니 ‘을남’ 중에 ‘을남’이다. 대승상의 기세에 눌려 언제나 슬픈 표정을 짓기 일쑤고, 갑갑한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해도 언제나 대승상 손바닥 안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어 시청자들을 안타깝게 한다.
‘사랑해서 남주나’ 이상엽이 연기하는 정재민은 88만 원 세대를 대표하는 인물. 취업에 매번 미끄러지면서 위축된 자존심은 눈물이 흘러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고, 취업 후에는 가족과의 관계와 엇갈리는 사랑으로 언제나 답답하기만 한 일상을 살고 있다. 늘 진심을 다해 현재에 몰두해도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살이는 대표적인 ‘을남’인 동시에 많은 시청자들의 공감을 살만큼 현실적이게 다뤄지고 있다.
이 같이 드라마 소재와 이야기 전개는 달라도 이선균, 지창욱, 이상엽은 하나 같이 부족한 면모가 많은 인물들. 언제나 멋있는 매력을 발산하는 ‘실장님’은 아니지만 이들이 전하는 진심은 안방극장을 측은하게 한다. 이들이 보여주는 '을남'들은 여성 시청자들의 모성애를 한껏 자극하고 있다. 동시에 세 명의 배우들에 대한 친근감도 높아지는 중. 저 멀리 외계에나 있을 법한 인물들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남자들은 채워야 할 부분이 많아도 매력 있게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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