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든 일본이든 내 가치를 인정받고 야구를 할 수 있다는 게 중요하다".
'빅보이' 이대호(32, 소프트뱅크)는 메이저리그 진출 대신 일본 무대 잔류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지난 시즌이 끝난 뒤 오릭스와 2년 계약이 만료된 이대호는 일본내 타 구단 이적과 메이저리그 진출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당시 그는 "미국 진출과 일본 잔류는 50대50이다. 어디로 갈지 모른다"면서 "미국이든 일본이든 야구는 다 똑같다"고 말했다.

이대호는 지난달 소프트뱅크와 2+1년 총 3년간 14억5000만엔(약 148억 원)에 계약을 체결했다. 세부 내용은 계약금은 5000만엔이며 2014년 연봉 4억엔, 2015년 연봉 5억엔을 받는다. 별도의 옵션도 있다. 그리고 +1년은 이대호에게 달려 있다. 소프트뱅크 잔류 또는 타 구단 이적 모두 이대호가 선택할 수 있다.
이대호는 롯데 자이언츠 시절 '거인 군단의 자존심'이라 불릴 만큼 명성이 자자했다. 네 차례 골든 글러브를 품에 안았고 2010년 세계 최초로 9경기 연속 홈런을 쏘아 올렸고 사상 첫 타격 7관왕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운 바 있다. 그리고 이대호는 일본 무대에서도 한국 야구의 힘을 보여줬다.
데뷔 첫해 전 경기에 출장해 타율 2할8푼6리(525타수 150안타) 24홈런 91타점 54득점으로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다. 특히 퍼시픽리그 타점 1위에 오르는 등 그의 방망이는 식을 줄 몰랐다. 2년차 징크스 따위는 없었다. 이대호는 지난해 141경기에 출장, 타율 3할3리(521타수 158안타) 24홈런 91타점 60득점으로 한층 더 위력적인 모습을 선보였다.
그렇기에 이대호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해 추신수(텍사스 레인저스), 류현진(LA 다저스)과 더불어 한국 야구의 위상을 드높이길 기대하는 팬들의 바람이 컸던 게 사실.
이에 이대호는 "팬들의 바람을 잘 알고 있다. 메이저리그 진출도 좋지만 미국이든 일본이든 내 가치를 인정받고 야구를 할 수 있다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때 그는 부상 탓에 2군을 전전하며 야구를 그만 둘 뻔 한 적도 있었다. 그런 만큼 즐거운 마음으로 야구하길 바라는 마음이 더욱 크다. 이대호가 소프트뱅크를 선택한 건 선수로서의 가치를 인정해주고 우승 전력까지 갖췄기 때문.
추신수와 류현진의 활약은 이대호에게 자극제와 같았다.
"나도 예전에 (메이저리그에) 가서 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해봤다. (추)신수와 (류)현진이 모두 대단하다. 나 또한 그들보다 잘 하고 싶은 마음은 있다. 그러나 나를 선망의 대상으로 여기며 야구하는 이들도 분명히 있다. 현재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 과거에 야구 잘 하다가 다친 뒤 아무도 찾지 않았고 2군에서도 제대로 뛰지 못했는데 지금은 나를 원하고 내가 웃으면서 야구할 수 있으니 더할 나위없이 행복하다. 현실에 안주하는 건 결코 아니다.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뛰겠다". (이대호)
그렇다고 메이저리그 진출에 대한 꿈을 포기한 건 아니다. "언제든지 나를 필요로 한다면 가겠다. 메이저리그 최하위 팀이라도 나를 원한다면 갈 것"이라는 게 그의 말이다.
▲"내가 홈런치고 무영이가 승리 투수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대호는 부산 출신 김무영(소프트뱅크 투수)과 한솥밥을 먹게 됐다. 그는 "무영이와 함께 대화도 나눌 수 있고 무영이는 소프트뱅크에 오랫동안 뛰었던 선수니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며 "무영이도 혼자 많이 외로웠을 것 같다. 지금껏 자리잡기까지 힘들었을텐데 함께 하게 돼 기쁘다. 사회인 야구를 거쳐 소프트뱅크에 입단한 무영이는 야구에 대한 열정이 아주 강하다. 보고 배울 점도 많을 것"이라고 반색했다.
소프트뱅크 우완 기대주인 김무영은 선발 요원보다 계투요원으로 뛸 전망. 그리고 필승조보다 추격조에 가까운 편. 이대호는 김무영이 마운드에 올랐을때 결승타를 터트리는 모습을 자주 그려본다. 경기 후 나란히 수훈 선수로 선정돼 단상에 오르는 건 상상만 해도 기분 좋은 일이기에.
소프트뱅크의 홈구장인 후쿠오카 야후 재팬 돔의 펜스 높이는 5.85m로 일본 구장 가운데 가장 높다. 지금껏 이대호가 뛰었던 사직구장(4.8m)과 교세라 돔(4.2m)에 비해 높은 편. 일부에서는 이대호가 야후 돔의 높은 펜스 때문에 손해를 볼 것이라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이대호는 개의치 않았다.
"분명히 (펜스가 높아) 손해보는 부분도 있겠지만 극복해야 할 부분이다. 야구장이 크다고 줄여달라고 할 수도 없다. 그리고 내가 야구장을 보고 (소프트뱅크 이적을) 선택한 게 아니라 팀을 보고 선택했다. 홈런이라는 건 치고 싶다고 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배트 중심에 제대로 맞으면 얼마든지 넘길 수 있다".
그에게 '잭팟 계약을 실감하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이대호는 "잘 알다시피 연봉에 비해 계약금은 많지 않다. 얼마 전에 계약금이 입금됐는데 세후 금액이다. 아직 거액 계약이라는 게 믿겨지지 않는다. 그냥 야구 열심히 하겠다"고 재치있게 대답했다.

▲"일본에서의 운전은 아직도 어색해"
대한 해협을 건넌지 3년째가 된 이대호의 일본어 실력은 어느 정도일까. "기본적인 인사 정도 하는 수준이다. 숫자 정확히 말할 수 있다. 혼자 식당에 가도 밥 한 끼는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 이대호는 껄껄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대부분의 야구 용어가 영어로 된 만큼 선수들과의 소통에도 큰 어려움은 없다. 이른바 바디 랭귀지와 특유의 넉살을 바탕으로 선수들에게 다가가면 그만이다. 심도있는 대화가 필요할땐 통역을 담당하는 "(정)창용이형"을 외치면 모든 게 해결된다.
그러면서 그는 "내가 일본어 공부를 하게 되면 창용이형의 일자리가 사라진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일본 생활이 3년짼데 공부를 하면 잘 할 자신은 있다. 핑계일 수도 있겠지만 공부할 여유가 없다. 야간 경기 후 밤늦게 귀가하면 쉬기 바쁘다".
이대호에게 가장 어색한 건 운전. 일본의 운전방향은 한국과 반대다. 한국에서는 자동차는 오른쪽 차로를 달리지만 일본은 왼쪽 차로를 달린다. 운전대도 반대방향에 있다. 운전대가 반대방향에 있으니 모든 게 반대쪽에 있다.
그래서 이대호는 오릭스 시절 직접 운전하지 않고 택시를 타고 다녔다. 그는 "중앙선 침범할까봐 두렵다"며 "택시탈때 앞 좌석에 기사님이 없으면 한 번씩 놀라기도 한다"고 웃었다. 그는 후쿠오카로 이사하게 되면 직접 운전대를 잡을 수도 있다. 쉬는 날 가족들과 함께 근교에 바람쐬러 가기 위해서는 자가용 한 대쯤은 있어야 하기 때문.
▲"은퇴 시점? 박수 칠때 떠난다"
이대호에게 국내 무대 복귀 계획에 대해 묻자 "언젠가는 반드시 돌아갈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평소 친분이 두터운 박찬호(전 한화)와 이승엽(삼성)처럼 국내 무대에 복귀해 팬들에게 기쁨을 선사하는 게 이대호의 생각. "나는 한국에서 야구하면서 이만큼 성장했다. 한국팬들의 응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마지막으로 국내 무대에서 뛰는 게 팬들에 대한 예의이자 도리다".
이대호는 마흔 살까지 현역 생활을 하는 게 첫 번째 목표다. 40대 초반까지도 뛸 수 있다면 뛰겠단다. 확실한 기준은 있다. 박수칠때 떠나겠다고. 주니치 드래건스 시절 '나고야의 태양'으로 군림했던 선동렬 KIA 타이거즈 감독처럼 최고의 자리에서 과감히 은퇴하겠다고 말했다.
"선 감독처럼 최고의 자리에서 은퇴하는 게 참 멋져 보였다. 야구를 잘 했던 선수가 못하면 '나이가 들었다'고 지적하곤 한다. 선수 입장에서는 그러한 평가가 정말 기분 나쁠 것 같다. 한편으로는 초라해질 것 같기도 하고. 타 구단의 영입 제의에도 '이젠 은퇴할 시점이 됐다'고 정중히 거절하며 정상 자리에 은퇴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이대호는 "팬들이 바랐던 메이저리그 진출은 못했지만 나는 (소프트뱅크 이적에 대해) 만족한다. 나의 가치를 인정해주고 우승할 수 있는 팀이다. 2년간 오릭스에서 뛰었을때보다 더 즐거운 야구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TV 중계 화면에서도 보시면 더욱 즐거운 모습을 보실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올해 만큼은 반드시 우승 반지를 끼고 기분좋게 귀국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마침표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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